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유년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늘 그리운 음식이 된다. 외할머니께서 한 솥 가득 투박하게 삶아 주신 양념도 안 한 닭발이라든지, 명절 때 큰어머니께서 척척 뒤집어 부쳐 주신 배추전이라든지, 오늘 얘기할 칼국수가 나에게는 그렇다.

 나의 칼국수 사랑은 어머니께서 주말마다 만들어 주신 칼국수에서 시작되었다. 경북 김천 지역의 토속 방식으로 만들어져 특별한데, 조리 방법은 특별할 게 없다. 육수는 따로 내지 않은 맹물이고, 밀가루와 콩가루를 7:3 정도로 섞어 반죽을 했다. 홍두깨로 반죽을 밀고 얇게 썰어낸 후 비법 조미료가 약간 들어가면 고소한 칼국수가 완성. 반쯤 먹다가 대파, 청양고추가 들어간 양념장을 더하면 툭툭 끊어지는 면발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을 수 있다. 나에게는 최고의 식사였고, 나의 칼국수 사랑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오늘은 늘 칼국수를 그리워하는 이가 자주 가는 서초동 칼국수 맛집을 몇 군데 소개하려고 한다.
 

명동 곰돌이

 교대역에서 삼풍아파트 방면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마주하는 고풍스러운 음식점. 분위기에 걸맞게 맛도 좋다. 국수 이름은 참국수이고, 육수는 도대체 무엇으로 내었는지 고기 향과 멸치 향이 동시에 나는 신기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면발은 정말 보들보들하고 얇은 면을 사용하는데, 면에 국물 맛이 완전히 배어 있어 입에 착착 감긴다. 그리고 쑥갓 반 줌 정도가 올라가 향긋함을 더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 집의 주메뉴는 참국수와 더불어 치킨이다. 실로 오묘한 조합인 이 둘은, 너무나 큰 궁금증을 유발하여 처음 온 손님은 참국수와 치킨을 함께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치킨은 튀김이 매우 얇은 옛날 통닭 느낌인데, 기름이 잘 빠져 있어 담백하다. 평범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칼국수와 어울리는 통닭을 팔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싶게 칼국수와 기가 막힌 조합을 완성한다.

 다만, 점심 무렵엔 늘 북적이는 곳이라 시간을 잘 맞춰가지 않으면 대기할 수 있다.

신숙(新宿)

 서초역 8번 출구 변호사회관 인근. 외관만 보면 무엇을 파는 식당인지, 아니 식당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게가 있다. 한자로 간판을 적어 놓아 읽기조차 어려운데, 일본의 지명인 신주쿠를 한자로 쓴 신숙(新宿)이다. 재밌는 것은 메뉴판도 없다. 메뉴판을 달라고 하면 ‘칼국수랑 빈대떡이 전부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와 모르는 사람이 가면 그제서야 여기가 칼국숫집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여러모로 불친절한 이곳은 맛과 서비스는 친절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따뜻한 물수건(여름에는 찬 물수건)과 함께 배추김치, 갓김치, 약간의 공깃밥, 찻물이 나온다. 일단 물수건이 나와 반갑고, 김치를 담은 솜씨가 너무나 정갈하다. 거기에 갓김치의 톡 쏘는 맛을 한입 보면 칼국수가 정말 기다려진다.

 이 집 칼국수는 멸치, 버섯, 가다랑어포 등으로 육수를 내고 면은 해초를 갈아 만들었기 때문에 국수가 초록초록하다. 그리고 지단으로 달걀, 소고기, 버섯이 올려져 있는데, 지단 맛이 면과 육수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국물 맛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내공의 깊이가 과연 상당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데, 또한 묵직하다. 처음 맛봤을 때는 약간 심심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가서 생각나는 맛이라 평양냉면에 견주기도 했다. 함께 나온 갓김치, 공깃밥을 잘 활용하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된다.

 다만, 칼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 점심시간에 북적이는 건 감안해야 한다.
 

우밀가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안동국시 전문점인 우밀가이다. 대법원 대각선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안동국시를 선봉으로 모둠전, 한우 수육, 메밀묵 무침 및 제철 요리를 주메뉴로 한다. 왜 이름이 국시인가 하니,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글어서’ 그렇다고 한다.

 안동국시의 육수는 한우 양지로 끓여 담백함을 더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은 반죽이라 면발은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지만 그만큼 부드럽고 고소하다. 여기에 함께 나오는 깻잎, 부추 무침도 국시와 참 잘 어울린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쌉싸름한 깻잎으로 고소한 국시를 감싸 먹으면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켜야 할 것 같다.

 갓 구운 모둠전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둠이라기엔 육전과 동태전 뿐. 동태전이 일품이다. 명절에 내가 아무리 전을 구워도 그런 맛이 안 나오던데, 어쩜 그렇게 간도 적당하고 예쁘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강추다.
 

홍두깨의 맛

 칼국수는 홍두깨에서 시작된다. 기계에서 느낄 수 없는 구성진 맛. 칼국수는 결국 홍두깨로 반죽을 연신 밀어내야 하는 고된 작업인 것이다. 이제 어머니께 그리운 칼국수 타령이나 하면서 조를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칼국수 맛집을 찾아다녀야겠다.

임다훈 변호사 ● 법무법인 청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