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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간의 해피엔딩

기자 초년병 시절, 상두 어머니를 만났다. 골수 (조혈모세포) 기증 활성화를 위한 취재팀에 속해 있을 때였다.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취재하는 게 내 몫이었다. 상두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자마자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인 고려대 신입생이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상두를 찾아갔을 때 상두 어머니는 병실 문 앞에서 “상두에게 모든 게 미안하다”며 우셨다. 당시 인기 드라마 제목을 딴 ‘상두야 학교가자’가 1면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상두는 이듬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미혼이었던 30대 초반 철없던 기자는 금세 상두 어머니를 잊었다.

2016년 1월, 이유 없이 일주일째 고열이 나던 세 살 인영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승진과 특종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맞벌이 부부는 숨이 멎는 듯했다. 인영이가 아픈 것이 모두 내 탓 같았다. 10년 넘게 지나서야 상두 어머니의 그때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영이의 정식 병명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백혈병은 골수 또는 혈액 내에 암세포가 생기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이 중 2~5세 유아에 많이 발병하는 백혈병 종류가 급성림프구성이다. 치료 방법은 골수이식이나 항암치료인데 우선적으로 항암치료가 권해진다. 항암치료의 경우 암세포가 혈액을 통해 온몸을 이동하는 혈액암 특성상 3년 전후의 긴 치료가 필요하다. 인영이도 2018년 10월까지 3년 가까이 입·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치료 종결 판정을 받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투병 기간 동안의 일들을 하나의 단어로 축약하라면 주저 없이 ‘가족’이라고 쓸 것이다. 우리 네 식구는 인영이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왜 가족일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병을 이겨내는 것은 본인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족은 그 옆에서 좀 더 쉽게 고비를 지나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또 다른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가족뿐 아니라 지금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정 때문이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됐다. 지난 3년여의 세월을 통해 그 섬을 이어주는 다리가 정(情)이라는 것을 알았다.

맨 처음 항암 치료 시작을 위해 왼쪽 가슴에 정맥관을 삽입할 때 인영이는 말 한마디 못하는 애기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인영이를 수술실에 들여보낸 뒤 수술 상황판을 뚫어지게 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는 참 막막했고 두려웠다. 보호자 1인만 함께 잘 수 있는 무균 병동에 아내와 인영이를 두고 나올 때마다 불 꺼진 병원 기자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이 끝은 언제일까. 과연 우리 가족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막막한 시절에 내 곁의 정 많은 좋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인영이를 위해 헌혈을 했고, 기도를 했고, 먹을 것을 갖다 줬고, 함께 울어줬다. 의리만큼은 뒤지지 않는 기자 동료들은 3년 동안 인영이 치료비를 보탰다. 힘들라치면 인영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분들이 나타났다. 인영이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바늘에 찔리고, 울고, 토하면서도 웃음을 줬다. 자기 민머리를 만지며 “아이야 머리 없어”라고 씩 웃었고, 장난감 안 사주는 엄마는 빨리 회사 가라고 등을 떠밀었고, 힘든 항암 치료를 마치고 품에 안겨 나오면서 외려 축 처진 아빠 등을 토닥여 줬다. 그렇게 인영이는 963일 동안을 백혈병과 싸웠다. 물론 모든 전투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항암치료 부작용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토를 했고, 고열과 싸우다 폐렴에 걸려 입원도 했다. 골수·척수 검사의 대바늘에 허리를 잘못 찔려 걷지 못했었고, 물놀이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길고 긴 전쟁에서 이겼다. 인영이는 위대한 승자가 됐고, 이제는 승전보와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인영이가 마지막 가슴 포트 제거 수술을 받고 세종시 고속버스터미널로 돌아오던 날, 인영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와, 도가니탕, 귤을 사러 돌아다녔다. 코스트코에 가서 레고와 콩순이 스티커북도 아내 몰래 질렀다. 그렇게 두 시간을 홀로 세종시를 배회하면서 설레었다. 

마침내 밤 9시, 프리미엄 고속버스 1번 좌석을 차지한 승자가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내렸다. 긴 싸움에서 승리한 인영이는 기고만장했다. 마취 때문에 하루 종일 굶더니 집에 오자마자 라면을 끓이라 명하고, 식탁에 앉아 당당하게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았다.
그래도 된다. 앞으로도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아빠랑 꽃길만 걷자 되뇌었다.
인영이가 아픈 뒤 나 자신과 고마운 분들에게 약속했었다. 인영이가 다 나으면 잔치를 열겠다고. 고마운 분들을 모두 초대해 ‘나는 아빠다’ 책을 선물하며,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정말 큰 힘이 됐다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고맙다 말하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올가을, 그 희망이 이뤄질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 글이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다면 창피함이 조금 덜해질 것 같다. 감사함을 땔감 삼아 견뎌야 할 겨울이 다가오고 있고, 그 감사함의 대상은 내 가족과 나와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는 내 옆의 사람들이다.

P.S
인영이가 3년가량 치료받은 병원은 서초동 검찰 청사에서 고갯길을 넘어서 바로였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검찰과 법원을 ‘지겹게’ 출입한 이후 서초동에 그렇게 자주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 동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초동에서 불철주야 ‘한 줄’의 팩트를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법조출입 기자 선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한 번 법조에 끌려왔어도 정신 바짝 차리니 10년 넘게 ‘재소환’ 안 당하고 잘 버티고 있다고. You can do it!

 

 

 

 

 

이성규 기자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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