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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변호사 인터뷰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부 여검사,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초대 부장, 자신을 모델로 한 드라마 캐릭터가 있기도 한 사람. ‘맹렬 검사’에서 ‘맹렬 변호사’로, 25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법무법인(유한) 바른에서 형사사건 전담변호사로 활약하고 계신 김진숙 변호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Q.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는데 요즘 생활은 어떠신가요?

집과 사무실만 오가며 집콕과 사콕을 실천하고 있는 중입니다(웃음). 아무래도 저는 형사사건 전담변호사이다 보니 코로나19보다 더 급한 사정에 처한 분들이 많아서, 다른 분들은 못 만나도 의뢰인들은 만나고 있습니다.

Q.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던데, ‘미디어 속 법률’ 같은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블로그를 얼마 전 시작했어요. 예전에 인터뷰했던 내용이나 기고했던 글들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미디어 속 법률’은 검사 시절 ‘뉴스프로스’라는 대검 소식지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지금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 같은 역할을 하는 ‘검찰 가족’이라는 소식지가 기존에 종이 잡지 형태로 발행되고 있었어요. 잡지는 발행 비용이 상당한데, 사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챙겨보기가 쉽지 않죠. 인터넷으로 발행을 하면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대검찰청 부공보관으로 있을 때 인터넷 전자신문인 ‘뉴스프로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부 정책과 변화를 국민들에게 잘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검찰 내부뿐 아니라 검찰의 정책 고객들에게도 뉴스레터를 보내드렸고, ‘뉴스프로스’를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법률적 솔루션을 제공해 주지는 않죠. 그리고 작가분들이 법률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미숙하게 표현되는 부분이 있고요. 이에 대한 법률적인 해석을 해 주는 글을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미디어 속 법률’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쓴 글들이 유익했다는 반응이 많았고 언론에서 화제도 많이 되었어요. 조만간 제 블로그에는 좀 더 호흡이 짧고 쉬운 생활 상식 같은 글들을 써 볼 계획입니다.

Q. 최초의 특수부 여검사,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초대 부장 등등 최초, 1호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지고 계시는데요.

제가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요, 제가 임관할 당시에는 여성 검사들이 많지 않았던 탓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동기 여검사가 3명이 같이 임관이 되어서 생방송 뉴스에도 출연할 정도로 주목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검사 수가 적다 보니 보호하고 배려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지 않은 부서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형사·공판 업무만 주로 시켰거든요. 그때 저는 ‘여자 후배들이 계속 들어올 것이고, 앞으로 부장도 되고 차장도 되고 검사장도 되어야 하는데 형사·공판 업무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특수부에 가고 싶다고 요청한 끝에 여검사로서는 처음으로 특수부에 가고, 인지수사도 하면서 영역을 넓혀가고자 했습니다.

저는 ‘여자’를 빼고 ‘맹렬’한 검사가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목표였습니다. 평등하게 일하려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 배려도 차별도 없는 동등한 지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려에도 차별에도 모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Q. 특수부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을까요?

특수부 검사의 애환을 느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경찰을 거쳐서 오는 송치사건과 달리 인지수사를 하다 보면 사건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인지수사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곪은 곳을 건드리게 되면, 처벌을 한 이후에 제도와 정책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보람이 있고, 검찰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주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있을 때 중국산 옥돔을 제주산으로 속여 판 사건을 인지수사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10만 톤이 수입되었는데 막상 시장에는 중국산으로 팔리는 것이 없는 점에 의문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산업 종사자들의 유대가 강하기 때문에 진술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는데, 중국에서 온 10만 톤을 추적했더니 부산을 거쳐 제주에 들어온 유통 흐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루트를 쫓아 수사를 했더니 관련자들이 거짓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광주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있을 때에도 두 가지 사건이 기억에 남는데, 하나는 상이군경 등급 인정에 뇌물이 오고 간 사건이었습니다. 상이군경으로 인정을 받으면 등급에 따라 보조금, 자녀 취업 지원, 보훈처장 장례 등 여러 지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급을 매기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해당 등급이 아닌데도 해 주고, 해당되는 사람을 떨어뜨린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첩보를 받고 수사를 시작해서 여러 팀이 오래 매달려 사건의 실체를 밝혔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자체 군수의 부인이 5급 승진을 앞둔 공무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승진에 관여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특수부 사건들은 사회적인 파급력과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루어지던 잘못된 일들에 대해 사회 전반에 메시지를 던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만들고, 초대 부장을 하셨는데, 중점을 두고 하셨던 일을 소개해 주신다면?

