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담을 하다 보면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희박한 사안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불리한 사정들을 고지해 주고, 소송을 포기하도록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패에 상관없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꼭 소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해 드릴 사건이 바로 그러합니다.

의뢰인은 조현병 환자인 아들을 둔 노모였습니다.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아들은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칼로 의뢰인의 목을 그었습니다. 이 사건은 뜻밖에도 국가배상사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건의 이면에는 좀 더 기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현병 환자는 겉으로 보기에 일반인과 다름이 없습니다만, 일단 병세가 악화되면 돌발행동을 합니다. 30대인 의뢰인의 아들은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와 누이의 목에 식칼을 들이댔고, 지나가던 행인에게 칼을 휘두르기도 하였습니다. 사건 후 경찰이 출동할 때마다 아들은 매우 침착하여 정상적으로 보였고, 오히려 신고를 했던 의뢰인에게 ‘아들을 신고하다니 계모가 아니냐?’라는 질문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아들은 의뢰인에게 “죽어! 내가 죽여줄까?”라고 하면서 재차 사나운 전조를 보였습니다. 의뢰인은 늦은 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경찰서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담당 경찰관들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가, 원고가 2차례의 신고 끝에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결국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오전 경찰, 구급대원, 사회복지사 등이 아들의 입원을 위해 모였습니다. 아들이 먼저 구급차에 탄 뒤, 의뢰인은 자기 차를 타고 따라가고자 하였습니다. 최근 자신에게 수차 살해 협박을 하였던 아들이었기에 같은 차에 타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너무 멀쩡해 보이자, 출동 경찰관이 의뢰인에게 아들과 함께 구급차에 동승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당연히 의뢰인은 거부했습니다. 이번에는 소방대원과 사회복지사까지 합세하여 의뢰인에게 구급차에 탈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다수의 압박이있던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의뢰인은 아들의 신속한 이송을 위해 구급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구급차 안에서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칼로 의뢰인의 목과 얼굴을 베었습니다.

아들은 존속살해 미수의 죄명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의뢰인은, 의사의 말에 의하면 1미리만 옆으로 비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수술 후 꿰맨 상처로 입이 돌아가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담당 경찰관을 고소하고,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희 사무실에서 국가배상사건을 진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재판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구급차에 타던 당시의 CCTV 화면을 확보하였고,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 중 5명이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보이는 증인은 출석을 거부하였습니다. 증언이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의뢰인은 매 기일마다 편치 않은 얼굴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긴 법정 공방 끝에 결국 일부 인용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당초 청구금액도 크지 않았고, 그마저도 일부 감축되기는 하였지만 의뢰인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단 한 명의 판사님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법학자인 루돌프 폰 예링은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까닭은 단순한 금전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침해받은 불법에 대한 도덕적 고통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단지 소송물을 다시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다.’라고 하였습니다.

변호사로서 대부분 금전적 측면에서 소송 실익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단지 금전적 배상의 문제를 떠나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변호사를 찾아오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의 도덕적 고통을 덜어주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은 제 자신에게도 새삼스러운 격려가 됩니다.

이원미 변호사 ●가로재 공동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