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영화 <아논(ANON)>을 보고

영화는 강렬한 문구로 시작한다. “난 신에게조차 잊히길 열망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기억되고, 자동으로 인식되는 세상.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사생활 보호가 중요시되는 사회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자발적인 사생활 노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주목받고 싶어 한다. 자발적인 사생활 노출의 수단과 채널 또한 점점 다양해져서, 개인들은 각종 블로그, SNS, 유튜브, VLOG 채널들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일상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하는 노래처럼, 운 좋게 주목을 받아 TV에 나오게 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수동적으로 누군가 나를 TV에 출연시켜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주목받고 싶은 모습을 연출·기획하고, 촬영해서 업로드하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굳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기억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항상 좋은 모습만 노출될 수도 없기도 하며, 또 처음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전파되어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잊혀질 권리’는 엄청 핫(Hot)한 주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원치 않는 기록이 영원히 인터넷 망 속에 떠도는 것은, 한편으로 굉장히 잔인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개인에게 잊혀질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요새 ‘1일 1깡’으로 핫한 가수 ‘비’의 ‘깡’이나, 여자 아이돌 가수 ‘EXID’의 ‘위아래’처럼 예전에 기록되고 저장되어 있던 콘텐츠가 뒤늦게 주목받아 역주행하며 새롭게 인기를 끌면서 수혜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 ‘텔레그램 조주빈 사건’의 피해자들과 같이 텔레그램을 비롯한 전체 인터넷 망 속에서 자신의 피해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친한 동생이 과거에 어떤 회사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개인 정보가 구글(Google)에서 전부 검색 노출이 되어 문제된 경우가 있었다. 그때 상담 요청을 받아 어떻게 처리할지 도와주었던 적이 있다.

공개를 원하지 않는 자신의 정보가 인터넷에 무단으로 공개되는 경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회복하기 힘든 큰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게된 영화 <아논(ANON)>은, ‘익명인’을 뜻하는 ‘Anonymous’의 약자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공개할 권리가 있는 반면, 비공개할 권리 즉, 익명으로 살아갈 권리도 있다. 하지만 영화 <아논(ANON)> 속 세상에서는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자(Unknown)는 범법자이고, 세상의 오류(Error)로 인식된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우려면 어둠의 경로를 통해 몰래 지워야 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중범죄로 여겨진다. 기록을 삭제,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전체 사회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허점이 있듯, 영화 <아논(ANON)> 속 시스템 또한 허점이 있다. 시스템과 알고리듬을 꿰뚫고 활용할 수 있는 자들은 언제든 개인의 모든 기억의 순간에 접속해서 그 기억을 엿볼 수 있고, 조작과 삭제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도 어렵다.

이런 세상에서 디지털 정보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되고 잊혀지고자 투쟁하는 몇몇의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신에게조차 잊혀지길 열망’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아날로그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디지털을 다루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야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이다.

위 영화가 그저 한참 먼 미래를 묘사한 SF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 세상도 너무 근접하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기록되고, 빅데이터로 저장되고, 분석되고, 활용되고 있다.

나는 데이터 수집, 관리, 분석, 활용이 중요한 ‘이커머스’ 회사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개인 정보와 같은 식별 정보는 물론 비식별데이터 또한 매우 중요하게 관리, 취급되고 있다.

수많은 고객들의 개인 정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는 철저하고 엄격한 관리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 반면, 고객의 구매 관련 비식별데이터를 잘 분석하여 활용하면 고객 만족도를 훨씬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고, 이는 회사의 매출과 이익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전염병 확산 경로를 추적하기 위한 데이터의 분석 및 활용, 언택트(Untact) 서비스 이용으로 인한 대중들의 니즈(Needs)가 반영된 데이터의 축적, 분석, 활용 등이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정보 활용의 명과 암을 잘 엿볼 수 있는 영화를 접하게 되어 소개해 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영화도 나의 관심사와 취향을 분석한 넷플릭스가 추천해 준 영화다. 넷플릭스는 나의 콘텐츠 취향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분석하고 활용하고 있다. 넷플릭스 디지털 알고리듬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 <아논(ANON)>, 한번 보시길 추천드린다.

황현아 변호사

황현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HOT TOPIC
M & M
[칼럼]
M & M
오현주 변호사 인터뷰
[인터뷰]
오현주 변호사 인터뷰
김가람 변호사 인터뷰
[인터뷰]
김가람 변호사 인터뷰
이수진 의원 인터뷰
[인터뷰]
이수진 의원 인터뷰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