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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전 감독 인터뷰


 2014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라오스, 베트남 등에 야구를 전파하고 있는 이만수 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할 때가 지금이에요(웃음). 제가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또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위해서 평생을 달려왔던 사람이다 보니 현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10월 말에 SK 와이번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날 때 저는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픔이라는 것이 새로운 다른 길을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라오스 등 동아시아 지역에 야구를 전파하는 세컨드 라이프를 살고 있습니다.

Q.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에 입단한 뒤, 1군 통산 1449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9푼6리(4310타수 1276안타) 252홈런 860타점 624득점 52도루를 기록하시고, 1983년 정규 시즌 MVP, 이듬해 타격, 홈런, 타점 1위를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셨어요. 1983년부터 5년 연속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레전드이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야구를 잘 하셨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야구 아니면 나는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그리 잘한 것도 아니었고요. 저희 아버님이 고향이 이북이시고 직업 군인이셨는데, 굉장히 엄하셨어요.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군인 정신으로 야구를 시키셔서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루 네 시간밖에 안 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야구가 너무 재미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유니폼만 입으면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운동을 하면 근심거리가 없어지잖아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뛰고, 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Q. 라오스, 베트남 두 나라에 야구를 전파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느라 제 전 재산을 다 쏟아부었습니다(웃음). 사실 SK 와이번스 감독에서 물러난 뒤 약간 피신하는 식으로 라오스로 갔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라오스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라오스 들어가서 야구를 전파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야구는 자본주의 스포츠거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이 많이 드는데, 가난한 나라에 야구를 어떻게 보급시킬 수 있겠냐고들 했어요.

 베트남 야구는 2019년 말부터 이야기가 되었고,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려고 하였는데, 2020년 2월에 코로나19가 터져버렸어요. 팬데믹 시대가 되어서 비행기가 안 떴죠. 베트남에 야구를 보급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약속을 지키려고 이메일과 SNS 등으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2019년 12월 30일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과 SNS 내용을 출력해 보니 A4 용지로 1,400 페이지가 되더라고요. 팬데믹 시대라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평생 온라인으로 이렇게 일하는 방법을 몰랐는데, 팬데믹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해 보게 되었지요.

Q. 어린 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일단 재미를 붙이게 하는 게 첫 번째예요. 그러려면 주입식으로, 일괄적으로 다 똑같이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주입식 교육을 하면 지도자들만 편합니다.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국제대회에 나가서 한 투수한테 팀 전체가 말리지 않을 수 있어요.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배운 것이 지도자는 잘하는 것을 북돋아 주는 방식으로 코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받은 교육은 못한 점을 지적받는 것이었으니까 저도 처음에는 코치를 하면서 지적을 했어요. 그런데 감독이 저를 부르더니 ‘선수의 좋은 점은 없냐. 너는 왜 맨날 지적만 하냐. 앞으로 지적만 계속 하면 쫓아내겠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장점을 보고, 장점을 발전시켜서 단점을 희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Q. 야구계에서 가정적인 분으로 유명하신데요.

 아내를 잘 만나서 지금의 제가 된 것이니까요. 아내를 안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거예요. 제가 젊었을 적에는 웃지도 않고 눈도 찢어지고 위로 올라가서 무서운 인상이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너무 무섭게 생겼으니까 웃기라도 하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웃었어요. 잘 웃는 게 미국생활을 할 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가 고집도 세고 집념도 강한 사람인데, 아내가 헌신해 준 덕에 제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내와 연애하는 기분이에요. 선수 시절이나 감독 시절에는 원정 경기를 가거나, 한 달씩 캠프를 가기도 하잖아요. 지금도 외국에 자주 나가고요. 결혼 생활 3분의 1 이상은 떨어져 지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더 애틋한 것도 같아요.

Q. 아내분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만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와이프가 제 첫 여자예요. 엄하셨던 아버님이 당연히 연애도 못하게 하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야구를 조금 잘했어요. 당시는 고교 야구가 지금 프로야구 이상으로 인기가 많았으니까, 여성 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팬레터가 왔겠어요. 그런데 저는 한 장도 못 받아 봤어요. 알고 보니 아버님이 학교 교장실로 찾아가서 저에게 오는 팬레터를 모두 수거해 가셔서 불태워 버리셨던 거예요.

 제가 대학 가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여학생이랑 제과점에서 데이트하고 연애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해서 정문을 지나가다가 와이프를 보았는데, 너무 예뻐서 계속 쫓아다녔어요. 당시 운동선수라 머리도 빡빡이여서 그랬는지 처음엔 퇴짜를 맞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와이프가 제 남동생 여자친구의 친구였어요. 남동생이 다리를 놓아줬죠. 그렇게 대학 4년 연애하고,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가을에 결혼했어요.

Q. 남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 재단을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음악 교육을 통해 희망을 갖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음악가가 됩니다. 야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은 인생의 마지막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베풀 수 있는 방법이 야구예요. 제가 가진 것이 야구니까요. 미얀마, 캄보디아, 마지막으로 태국까지 야구를 전파하고 싶어요.

 그리고 80살까지 남은 20년 동안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섯 나라에 야구를 보급시키는 것이 마지막 꿈이에요. 벌써 두 나라(라오스, 베트남)는 보급을 했어요.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한 지가 7년이 좀 넘었어요. 베트남에는 올 4월 10일 최초로 야구협회가 설립됐어요. 나머지 나라들에 전부 야구를 보급하는 프로젝트는, 제가 다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못하면 누군가 이어서 할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현재 라오스뿐만 아니라 지금도 50군데 넘는 곳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재능기부를 할 때 목적이 있었습니다. 제 모습을 보고 누군가 따라와 줬으면 했어요. 사실 1년 동안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째에 한 선수와 학부형으로부터 “제가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되든 안 되든 저도 감독님처럼 나중에 재능기부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 봉사하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받았어요.

 저는 목적을 이룬 겁니다. 제가 라오스, 베트남 가서 야구를 전파하고 헌신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당장은 따라오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제 기부와 헌신이알려지면, 사람들이 ‘월급도 없는 이만수가 저렇게 하는데, 수십억 FA 대박 터진 선수는 1억이라도 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간접적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야구 선수들이 큰돈을 벌면 기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변호사님들 한 분, 한 분께서 그런 정의로운 역할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람되지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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