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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기쁨

숨겨둔 기쁨

문 열고 나와

문밖에 내놓은 외투를 걸쳤다. 무겁고 두껍고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 앉아서

내가 감싼 안쪽을 생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깊어졌다. 멀어졌다. 멀어져 닿을 수도 없는
그곳을 생각하면 뭐하나 싶다가도 지금은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서

계속 생각했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이르고 보면 더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외투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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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었다. 목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었고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대상으로부터 주체인 내가 소거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면서부터였는데, 막연하다는 그 느낌 때문에 나는 생각에 빠졌다. ‘아닐 거야’에서 시작된 생각은 대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추상화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생각을 멈추지 못한 결과 대상은 생각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는 구성물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구성물을 해체했다가 조립했다. 일상적 대화를 이어가거나 생계를 위한 일에 몰두할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동안 이 작업은 지속되었다. 나중에는 일에 몰두하는 나와 구성물의 해체·조립에 몰두하는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의지와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와 외투를 걸쳤는데, 몹시 추운 날이어서 외투 여미는 동작을 나도 모르게 인지하게 되었고, 그 순간 안과 밖에 대한 감각이 생겨났다. ‘내가 감싼 안쪽’이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실감을 갖게 된 것인데, 생각에게는 방향이 생겼다고 해야 될까 아니면 생각이 방향을 틀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아가야 할 공간이 생기자 생각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루이스 캐럴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지나가는 토끼를 따라잡는 데 급급해 ‘나중에 어떻게 다시 굴 밖으로 빠져나올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간다. 얼마 동안은 터널처럼 곧게 뻗어 있었던 토끼굴이 갑자기 푹 꺼지게 되고 앨리스는 깊은 우물로 떨어져 버린다. 갑작스러운 공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의 앨리스는 그야말로 ‘떨어져 버리지만’ 조금 익숙해지자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하는 여유를 부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음, 이렇게 오래 떨어져 봤으니 앞으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

나는「숨겨둔 기쁨」을 완성하면서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앨리스처럼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라고 여유 있게 중얼거릴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누가 물어본다면 너무 오래 매만져서 귀퉁이가 닳아버린 물건처럼 그래서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처럼 어리둥절할 것이다. 생각에 몰두하느라 실밥이 터져 솜뭉치가 삐져나와 있는지도 몰랐던 외투는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렸다. 지금은 외투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

임승유 시인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그 밖의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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