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변호사의 조언 코너에서 이제 내 담당은 원로선배와의 만남이 된 기분이다. 지난번에 김용담 변호사님을 만났고, 이번에 ‘어떤 원로선배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변호사들에게 속 시원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찾던 중에 이 분을 추천받았다. 1941년생. 고등고시 16회로 판사를 하다가 변호사, 다시 판사로 복직을 했었다. 1987년 이제 진정한 변호사가 되어 1995년에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후 200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창립제100주년기념행사준비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2010년에는 외국인노동자 법률상담, 한센인 법률구조 등의 봉사활동의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지금도 약 20여 명의 변호사가 포진한 법무법인 신우의 대표변호사로 열심히 서초동에서 활동 중이다. 경력만 봐도 이 분이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는지 느껴진다. 날이 갈수록 답답해지는 서초동 개업변호사 생활의 해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단비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 서초동 법무법인 신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김성기 변호사 약력 · 1963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 1963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 1964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법학박사(상법전공) · 1968~1973 서울 민·형사 지방법원 판사 · 1980~1987 광주고등법원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역임 · 1987 변호사개업 · 1995~1997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1996~2002 월드컵조직위원회 감사 · 1998~2004 법무법인 CHL 대표변호사 · 1998~2002 조흥은행 비상임이사 ·사외이사 · 1998~2003 서울변호사회 신용조합이사 · 2002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 2004 제17대국회 선거구확정위원회 위원장 · 2009~2013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 · 2009~2013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 2004~현재 법무법인 신우 대표변호사 |
인터뷰/정리 : 박형연 본보 편집위원
요즘에는 보기 쉽지 않은 특이한 경력입니다. 72년에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를 하다가 73년 개업을 하였고, 80년에 다시 판사로 복직을 하였다가 87년에 재개업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1971년 7월 서울대생들이 이미 실시된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이니 곧 실시될 국회의원 선거를 야당이 거부하라고 하면서 신민당사를 난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부장판사가 지금은 돌아가신 양헌 변호사, 배석이 나와 김앤장의 장수길 변호사였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 무죄(기소된 죄명은 자유선거방해죄)를 선고한 것 때문에 73년 판사재임용에서 탈락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유신헌법 시절인데 부칙에 임용권자가 바뀌면 재임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대법원장이 판사의 임용권자였는데 유신헌법시절에 불순한 의도인지 임명권자가 대통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73년 재임용에서 소신있는 판결을 한 판사 약 50명 정도가 재임용에 탈락되었는데 우리 재판부 모두가 포함되었습니다. 그 후에 박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80년 6월경 재임용 기회가 주어졌는데 사실 재임관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김앤장의 장수길 변호사의 경우에는 거부했는데, 나는 내가 판사를 스스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속된 표현으로 짤린 것이라서 내 발로 법원을 걸어 나오고 싶어서 다시 판사가 되었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하고 내 발로 걸어서 나와 다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웃음)
95년에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리고 2007년은 서울회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그 역사를 정리한 ‘서울지방변호사회 100년사’란 책도 발간되었습니다. 2003년 그 100주년 행사준비 특별위원회가 꾸려지고 그 위원장으로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그 많은 서울회장 출신 중에 위원장이 되신 것을 보면 회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공로가 선후배들에게 인정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회무와는 어떻게 인연이 된 것인가요. 그리고 스스로 회장으로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호사들이 회무에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변호사회는 회원의 무관심으로 먹고 산다’는 자조적인 말도 합니다. 서울에 개업한 변호사들 중에 몇%가 회관에 와 봤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솔직히 변호사회나 회무에 무관심한 그런 변호사였다. 93년에 김창국 변호사가 서울회장으로 출마하면서 부회장 후보가 된 것이 회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입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김창국 변호사와 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회장이 되어 부회장으로 2년간 도와 드렸고, 저도 95년에 서울회 회장선거에 나와서 회장이 되었습니다. 회장이 되어 회원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 덕에 지금 박 변호사가 저를 찾아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한참 전의 일인데 제가 한 일 중에 잘한 일을 생각해내는 것이 조금 우습습니다. 이 기회에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우리 변호사들이 각자로는 모두 똑똑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단체를 앞세우는 것인데 회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통하여 큰일을 도모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힘을 모으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부회장 시절부터 남달리 관심을 가졌던 일은 역사를 보존하고,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민족이 지나간 역사에 소홀한 경향,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변호사회도 그랬습니다. 자료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카메라를 사 주면서 모든 회무의 자료를 찍어서 남기라고 했고, 국제교류회라든지, 위원회 자료도 모두 서면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자세 때문에 100주년 위원장의 임무도 제게 맡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웃음)
변호사님이 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변호사들에게 업무, 근무 환경이 너무 안 좋습니다. 청년변호사들에게 조언이나 덕담 한마디 해 주시죠. 솔직히 우리 때와 비교하여 후배들은 여러 가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그때는 집 앞의 마당 과수에 과일이 풍성했고, 집 앞 호수에 고기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변호사들은 별 수고 없이 그 과일을 따먹고, 고기를 쉽게 잡았습니다. 사법시험에 붙은 것만으로 모든 것이 수월했습니다. 그 좋은 시절 과수를 추가로 심거나 호수에 치어를 방류하여 후배들의 먹거리를 대비했어야 했는데 못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후배들은 가까운 곳에서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젊은 후배 변호사들은, 아니 지금의 모든 변호사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산으로, 강으로 먹거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산으로, 강으로 나가려면 지도를 읽는 독도법(讀圖法)을 배워야 하고, 뱃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사냥을 하려면 이제는 총의 유효사거리도 늘여야 합니다. 저는 그 새로운 기술이 바로 전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을 때 전문화를 시도하는 후배나 친구들을 보면서 솔직히 쓸 데 없는 일을 한다고 비웃기도 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을 보면 해당 분야에서 성공했고,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젊은 변호사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그 전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청년변호사들을 위하여 서울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호사협회와 같은 변호사단체들은 어떤 일을 하여야 할까요.앞서 집 앞에 먹거리가 없어 저 멀리 있는 먹거리를 찾기 위하여 전문화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개인의 생각으로는 부족하고 변호사단체 차원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변호사들에게 어떤 먹거리의 지도를 그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머리엔 전문화밖에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지만 변호사단체 차원에서 연구를 하면 많은 먹거리의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후배변호사들은 앞으로 나가서 변호사의 직역을 확대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걱정하는 변호사회와 회원의 거리도 무척 가까워질 것입니다.