우선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생긴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법무부 정책기획단에 있을 때 조두순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으로 기소를 하지 않고 형법으로 기소했는데, 국정감사에서 형법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13년 형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검찰이 질타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성과 아동 범죄에 관한 법률이 형법 안에 포괄되어 있지 않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처벌법으로 산재되어있다 보니 검사들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안부나 금융조세조사부같이, 여성아동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다행히 그 필요성이 인정되었고, 제가 부서를 만드는 세팅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초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이 되었습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당시에는 신설 부서여서 부서를 안착시키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여성아동범죄사건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한 구체적이고 세세한 양형 기준을 만들고, 수사할 때 유의해야할 점 등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프로스’ 검사 게시판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 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아동사건 처리 시 유의사항, 소년범죄 처리 유의사항, 양형 기준 등을 틈나는 대로 올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성인권단체에서 검찰이 반여성인권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여성단체와 교류도 많이 했습니다. 간담회와 모임 등을 자주 개최하고, 기획을 통해 활동가들과 교감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소년범들의 40% 정도가 재범을 한다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검찰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처벌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다이버전(Diversion)도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형·누나 같은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대학생과 기업 신입사원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파랑마니또’라는 멘토 그룹을 만들어 아이들과 연계해 주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변호인은 가해자만을 위한 것이었지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가 없었습니다. 예산상 성인까지는 어렵더라도 아동청소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절실히 필요해서 당시 여성가족부와 법무부가 협력해서 피해자 법률조력인 제도를 만들었는데 시행 초기부터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법률조력인들에게 교육도 하고 경찰 단계부터 선임될 수 있도록 경찰과 협업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명칭도 피해자국선변호인으로 바뀌고 성인도 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이렇듯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초창기에 무엇보다 정책적인 세팅을 주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부서였지만, 전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 꿈이 이루어져서 작은 지청까지도 전담 부서가 있고, 사건이 체계적으로 수사, 기소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여한 것에 참 보람을 느낍니다.

Q. 2017년 방영된 <마녀의 법정> 드라마에는 변호사님을 모델로 한 드라마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민지숙 부장검사를 보고 어떠셨나요?

드라마 캐릭터에는 성폭력·가정폭력사건을 많이 처리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저와 여러 다른 검사들의 이력을 합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화이트칼라 범죄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드라마 캐릭터와 똑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제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만들었고, 초대 부장을 했고, 부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서 모델이 된 것 같습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이야기가 나온 드라마를 보면서 옛날 일들도 많이 떠오르고, 향수도 느껴졌죠. 그런데 드라마 비평을 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드라마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자꾸 분석하게 되더라고요(웃음).

Q.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뛰어나지는 않고요, 기획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추진력도 중요하죠. 정책에도, 수사에도 기획이 필요합니다. 수사를 할 때 어떤 취약점을 살펴봐야 할지를 정하는 것도 기획력이 필요한데, 변호사로서 사건을 해결할 때에도 이러한 기획력과 추진력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검사가 아닌 변호사로서 사건을 바라볼 때 다른 점이 있을까요?

검사일 때는 국민들의 권리 구제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형사사건 전담 변호사로서 바라보니, 범죄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많은데 피해자가 구제를 받을 문은 너무 좁다는 것을 느낍니다.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전 받고, 가해자가 경제적인 피해를 준 것은 환수하지 못한다면 처벌이라도 강력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못하다 보니 형사사건에서 불만을 가진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분들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정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법조 개혁에 의견이 많지만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권리 구제를 더 잘 할 수 있는지도 개혁의 한 목표로서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억울한 피해자를 전부 구제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국가소추주의가 맞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일정 부분 예를 들어, 재산범죄 같은 경우 사인소추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변호사들끼리 다툴 수 있는 여지를 두는 방식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소송과 고소만을 통해서 해결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다기합니다. 검사, 경찰, 판사 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으니, 중간 단계의 조정 기구를 국가가 세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법원 검찰에서 소송이 필요하지 않은 사건까지 다 끌어안는 것은 무리입니다. 현재 일부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민사나 형사에서 조정을 전담하는 기구를 법제화해서, 이 기구를 거쳐서 소송이나 고소로 넘어갈 수 있게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지요?

변호사 일을 하며 느끼는 점들을 글로 써 보려고 합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법 교육이 참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온정주의가 있고, 사람을 믿고 하는 일들이 많아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증거를 모으는 것에 서툰점이 많습니다. 나중에 송사로 연결되면 말뿐이고 증거가 없어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법을 조금만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많죠. 누구든지 직장,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아두면 편한 것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상적으로 겪을 법한 문제 등을 다루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려고 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유튜브도 해 보고 싶습니다.

Q. 변호사 일을 하면서 지키고 있는 원칙 같은 게 있다면?

저는 24시간 의뢰인의 전화를 받습니다. 형사사건 의뢰인들은 마음이 급하고 답답해서 새벽 5시에도 문자를 보내는데, 제가 그 시간에 읽게 된다면 답장도 바로 해 주곤 합니다. 저를 믿고 찾아와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에게 초심을 잃지 않고, 낮은 자세로, 친절한 자세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 다짐합니다.

Q. 바쁜 와중에 생기는 휴식 시간에는 어떤 취미 생활을 하시나요?

검사 생활을 하면서 지방근무 등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남편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지금은 해외여행을 다니기 어려운 시기니까, 국내에 가 보지 못한 많은 좋은 곳들을 가 보고 싶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게 저희 남편의 꿈인데, 더 나이가 들면 캠핑카 여행도 다니고 싶습니다. 어서 코로나19가 지나가서 옛날처럼 오순도순 만나서 밥도 먹고 와인도 마실 수 있는 시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여전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변호사가 있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변호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간혹 다른 사무실에 갔다가 저희 사무실로 오시는 의뢰인분들이 가지고 온 서면을 보면, ‘변호사가 쓴 서면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호사가 초심을 잃으면 법조의 지지 기반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서면은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를 믿고 의뢰해 준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좀 더 최선을 다해서 초심을 잃지 말아야 변호사로서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정리 : 김인희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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