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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에 대한 신뢰


2018년 10월 즈음, 법인에서 사기사건(공판)을 수임하게 되어, 담당변호사로서 공판을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사건 수임에 관여하지 않아서, 의뢰인들(두 사람, 공동피고인)보다 증거기록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의뢰인들은 사업을 계획하고, 공동투자약정을 체결하여 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사업이 중단되었다. 이에 고소인이 자기들이 할 수 없었던 사업을 빌미로 돈만 받아 갔다며, 의뢰인들을 상대로 사기로 고소했던 것이었다.

이 사건 증거기록을 검토하고 처음 받은 인상은, ‘무죄를 받기는 어렵겠구나’라는 것이었다. 기록 검토 후 의뢰인들을 만나 보았다. 의뢰인들은 고소인이 약속한 돈도 다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받은 돈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업을 위하여 다 썼고, 오히려 고소인이 사업에 협조하지 않아 결국 사업이 중단되었다고 하였다.

고소인과 의뢰인들 중 누구 말이 맞는지는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첫 공판기일을 준비하며, 의뢰인들의 주장을 반영하여 증거에 대한 의견서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증인은 총 6명을 신문하기로 계획했다.

이렇게 재판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검찰 측 증인들에 대한 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 중 한 분의 말씀이 수사 단계에서의 진술과 일관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특히 ‘고소인 주장에 배치되는 본인 주장에 이러이러한 증거가 필요한데 있냐’고 물어 보면,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그러한 증거를 찾아오셨다. 이 과정에서 나의 심증도 무죄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한 증거를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고소인 측 주장을 탄핵하면서, 재판은 우리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약 8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결론이 났다. 유죄. 의뢰인들은 법정구속되었다.

판결이유와 이후 진행절차에 대해 설명을 드리러 구치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뢰인들 모두 항소심도 진행해 주기를 원하셨다. 다만, 한 분은 선임계까지 작성하셨다가 수임료 문제로 항소심 수임까지는 연결되지 못했고,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던 분’께서는 다시 사건을 맡겨 주셨다.

그래서 항소심에서도 계속 변론을 하게 되었다. 항소심에서는 추가로 증인 2명을 더 신문하여 1심의 사실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의뢰인들의 은행 거래내역을 일일이 언급하며, 은행에 대한 사실조회와 지도, 시간 등을 토대로 의뢰인들이 받은 돈 대부분이 사업을 위해 쓰여졌다는 주장도 하였다.

재판부에서는 이를 다 인정하셨는지 결국 의뢰인들을 보석으로 석방하여 주셨고, 의뢰인들은 얼마 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나중에 검사의 상고도 기각).
 

이렇게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의문이 들었다.

최악의 결과를 받은 의뢰인으로서는 나에게 다시 사건을 맡길 이유가 없었을 것 같은데, 왜 또 맡기셨는지. 한참 후에 항소심을 맡겼던 의뢰인 분께 이 부분을 여쭈어보았다. ‘믿었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1심에서 증인신문을 준비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의뢰인들을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한 믿음 때문에 사소한 사실관계까지 파고들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고소인 측 진술들을 의뢰인들이 지켜보는 법정에서 탄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이 가져온 결과는 안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의뢰인들은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던 것 같다. 의뢰인에 대한 나의 신뢰가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나타났고, 이를 본 의뢰인들이 다시 내게 신뢰를 준 셈이다.

다양하고 사연 많은, 특히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형사사건의 의뢰인들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갖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의뢰인에 대한 믿음과 이에 근거한 사건의 본질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의뢰인도, 나아가 재판부도 보답을 해 주는 것 같다.
 

현희철 변호사
● 법무법인 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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