혹자들은 변호사단체의 회장이나 변호사단체가 변호사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곧 선거철이 다가올 것이고, 많은 후보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나올 것입니다. 총론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듯이 변호사단체의 회장은 회원들에게 비전과 꿈을 제시하여야 하고, 하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대사회는 특히 지금의 변호사업계는 비전만 먹고 살기에는 너무 각박합니다. 그래서 나는 추상적인 비전보다는 먹거리의 지도를 변호사단체가, 회장으로 출마하는 사람들이 제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변호사 수가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요. 사실 변호사 수가 많은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준비도 없이 한꺼번에 변호사 수를 너무 늘려놓아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지금 변호사 수를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역발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이 늘어난 변호사들이 힘을 합치면 힘이 커지고, 힘이 커지면 예전에 하지 못하던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힘을 모으는 구심점이 변호사단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서울회나 대한변협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 때보다 너무 수가 늘어서 경쟁이 심해진 지금의 후배들에게는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 최고가 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나 협회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변호사단체의 역할과 힘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회장까지 역임한 원로로서 지금의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의 집행부를 위하여 충고나 조언을 좀 해 주시죠. 회장이 된 사람들은 참 열심히 합니다. 저도 그랬고, 지금의 회장도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임기를 마치고 되돌아보면 미흡한 것과 아쉬운 것이 많다. 원래 세상일이 그런 것입니다.
현재의 집행부를 위한 조언과 충고는 조심스러운 것인데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회원과 변호사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노력을 경주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회원이 회무에 관심을 가질 때 변호사회는 힘이 생기고,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변호사회 운영이 회장 1인체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이제는 개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회무에 직접 참여해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회장 1인체제로 회무가 운영되다 보니 모든 임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회장 얼굴만 쳐다보게 되고, 회장이 해외출장이라도 가면 사실상 회무는 중단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회무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변호사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변호사단체가 미래 변호사들의 먹거리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금전 말했는데, 그런 일을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수행하려면 지금 변호사단체의 운영체제나 지배구조(회장 1인체재)에 대하여 진지한 반성을 해 보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한변협이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이 되고, 세월호특별법을 협회에서 초안하였는데 그중에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내용이 들어간 것에 대하여 법조계 내에서도 찬반양론이 있습니다. 이런 논쟁에 대하여 변호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원로로서 현실적으로 대립하는 안건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는 것 같고, 다만 법치주의의 내용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저의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예전에 우리 선배들은 유신의 총칼 앞에서도 법치주의와 인권수호를 외치며 투쟁을 하였고, 그로 인하여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은 법률이라는 것이 국가 질서유지가 주된 목적이고, 법률의 역할이 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였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외치면서 국가권력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듯 그때는 대립의 구조나 싸움의 논리가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법률의 역할과 기능이 치안, 질서의 유지를 넘어 너무나 다양해졌습니다. 그와 함께 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세월호특별법도 참사의 원인을 밝히자는 것인데, 한쪽에서는 법이 너무 나가서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기에 부족하다고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국민들의 생각도 나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법조계 내에서 세월호특별법은 법치주의에 위반되니, 안 되니 하는 진영논리, 형식논리의 주장과 반박만 오고가는 것은 성숙해 보이지 않습니다. 법의 역할과 기능이 변경된 만큼 변호사단체의 역할도 변경되고,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 변호사단체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힘을 행사하느냐, 자제하느냐의 문제만 남는 것입니다.
고전을 읽는 재미, 원로를 만나는 재미는 세월을 이겨낸 삶의 지혜를 접하는 것이다. 그런데 치열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간혹 그 지혜는 옳으나 공허할 때가 많다. 그 지혜를 삶속에서 풀어내는 내공이 부족한 우리들의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김성기 변호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 분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지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답을 함께 찾으려고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원로선배변호사가 아니라 그 역시 여전히 해답을 찾고 있는 청년변호사였다. 그런 선배를 만나면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하여 반성이 되고, 한편으로는 힘이 난다. 다들 힘을 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