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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또 자정을 한참 지나서까지 일을 하다가 차를 몰고 퇴근을 하는데, 입에서 “아이고 내 신세야”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분명 누가 퇴근을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닌데, 나는 왜 맨날 이럴까. 돈을 벌어야 해서? 만약 내가 돈이 아주 많아서 돈을 더 벌 필요가 없더라도 일은 하지 않을까? 아니면 자아실현? 직업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데, 내 자아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내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은 이렇게도 힘이 든단 말인가. 그래서 그 자아실현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었는지 애써 떠올려 보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을 하는데 왜 자아가 실현되지? 내가 쓸모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만족감이 자아실현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변호사로서 내가 쓸모 있다는 느낌을 언제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그 반대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1년 차때 맡은 사건이다. 1심에서 두 명의 피고인이 각각 실형 15년씩을 선고받은 사건의 항소심이었다. 나는 피고인들이 정말 무죄라고 믿고 열심히 변호했는데, 범죄일람표의 여러 범죄 사실 중에서 일부만 무죄로 바뀌었을 뿐 대부분이 여전히 유죄로 인정되었고, 실형 13년씩이 선고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피고인들이 다른 훌륭한 변호사를 만났으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나를 만나는 바람에 13년을 교도소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생각에 앞으로 변호사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항상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자문 업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송 업무를 많이 수행했는데, 소송에는 항상 승패가 있다. 그리고 승소를 하면 참 좋다. 특히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거나, 국가기관 등을 상대방으로 하는 공정거래, 조세, 행정사건에서 승소하기는 쉽지 않아서 승소하면 기분이 더 좋다.

한 번은 지방 도시철도 건설 공사의 입찰담합이 문제되어 건설사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 사건을 고발한 기관에 근무하는 동기가 전화로 그 사건을 내가 수행했는지 물어보더니, 그 판결로 담당자가 조금 곤란해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전화상이지만 표정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담당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무죄 판결을 안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승소에 중독되고 나면, 조정이나 합의를 할지 여부에 대해서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을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의뢰인이 조정이나 합의를 하지 말고 판결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조정이나 합의를 하면 사건도 빨리 끝나고 내가 할 일이 줄어드는데도, 굳이 험난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조세 부과처분 취소사건을 진행 중에 상대방인 과세관청이 기존의 처분을 스스로 취소하고 우리의 주장에 맞게 재처분을 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다 이긴 것인데도, 나는 소취하서를 제출하면서 승소 판결문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승소 판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삼세판의 마지막 반전, 대법원의 승소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다. 파기환송 판결이 좋은 이유는 통계적으로 파기환송 비율이 낮다거나, 지체 높으신 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의 판결에서 내가 허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은 다른 판결들과는 달리, 외롭지가 않다.

변호사는 주로 하는 일이 하루 종일 앉아서 서면을 쓰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글을 쓰는데, 사실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리고 판결이 내려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내가 쓴 서면을 읽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겨도 외롭다. 혹시 우리 회사의 다른 변호사님들이 참고용 샘플로 꺼내서 봐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보면 우리 의뢰인이 무척이나 좋아해 주기도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결문을 통해서나마 내가 그 사건에서 무슨 주장을 해서 받아들여졌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다음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덜 외로운 느낌이 든다.

내가 수행한 사건 중에 상해진단서의 증명력을 부정하여 상해의 점에 대하여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 있다(2016도15018). 항소심부터 맡아서 상고심과 파기환송심을 수행했는데, 의뢰인은 나에게 “굿윌 헌팅의 멧 데이먼처럼 변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가까운 판사님들의 말에 따르면, 위 파기환송 판결 이후 변호인들이 위 판결을 근거로 적시하여 상해진단서를 작성한 의사를 증인으로 신문해야겠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이를 채택해 주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구약식 사건들의 기록을 보면 수사기관에서 위 판결을 근거로 적시하여 상해의 점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판단한 사례가 많다고 하니, 내 의뢰인처럼 힘들게 대법원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억울함을 풀 수 있었을 많은 사람들이 위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 내가 썩 쓸모 있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위 판결의 주심이었던 대법관님이 퇴임 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위 사건을 언급해 주셨다. 어쩌다 보니 요즘 그 분을 자주 뵙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용기를 내서 ‘혹시 그 사건 기억나시는지 여쭙고 제가 쓴 부끄러운 상고이유서(직접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림도 그려서 넣었다)를 잘 읽어주시고 좋은 판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최근에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것은 올해 3월인데, 대법원은 채무자가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한 미등록 건설기계를 제3자에게 처분한 사안에서 채무자의 배임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채무자는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2018도14596). 무렵 대법원에서 유사한 쟁점의 판결이 일제히 선고되며 종래의 판례가 변경되었는데, 올해 2월에는 산 양도담보, 3월에는 등록 대상 건설기계의 양도담보(내 사건), 4월에는 선박법에 따른 등기 대상인 착장의 양도담보, 6월에는 부동산 근저당권(또는 도담보)에 관하여, 각각 이를 설정해 준 채무자가 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 배임죄로 처벌해 온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여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배임죄에 관한 큰 판례 변경의 현장에 나도 함께 했다는 것이고, 좀 더 과장하면 등록을 요하는 건설기계 등은 부동산처럼 취급되어 왔으므로 내 사건이 부동산 및 동산처럼 취급되는 물건들에 관해서는 리딩 케이스에 해당하는 편이라고 우겨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봤자 변호사가 하는 일은 다 남의 일이다. 그런데 남의 일이 잘 되면 내가 왜 좋을까. 신기하게도 의 일을 해 주면서 내가 쓸모 있다는 느낌을 받고 분이 좋아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미하일의 입을 빌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다. 타인을 돌보는 마음이다. 타인이 나를 돌봐주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다는 일방적인 의미가 아니라, 타인을 돌봐주는 사람도 그 때문에 살 수 있다는 미라고 한다. 고생하면서 아이들을 키운 부모가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대개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은 분들인데,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변호사니까 이런 일은 잘 도와드릴 수 있고, 그러면 의뢰인은 나에게 감사해 하지만 사실은 뢰인 덕분에 내가 쓸모 있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마치 내가 형사사건만 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는 않다. 민사사건도 하고 자문 업무도 한다. 지금은 부동산 PF 브릿지 대출의 약정식을 내고 바이블을 만드는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나의 소송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자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받은 5건의 파기환송 승소 판결 중 위에서 말한 2건만 사사건이고 나머지 3건은 민사사건이다. 아무래도 민사보다는 형사소송이 가장 사람 냄새가 많이 나고 직관적으로 남을 도왔다는 느낌이 들다 보니 자꾸 사사건을 예로 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보내주어 해외연수를 다녀온 기간을 빼면 거의 매년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셈인데, 아마도 내가 그 재미에 이렇게 매번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나 보다.

김추 변호사
●법무법인(유)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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