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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함,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역사가 심판한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저작과 유려한 강의를 남겼던 학자가 있다. 그런데 정작 한나 아렌트라는 그녀의 이름을 알린 것은, 뒤늦게 잡힌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루면서 경험한 “악의 평범성에 관한 한 리포트(훗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작으로 출간)”때문이었다.

 독일 전범이 십수 년 동안 도피하면서 지구상 반대편인 남미의 끝자락에 은신했을 때에도,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는 잊혀갔지만 역사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 역사는 담담히 역할을 다했다.
역사를 잊은 듯한 아렌트의 글은 많은 논란을 낳았고 작자의 사상까지 조롱받게 되었지만 아렌트의 논증은 일응 명확해 보였다. 아렌트 여사가 평범하다(Banality)고 표현한 것은 결코 (악이) ‘정상적’이라는 판단은 아닐뿐더러 ‘일상적’이라거나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치 시절 규칙적인 군복무생활, 화목한 가정생활, 독실한 신앙까지 누렸던 전범(戰犯) 아이히만에게 ‘평범하다’는 칭호를 남겨준 반나치주의자 아렌트. 그녀의 글은 나중에 “권위(힘, 존경)에의 복종”이라는 파생이론까지 낳았다. 법정에서 아이히만 스스로 후회되는 것으로서 “더 충실하고 효율적으로 일[극악(極惡)의 업]을 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는 건 참으로 충격과 아이러니였다.

아이히만 재판을 세밀히 분석한 아렌트의 저작은 고민거리를 주었다. ‘불법, 무뢰의 명령이 내려질 경우 그 조직의 구성원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과연 비도덕적 사회와 도덕적 인간은 구별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것인가?’ 등등의 고민거리였다.

조직과 권력 앞에 선 인간의 존재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같이 폭력을 저지르고 누구나 같이 명예훼손에 가담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이지메, 왕따라는 문화현상을 실현한(?) 동양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적인 인간 혼자는 아니지만(거부하지만) 또래부터 회사, 군대, 국가 등등 체계화된 조직이 있을 때에는 가능해졌다. 아울러 소속감에다가 명예욕, 과시욕, 충성심이 발동하면 더욱 배가된다.

(종종 누군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전달하며 특정인을 비난하고 욕했다. 그는 때론 가학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그 주체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간 존재이기도 했다.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태연히 우리 곁의 구성원에게 숨어있을 줄 몰랐던 걸까.
‘악의 평범성’이라는 아렌트의 리포트는 명령에 복종하고 하달된 지시에 충실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단연 돋보였던 것은 사실이나, (많은 역사학자들이 제기하듯)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행동들이 수천만 명을 괴롭히고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데 일조했던 것은 분명히 심판받아야 마땅했다고 한다. 결국 역사법정은 아이히만을 지구 반대편으로 끌고 왔고 준엄히 심판하여 목매달아 단순한 개인의 인과법이 아닌 장구한 역사의 해석법을 보여준 셈이었다. 유대인들의 성소, 유대인들의 법정에서 꼿꼿하게 의기(義氣)를 연출한 아이히만은 후회를 하지 않았고 역사법정은 극형을 선고했다.

역사가 심판했다고 해도, 아직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고민은 남는다.

왜 그들은 바다로 갔을까?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 작품의 말미에는 바다가 있다. 영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홀연히 바다로 떠난 탈옥수 앤디 이야기다. 살인의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교도소장의 불법자금을 두둑이 챙기고 나중에 동료 재소자와 재회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재소자들에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를 들려주고 장기복역수로서 인망을 쌓는 모습은 참으로 극적이다.

전직 회계사 앤디는 다시금 불법에 연루된다. 앤디는 재소자들의 수많은 노역비용을 빼돌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만들고 훗날 그것을 유유히 가로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불순한 부분이 단연코 있다.

<The Firm(한국어 제목 :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이라는 작품의 말미에서도 주인공은 바다로 향한다. 멤피스의 마피아 조직을 지원하는 로펌에 입사한 맥디르라는 청년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 존 그리샴은 현실보다는 더욱 과장하여, 돈이 아쉽고 융자 빚에 시달리며 혹독하게 로스쿨을 다닌 새내기변호사를 전제한 뒤 마피아의 자금세탁을 주된 업무로 하는 로펌, 악과 거래하지만 짐짓 체면치레를 하는 대표, 갑자기 실종되거나 죽는 동료변호사 등을 상정하고 있다.

머리 좋은 맥디르는 점차 자신의 일이 단순히 기업회계 전문 변호사가 하는 일을 과도하게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만, 최고급 아파트와 메르세데스 그리고 아내의 함박웃음에 무덤덤해진다.

FBI의 압박이 들어오자, 맥디르는 기지를 발휘하여 정보제공의 거래를 승낙하고 로펌과 수사기관 양쪽을 더블 치팅(이중사기)하는 대반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윽고 바다로 가버린 맥디르 부부. 카리브해의 여러 섬을 돌면서 맥디르는 아내에게 말한다.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있어. 나는 조금도 변호사가 되고 싶지 않았어...” 자금세탁과 범죄수익은닉에 관여한 회사 동료들이 줄줄이 기소되고 결국 그런 업무에 일조한 자신에게도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맥디르는 뉴스기사에 불안해한다. 여전히 그는 홀연하게 벗어버릴 수 없는 짐이 있다. 800만 달러를 들고 보트로 섬과 섬을 오가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변호사에게, 향후 마음 편한 날이 있을까 고민된다.
 

 야망이라는 함정
비교적 최근 영화인 <한나 아렌트>는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에 참여하고 훗날 악의 평범성이라는 보고서를 쓰게 되는 전과정이 재현되어 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의 초연하고 당당한 태도는 실제 영상으로도 담겨 있어 무척 생생하다. 아이히만은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하고 “성실히 일한 독일군인”이라는 자부심을 펼친다. 그는 나치독일국에 대한 충성심을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었다. 수십 일간의 재판을 목도한 아렌트는 결국 “악은 뚜렷한 징후로 보인다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처럼 교묘하게 숨어서 양심을 뒤덮고 또 다른 악과 교류한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관리한 회계사, 마피아의 자금세탁을 도왔던 변호사. 두 사람은 모두 바다로 갔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감시받는 죄수로서 그들은 악에 일조했지만 애초에 악인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아렌트가 이야기하려는 부분은, 범죄와 형벌 또는 행위반가치·결과반가치 같은 형사법정의 규범적인 판단도 아니었고 사회학적인 ‘조직과 구성원의 윤리’, ‘권위와 복종’이라는 주제도 아니었다고 보인다.

아렌트는 시간의 흐름에 놓인 각별의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관하여 철학적인 탐구심을 던진 것이 아닐까 한다.

앤디와 맥디르는 전문가로서 능력도 출중했고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야망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의 인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 표본이었다. 하지만 예측치 못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삶 주변 상황이 변했고 그들의 인생은 정해진 좌표 없이 흘러갔다. 악을 행하기도 하고 범죄에 연루되기도 했고, 짐짓 불법을 눈감아주기도 했다. 그들은 탈출을 시도했고 거액을 챙겼으며 훗날 바다로 갔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악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어쩌면 악은 평범하고 보편적일지 모르나, 양심과 윤리가 인간존재의 발목을 잡는다. 엘리트였음에도 한 인간에게는 거대한 악의 손길 자체가 숙명이기도 했고 결국 평범하지 않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을 수 있다. 물론 사회와 역사는 그들을 다시금 불러들일 수 있다. 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만, 우리 곁에서 평범하게 가까이 있기에 더욱 소름 돋는 일이다.

유재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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