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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법정풍경

얼마 전 육아휴직 중인 선배와 전화로 안부를 나눴습니다. ‘올해 최고의 성과는 코로나 안 걸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된 생활 얘기로 대화가 흘러갔습니다. 제가 무심코 ‘법정에서 마스크 안 쓰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하자 이 선배는 ‘법정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니?’라며 깜짝 놀랐습니다.

선배의 신기한듯한 반응에 이렇게 된 지 아직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 달 만에 너무나 바뀌어버린 현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비단 그 선배뿐만 아니라 같은 변호사라고 해도 사내변호사라서, 또는 로펌에 있더라도 송무팀에서 일을 안 해서 몇 년 동안 법정은 가보지도 못했다는 분들은 가끔 법정 이야기를 하면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고향 마을 동네 언저리 이야기를 하듯 까마득하게 말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법정의 기억은 아직 BC(Before Covid-19의 약자이며, ‘기원전’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에 머물러있을 것이니, AC(After Covid-19, 같은 의미에서 ‘기원후’가 아닙니다) 시대의 법정풍경을 알려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2020년도 벌써 반이 다 지나가 버렸는데, 올해의 절반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냥 뚝 떼어내 사라진 느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은 2월 휴정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되려던 3월 한 달, 휴정 아닌 휴정을 했습니다. 초·중·고 개학이 연기된 것과 함께 법원도 긴급한 사건이 아니면 변론기일을 한 달가량 뒤로 미뤘고, 겨울방학과 휴정기는 3월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시 간 법정은 더 이상 예전의 법정이 아니었습니다. 법원 건물의 출입구는 한곳만 열고, 나머지는 폐쇄했으며, 열린 출입구도 입구와 출구를 나누어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했습니다. 입구 유도선을 따라 들어가면, 열화상 카메라 앞을 지나갑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열화상 카메라 앞에 의자를 마련해 놓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앉았다 지나가게 하여 제대로 측정합니다. 비록 입구를 찾아 약간 뺑뺑이를 돌고, 동선이 꼬이는 실수를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발 빠른 변화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시골 장터처럼 늘 바글바글해 옆 사람 말소리도 잘 안 들리던 서울중앙지방법원 1층 카페는 이제 말소리도 제법 들립니다. 낮아진 데시벨과 더불어 비말 농도도 예전보다는 낮아졌겠지만, 저는 이제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커피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서 마시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햇볕이 조금 따가워졌지만 일부러 태닝도 하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바이러스가 자외선 속에선 오래 못 버틴다고 하니 오히려 자외선이 고마운 시대입니다.

법정 앞 복도 풍경도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예전엔 멀리서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자판기 커피도 뽑아먹곤 했는데, 이제는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의뢰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분이 내가 아는 그분이 맞는지 한동안 마음속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한 번은 긴가민가 했던 분이 나중에 ‘아까 반가웠다’고 메시지를 보내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물론 메시지로 말이지요. ‘언택트(‘비접촉’을 뜻하는 신조어)’가 권장되는 시대이니 인사도 ‘언택트’라고 나름 위안을 삼습니다.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은 ‘단정한 의복을 착용하지 않은 자’에 대해 법정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마스크를 쓴 사람은 모자를 쓴 사람처럼 법정 경위가 벗으라고 했을 테지만, 이제는 AC 시대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제지합니다. 재판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법대에 아크릴 칸막이도 설치되었습니다.

법정 안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가끔 재판장님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셔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호흡이 힘드시거나 각자의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재판장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배석판사가 쓰지 않은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증인신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피고인이 갑자기 출석을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직장 동료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피고인도 자가격리된다고 합니다. 변호사에게 이 AC 시대는 피고인 없이 이루어지는 증인신문과 조서의 증거능력, 더 나아가 궐석 재판과 재판 지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밀폐된 법정을 나와 복도에서 재판을 기다립니다. 법원이 출입구 동선과 열화상 카메라 규정은 신속하게 만들었지만, 창문을 열어두도록 하는 매뉴얼은 아직 만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닫혀있는 복도 창문을 일일이 열면서 더디게만 진행되는 것 같은 올해의 일정을 되돌아봅니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올해 최고의 성과는 ‘코로나 안 걸린 것’이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황다연 변호사
●법무법인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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