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거(謫居)는 낭만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같은 올곧은 선비도 유배지 강진에서 처음으로 묵은 주막집 주모의 딸을 결국 소실로 들였다. 그 일탈은 그를 돌보아 준 이들에 대한 인정의 발로였겠으나, 그만큼 유배생활은 외롭고 고달팠을 것이다.

설을 쇠고 찾아간 추사 김정희의 적소 유적지는 쓸쓸했다. 담장을 따라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풍경은 단 하나의 토포스를 가진다는 시인 허만하의 말이 옳다면, 꽃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데에는 사람 사람마다 오직 하나의 토포스가 있을 법하다. 수선화를 앞에 둔 시인들의 시선은 다양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외로움을 꼽고 싶다.

정호승은 시 ‘수선화에게’에서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라고 읊었다. 그 외로움을 시인은 이렇게 위로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인 김동명에게 그 꽃은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르는/ 애달픈 마음”이었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게다. 그가 1804년쯤에 쓴 시 ‘수선화’에서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이는 별처럼 물가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금빛의 이 꽃을 바라보았을 때, 시인은 “골짜기와 언덕 위를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고 있었다.” 폴 발레리의 시 ‘나르시스 말하다’에서도 수선화는 “슬픔에서 외롭게 깨어나는” 자신의 연못에 비친 모습을 절대적 고독으로 응시한다.

워즈워스의 ‘수선화’가 발표된 지 삼십 년이 더 지난 후 추사는 화품 높은 그 꽃을 이렇게 읊었다. “겨울날 마음 한 점 휘늘어져 둥글고/ 그 기품 그윽하고 고요하고 맑고 빼어나니(一點冬心朶朶圓 品於幽澹冷雋邊).” 그가 이렇게 시정을 토로한 곳은 절도안치(絶道安置)의 섬 제주의 대정마을, 그곳에서도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누추한 집이었다. 잘난 인간들은 이제 아는 체는커녕 제 몸에 해가 될까 두려워 그를 피하는 날들이었고, 불우한 천재는 겨울날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이 구근식물에 마음 한 켠을 기대고 있었다. 외로웠을 것이다. 그는 ‘연전금화(年前禁花)’라는 시에서 “모든 하늘 꽃은 본디 물들지 않지마는/ 세상에 내려와서 온갖 설움 겪는구나(一切天葩元不染 世間亦復歷千艱)”라고 하였다.

그 십여 년 전 추사는 강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다산에게 수선화를 고려청자에 담아 보낸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청나라에서 가져온 그 귀한 꽃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때 추사는 십여 년 후 자신도 영락하여 멀리 유배길을 떠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답하여 보내온 시에서 다산은 수선화를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고 높였다. 그전에 쓴 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흰 꽃은 끝내 섣달 전 매화보다 낫고/ 푸른 잎은 참으로 서리 맞은 대나무와 같네(白華終壓臘前梅 翠葉眞同霜後竹).” 시인 허만하는 시 ‘대정고을 수선화’에서 이 처연할 정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유배지에서 그 꽃을 바라보던 추사의 시선을 이렇게 그린다. “수선화는 몇 만 년 전부터 이곳에 불었던 매서운 바람을 눈이 시린 빛깔과 몸짓으로 증언하고 있다. 용두머리 앞바다 맑은 코발트색 물빛이 묻어 있는 한겨울 바람 소리.”

수선화는 무리 지어 핀다. 그런데 왜 외로움인가? 피어나는 때가 여느 꽃과 다르게 추운 겨울이고 또 청초하게 어여쁘기 때문이다. 기품이란 흔한 게 아니다. 고결함이란 아무나 지니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이 세상과 불화를 일으킬 때 외로움이 꽃에 투영되는 것이다. 추사는 세한도의 발문에서 스스로를 “바다 건너 초췌하게 말라 버린 사람(海外蕉萃枯槁之人)”이라고 칭했다. 권문에서 호령하고 세가에서 떵떵거리던 때는 가고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날들이 오자, 그는 그때쯤 패역한 세대와 속악한 세간을 떠나 드디어 자신의 실존과 마주쳤을 것이다. 유배지의 8 년 세월에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그린 그 높은 정신에게 수선화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수선화의 정조는 외로움이다. 관상자에게 그 외로움은 안녕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영락한 뒤에 선연히 떠오른다. 수선화를 보며 맑은 시선을 얻는 것은 누구에게든 삶의 변곡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인진 변호사 ●법무법인(유) 바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