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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전통적인 주제
바야흐로 갈등의 전성시대이다.
돈이든, 직업이든, 성별(선천적, 후천적 포함)이든, 나이든, 인종의 영역이든. 모든 사람은 똑같지 않다.
세상은 변해가고, 새로운 문화와 환경의 영향 탓인가.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의 의미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분명 그전에도 존재했던 문제인데, 마치 처음 발견된 듯이 문제가 된다.
인종의 문제는 평등을 다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주제일 것이다.
선천적인(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닌) 문제.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별의 원인이 되고, 공개적으로 다룰 때 대화내용으로 삼기를 꺼리는 문제.


책을 선택한 동기
시대가 변화하면 그에 맞춰 인식도 변해야 한다.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재’ 취급 당한다. 그러나 유행에 민감하지 못해서 ‘아재’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나마도 나은 편이다.
시대에 뒤처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꼰대’라고 불린다.

그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관심사는 ‘평등’이다.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좋은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지적인 허세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계기는 5년쯤 전에 동일한 구성원이 있는 모임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며칠이 지나서 마치 ‘내 생각’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부끄러웠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상책이다. 두 번째는 아는 척하지 않고 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사실 작가의 간접체험은 이미 작가를 통해서 걸러진 내용이라 직접 체험했을 때 느끼는 것에 비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실제로 느낄 수 있게 ‘공기’로 표현을 해 주었다는 점이다.


책의 간략한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아니므로 타자일 수밖에 없음.

1959년. 백인인 저자가 분장과 약의 도움을 받아서 흑인이 되어 차별이 심하다고 하는 미국 남부에서 한 체험. 백인에서 흑인으로 분장을 하였을 뿐인데도, 저자는 외모로부터 오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차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식당, 카페, 전용화장실 문제(카페 등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없다), 버스 좌석 문제(버스를 탈 수는 있으나 흑인의 좌석은 뒤쪽에 한정되어 있고, 장거리 이동 버스의 경우 정류소에서 내려주지 않아 부수적인 문제도 생긴다), 숙소 문제, 일자리 문제.

흑인은 백인에게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백인 버스 운전기사는 내리는 문이 미끄러워도 백인 승객이 아닌 흑인 승객에게는 안내를 하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는 흑인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급여가 적어서 식료품점에서 외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굶어야 하고, 외상으로 생긴 빚 때문에 사실상 거주지를 옮기지 못한다.
흑인이 범죄에 취약하게 된 원인을 흑인이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무식하기 때문으로 인식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교육의 기회와 여건을 제공하지 않고 이미지만으로 고착화시킨다.
생각이 트여있는 백인도 흑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원망만을 늘어놓는다. 가령 노점상을 하는 흑인으로부터 상품을 전부 사겠다고 제의를 하면서, ‘양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이에 대해 흑인은 ‘팔지 않겠다’고 반응한다. ‘절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힘이 든다. 저자는 짧은 시간 동안 흑인이 되었고, 차츰 낮에는 흑인이 되었다가, 밤에는 백인이 되는 생활을 하게 되고, 이후 완전히 백인으로 돌아온다. 그 와중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백인과 흑인 양쪽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처럼.


마치며
작가는 흑인 체험을 한 시점, 이후 방송에 출연하면서 겪었던 일들, 약 20년이 경과하면서 사회가 변화한 모습을 담아낸다.
학교에서 배웠던 자유와 평등은 활자로만 와닿았던 때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매번 보는 사람들만 마주치는 변화 없는 생활. 그러다 보면 그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가끔 사회에서 문제가 된 이슈를 보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이렇고, 다른 쪽은 이런데, 다른 이유가 무얼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평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나, 어쩌면 ‘앎’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인권감수성이란 단어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판결문에까지 등장했다. 알아야 민감할 수 있다. 변화에 민감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책의 192쪽에 쓰여있는 글로 마치고자 한다.


“흑인이 백인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가려지면
햇빛마저도 희미하게 보이는 법이다.”

 






최성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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