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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나의 돌

발밑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돌이 빛나는 유일한 자리죠


인어가 끝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것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발바닥으로 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배반합니다
내 손으로 내 돌을 깨뜨려 옆 사람을 겨냥했다가
수면제를 삼키듯 증거를 인멸하면
새까맣게 타버린 돌은 잠 속으로 들어와
주로 악몽을 짓는 데 쓰입니다


기도의 형식은
맞댄 두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꿇어 앉아 하늘을 향해 포갠 발바닥에 있습니다
거기엔 빛나는 돌이 놓여 있죠


하지만
누군가 내게 와서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말한다면 기꺼이
졸도할 것입니다
두 발바닥을 활짝 펴고서

발밑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강가에서 햇볕에 달궈진 자갈 하나를 발밑에 두고 그 위에 오래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까맣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공교롭게 발바닥 중앙에는 약간 패인 공간이 있어 자갈 하나를 숨기기에 딱 알맞았다. 아무도 찾지 않고, 찾는다 해도 빼앗을 만한 것도 아니며, 빼앗긴다고 해도 절대 무방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을 내가 잘 지키고 있다는 어떤 안도가 들었던 것이다. 돌의 온기가 온몸을 타고 도는 것 같았다. 마치 새카맣게 타버린 누군가의 심장 같기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태어난 나의 두 번째 심장 같기도 한 작고 단단한 슬픔이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내 생에 이런 돌이 하나 있다면, 세계에 내보이지 않고 내 발밑에 고이 숨겨둘 수 있는 돌 하나가 있다면,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대부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태다. 그러니 나를 살거나 죽게 하는 돌 하나를 잘 지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여겼다. 손은 사회적이고 지능적이어서 돌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발밑에 두는 것이 맞다.


사명을 배반합니다
신을 예배하는 자세, 유칼립투스의 어린잎, 애인이 끼워준 반지, 사랑하는 개와의 산책, 부모의 치부, 서서히 뭉뚝해지는 재능, 오래된 연필의 냄새, 미래에 보게 될 아이의 눈동자 같은 것들이 나의 돌이었다. 돌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그 어떤 것도 돌이 될 수 있다. 하루를 품든 수년을 품든,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나를 살게 하거나 죽게 하는 것이면 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 하나가 정말 돌 하나에 불과해질 때가 있다. 발은 요령이 없고 포기도 쉽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사명이라고 일컫던 것들 위에서 자주 내려왔다. 때로는 손으로 집어던지고 깨뜨려 사명을 배반한 스스로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떤 사명을 내게 강요한 적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있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그러니 사명은 스스로 몰래 가두어 둔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여 이 시의 마지막에서 나는 사명이라는 명목에서 벗어난 사랑을 하기 위하여 졸도를 선택했다. 졸도는 견디기 힘든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육체의 최후 방책일지도 모르지만,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를 견디는 것, 돌을 숨겨두었던 두 발을 활짝 펴고 쓰러지는 행위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꺼이 서로의 발바닥을 맞대고 나면, 아마 또다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박세미 시인
●2014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월간 「SPAC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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