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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별로 관계없는 몇 가지 이야기들

변호사라는 직업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고대 아테네의 웅변가들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서 익히 아는 테미스토클레스, 데모스테네스 등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웅변가, 정치가 그리고 변호사였다. 당시의 변호는 규정에 대한 해석과 적용만을 중심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정당하고 옳은 것인지, 어떠한 판단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진정하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시민들에게 주장, 설득하는 것이 중시되었다고 한다.


1879년 Samuel Calvin Tate Dodd는 ‘경영 신탁 계약’(business trust agreement) 방식을 ‘발명’하였다. 석유 회사들의 의결권을 John D. Rockefeller를 포함한 9명의 수탁자들에게 신탁하게 함으로써, 록펠러는 규제를 피해서 외부에 지배구조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당시 미국 석유 회사의 90~95%를 지배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1890년의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을 불러왔다. 오늘날의 반독점, 기업 지배구조, 지주회사 등에 대한 수많은 규정들과 논의들은 모두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1982년 Wachtell, Lipton, Rosen & Katz의 Martin Lipton은 당시 범람하던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신주인수선택권 계획(shareholder rights plan, 포이즌필)을 ‘발명’했다. 이전까지 기업 인수전의 승패는 자금을 기반으로 한 주식 모으기로 결판이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존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적대적 공격을 대비한 경영권 방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신주인수선택권 계획은 적은 비용으로 기존 지배주주가 공격자를 방어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는데, 특정 주주가 지분을 확장하여 적대적 인수합병이 예상되는 경우, 해당 주주를 제외한 다른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여 공격자의 지분을 희석하는 장치였다. 이러한 발명은 립튼 개인과 그의 로펌에 사라지지 않을 명성과 부를 안겨주었고, 회사법의 영역에 있어서 경영권 방어 수단의 허용 범위, 주주간의 차등 권리의 타당성 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복잡한 규정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대부분의 변호사 업무는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정해진 룰에 따르는 게임에서 인간이 AI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고, 법률의 규정이 아무리 많고 복잡하다고 한들 언젠가는 컴퓨팅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변호사의 일은 규정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변호사는 체스 선수가 아니라, 체스 선수를 어떻게든 이기게 해야 하는 조력자다. 체스 선수는 체스의 룰에 따라 자웅을 겨루지만, 그 시간에 변호사는 체스판과 경기장의 규격은 맞는지, 체스의 룰은 정당한 것인지 따지고, 체스판의 색깔과 크기의 문제를 지적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룰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고, 어쩌면 체스판을 뒤엎고 게임 자체의 불공정함을 주장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게임의 룰은 좀 더 정교하게 때로는 좀 더 공정하게 바뀌게 된다.

법률가는 규정을 만들고, 규정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응전한다. 고대 아테네의 웅변가부터 미국 회사법 변호사들과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변호사들까지, 변호사들은 이익과 목적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서 규정에 도전하고, 회피하고,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항상 보다 나은 결과를 약속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규정과 세상 자체가 옳은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만들어 내고, 그것만으로도 변호사는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허준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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