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 향하는 길에 의뢰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변호사님, 오늘 반드시 끝내 주셔야 해요. 아시다시피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고 있어요, 만약에 오늘 속행되면 저희 조합 큰일납니다.” 투사의 마음으로 법정에 들어갔다. 의뢰인의 간절한 마음이 재판부에 전달되었던 것인지 변론은 종결됐고, 판결 선고일도 2주 뒤로 잡혔다. 기일 내용을 전달받은 의뢰인은 ‘변호사님이 최고’라며 필자를 연신 치켜세웠다. 그러함에도 사무실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필자는 주로 도시정비사업 조합사건을 많이 다룬다. 정비사업은 소송이 빈번한 분야다. 행정청의 인 · 허가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 총회의 효력 등이 문제되는 민사소송, 임시적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사업 진행에 따라 필수적으로 제기되는 매도 청구소송 등 다양한 사건이 진행되는데, 누군가 필자에게 수행하기 가장 어려운 사건이 무엇이냐 물으면 필자는 망설임 없이 명도소송을 꼽는다.

 조합이 수립한 관리처분계획이 인 · 허가청에 의해 인가 · 고시되면,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구역 내 토지 또는 건축물에 대한 사용 · 수익권을 취득한다. 조합은 이를 근거로 위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 지상권자 · 전세권자 · 임차권자 등에게 부동산을 인도하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다. 철거, 착공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명도소송에 복잡한 사실관계나 까다로운 법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저 속도전이다. 이주가 개시되면 이주비 대출이 이루어진다. 조합원들이 공사기간 동안 머무를 곳을 구하기 위함인데, 이 대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종전 집값의 40%만 잡는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천억에 이르고, 이에 큰 현장은 하루 이자만 해도 억대에 달한다. 그러니 조합으로서 이주 기간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이주가 지연되면 당연히 사업비는 증액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착공이 늦어짐에 따른 공사비 증액, 준공 시기 변화에 따른 분양 시장의 불투명성까지 고려하면 명도소송이 얼마나 빨리 끝나는지에 조합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합은 나름 충분한 이주 기간을 부여한다. 4개월에서 1년의 기간을 잡고 이주를 장려하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갈 데가 없다, 보상금을 달라는 등의 이유로 버티기에 들어가는 세입자 등이 나타난다. 전체 이주가 완료되지 않으면 공사는 진행될 수 없고, 이에 미이주 세대가 단 1세대라도, 조합이 부담하는 이주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 사건이라도 진행이 늘어지면 변호사는 마음이 급해진다. 이에 어떻게든 오늘 종결시키겠다는 다짐으로 기일에 나가지만,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법정에서 엉엉 우는 피고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쓰려진다. 더군다나 요즘같이 급작스럽게 전세가가 상승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보증금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예측되기에 더 그러하다. 그러나 조합도 사정이 급하고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조합’이 울 수 있다면, 아마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다. 필자가 명도소송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번은 후배변호사가 마음이 아파 명도소송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해 온 적이 있었다. 본인은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건 강자가 약자를 내쫓는 가혹한 소송인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당사자 간에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180도 달리 보일 수도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에 서서 의뢰인의 입장을 최대한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본인의 가치관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변호사의 숙명이 아닐까.

곽노규 변호사 ● 법무법인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