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회원칼럼
뉴욕 지방법원 방청기

(재판 중) 법정에서 청원경찰과 서기가 잡담을 하며 웃는 모습
당시 법정에서는 당사자들과 변호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판사님이 착석하신 후 호명에 따라 변호사들이 법대에 가서 차례대로 민사 절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옆에 있는 청원경찰과 서기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법정 예절에 익숙한 나는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인 것 같아서 처음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둘의 잡담이 계속되더니 심지어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옆에서는 판사님과 변호사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말이다.

참 낯설었지만, 어디서든 대화가 흐르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에도 간단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거나, 낯이 익은 점원이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서로 대화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문제 삼지 않는 미국의 문화가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고, 특히 공개된 곳에서 얘기할 때는 서로 흠 잡히지 않게 예의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서로 대화를 조심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대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변호사와 판사님이 속삭일 수 있을만한 거리에서 절차 진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변호사와 판사님이 법대에서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판사님과 한쪽 변호사의 공개되지 않은 1대1 대화를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나부터도 상대방 대리인과 판사님이 비공개 1대1 대화를 하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미국에서도 실제 변론이 열리면 금지되는 행위일 수 있지만, 그전 단계에서 재판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또 변호인과의 1대1 대화를 하는 것이 재판 진행에 앞서 여러 가지 의견을 좀 더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명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에서 재판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예단과 판사의 심증을 유추하게 되어 상당히 소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표현을 문제 삼기보다는 재판부에 대한 신뢰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얘기가 오갈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실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이익은 당사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심원단 선정 과정
지방법원에 들어와서 어디론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기에 재판이 열린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슬쩍 끼어들어갔는데, 들어간 곳은 법정이 아니라 배심원단을 선정하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절차여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사명감을 가진 배심원들은 영화에서나 본 내용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배심원 선정의 실제는 달랐다. 어떻게 해서든 안 하고 빠져나가려는 예비 배심원들과, 선정해야 하지만 아무나 선정할 수 없는 법원 직원의 공방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예비군 훈련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일이지만, 현실의 예비군 훈련에서는 어떻게든 빠질 수 있으면 빠지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우리나라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래서 배심원 숫자의 몇 배는 되는 20~30명 정도를 불러놓고 선정을 시작하고 순서대로 이유를 대면서 빠져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태료 때문에 억지로 출석해서 앉아 있지만 각자 생업과 학업이 있기 때문에 배심원이 되는 걸 달가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직원은 매우 진중하고 사려 깊게 각 예비 배심원에 대해서 결격 사유는 없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선정 과정을 진행하는데, 그렇게 배심원단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가진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는 명대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죽고, 후반부가 되어서야 이병헌이 자신을 죽이려던 김영철을 만나서 물어본다. “말해 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그제서야 보스는 추상적으로 대답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고작 이런 이유로 서로 죽이려고 했던 것인가 허탈해지는 대사지만, 문제는 영화 속의 갈등 해결 방법이 참 “한국적” 인 대화의 흐름이라는 점이다. 대화로 직접 오해를 풀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알려주지 않고 복수하려고 한다. 오해가 쌓여나간다.

뉴욕 여행 과정에서 내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사회에 대화가 흐른다는 점이었다. 서로 간에 대화가 원활하게 되기 위해선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양 당사자가 합리적인 사람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미국의 대화가 흐르는 문화는 법체계에도 이르러서 대리인이 구술변론을 하기도 하고, 배심원단이 내용을 듣고 유무죄를 판단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배심원단이나 구술변론 제도의 도입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전에 먼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서 대화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방청이었다.

허재창 변호사
●법무법인 인헌

허재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