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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pier 36, 반 고흐 얼라이브 전시를 다녀와서


 뉴욕에서 열린 반 고흐 얼라이브 전시를 다녀왔다. TV 화면보다도 작은 액자 안 그림으로만 보던, 혹은 그보다도 더 작은, 화집 안 사진으로만 보던 반 고흐의 작품이 온 방을 가득 채우도록 확대되어 벽과 바닥에 투영되었으며 음악에 맞춰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 전시회에는 진품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반 고흐의 작품은 관람객을 채운 방을 가득 메우며, 관람객을 화가의 세계로 깊숙이 이끌었다.

 Pier 36은 맨해튼 외곽을 따라 달리는 FDR 고가도로(Franklin D. Roosevelt East River Drive) 아래 커다란 대형 창고 건물이다. 하지만 이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만큼 Pier 36 전시장 내부는 다채로운 색상의 붓질과 어우러진 음악으로 강렬하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전시 방법이 굉장히 신선했고, 어떻게 이 전시가 가능해졌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선, 하이 아트(high art)를 대하는 자세가 변한 게 아닐까 싶다. 대중문화만이 아닌 하이 아트도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감히, 대가의 작품을 훼손하는 건 아닌지라는 의심과 걱정보다, 화가의 의도를 살려 보려는 상상력을 가지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있었다. 이를 위해 이 전시를 기획한 감독, 마시밀라노 스카르디(Massimiliano Sccardi)는 3,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하고 전체적 이야기와 분위기를 직조해냈다. 이것은 반 고흐의 전시이기도 하지만, 반 고흐의 그림을 이용한 감독의 설치미술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호기심 많은 대중이 있었다. 수많은 소셜 미디어가 등장했고 사람들은 더 다양하고 더 신선하고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비한다. 별이 빛나는 밤의 별들을 따로 오려서 다른 작품과 섞고, 화가가 그린 붓꽃의 일부를 따서 반복적으로 겹친다. 음악과 향기가 더하고 화가의 노란 방을 해체했다 재조립한다. 이러한 확대와 왜곡, 합체와 병치는 공감각적 경험으로 다가와서, 서너 발자국 뒤 그나마도 다른 관람객들 뒤에서 겨우 몇 초, 몇 분 진품을 바라보던 경험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이 강한 자극을 남긴다. 관람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30여 분간의 전시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전시공간과 관람객 모두를 예술로 끌어들인, 설치미술의 예는 바로 이곳 뉴욕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팝 아트의 대표적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1960년대 익스플로딩 플라스틱 인에비타블(Exploding Plastic Inevitable)이라는 멀티미디어 이벤트를 통해 예술의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영화가 천장, 바닥, 벽에 투영되는 공간에,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불러 연주하도록 하고, 이에 직접 라이팅 이펙트도 더했다. 당시 ‘팩토리’의 ‘단골’들이 참여해 춤을 추고 공연을 했다. 팝 아트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EPI는 뉴욕의 트렌디한 나이트 클럽의 감각적 인테리어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건축적으로는, 절대적이고 영속적이라고 봤던 건축을 유기적이고 일시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나 절제와 단순함의 미학으로 무장한 모더니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무색무취의 하얀 상자 같은 New York MoMA의 전시장에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Pour Your Body Out”이 채워지는 순간, 이 엄숙하고 점잖은 공간은 사이키델릭한 에덴의 동산이 되었다. 분홍색 커튼과 대형 쿠션이 설치미술의 일부로 제공되어 관람객들이 편하게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벽과 바닥에 떠다니는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을 듣고 즐겼다. 이런 건축과 영사한 이미지와의 발칙한 조합을 건축이론가 실비아 라빈(Silvia Lavin)은 『키싱 아키텍쳐』라는 저서에서, 키스와 같다고 비유했다. 건축과 미술이라는 두 매체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긴밀하게 마찰하기 때문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건물의 벽, 구조, 심지어 동선도 변경하지 않는다. 빔 프로젝터로 영사한 이미지는 하얀 건물의 벽과 천장, 바닥을 투명하게 비춰 내고, 본래 건물이 전혀 의도치 않았던 감각을 이끌어낸다. 뒤에 들어오는 관람객들에 치여 원하지 않는 속도와 동선으로 새하얀 벽 사이를 걸어가던 관람객들이 몽환적인 분위기의 공간에 홀리듯 자리에 주저 앉아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시도는 건축가들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의식이 깨었고, 원하는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장치와 효과가 필요한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재료, 또는 새로은 미디어와의 관계/키스에 대한 연구와 개발도 진행되었고, 풍부한 효과와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 시도가 있었다. 유엔 스튜디오(UN Studio)가 작업한 갤러리아 백화점 펄디스크 입면이 좋은 예이다. 백화점이면서도 광고나 로고로 입면을 매워 판매와 소비를 강요하지 않고, 건물의 겉면 전체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미장센이 되도록 했다. 낮에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저녁에는 다양한 색을 내뿜는 조명이 되어 도시적 맥락에서 새로운 경험과 미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장르적 교류와 마찰은 살아있는 오늘의 예술과 새로운 도시경관을 만들어낸다. 앤디 워홀이 열어 둔 EPI가 다양한 규모와 다채로운 분야로 확산, 반복, 생성되어가는 현상을 우리는 소비하고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서 오는 흥분과 기대감이 이다음의 미디어 간 키싱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윤유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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