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평창에서 열렸다. 생물다양성이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지를 지구생명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 태양과 지구의 나이는 각각 50억 년과 45억 년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원시 지구의 대기에도 산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대기 상층부에 오존층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그대로 지상에 도달했다. 현재와 다른 이런 상황에서 생명체가 지상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최초의 생명체는 자외선이 걸러지는 바다 속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지구 최초의 생명은 약 35억 년 전에 탄생했으며, 지금의 남조식물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유전과 진화에 의해 생명의 역사가 이어졌다. 원시 생명체가 탄소동화작용을 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대기층에 산소가 축적되고 성층권에 오존층이 형성되면서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차단됐다. 그 결과 지표면도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육지가 비로소 생명체의 활동 공간이 됐다.
최초 생명의 탄생 이후 생명의 역사는 20억 년 가까이 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 여러 번의 도약을 거쳐 개체수가 번성하고 생명종이 다양해지면서, 원생동물, 해면동물, 연체동물, 어류가 차례로 나타났다. 약 4억 3천만 년 전에 육상식물이 나타난 이후 양서류와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육지에서 번성하게 됐다.
이런 지구생명사의 과정에서 존재했던 생명종의 수는 40억에 이르지만 현재 살아 있는 생명종의 수는 400만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현재 살아있는 생명종의 수의 천 배가 넘는 생명종이 지구상에서 언젠가 살았었다는 것이기도 하고, 공룡이나 암모나이트뿐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종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구생명의 역사란 과거의 생명종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명종이 만들어지는 연속된 과정이다.
존재하던 생명종이 사라지는 일은 흔하지만, 짧은 기간에 대부분의 생명종이 사라지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만 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생명종이 사라지는 것을 대량멸종(mass extinction)이라고 하는데, 생명사에는 여러 번의 대량멸종이 있었고 적어도 다섯 번의 대량멸종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대규모로 진행됐다. 이 다섯 번의 대규모 대량멸종에서는 각각의 시기에 존재했던 생명종의 적어도 75% 이상이 사라졌다. 그 원인은 기온의 급격한 변화, 전 지구적인 지각 변동, 대규모의 화산, 큰 운석과의 충돌, 대기 조성비의 변화, 대양의 화학적 변화 등 아주 다양하다.
문제는 지구가 여섯 번째 대규모 대량멸종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여섯 번째 대량멸종은 자원의 낭비와 고갈, 병원균의 확산, 공기와 물의 오염, 산업화에 따른 전 지구적인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도시화와 경작지의 확산으로 인한 서식지의 축소와 파편화, 사냥과 남획으로 인한 직접적인 종의 멸종 등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전에 있었던 대량멸종의 원인과 확연히 다른 이 모든 원인은 단 하나의 생명종인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생명종에 의해 대량멸종이 촉발된 경우는 지구생명의 역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서식지의 예를 들어 보자. 동물도 인간처럼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자신과 먹이 경쟁을 하는 다른 개체와의 상호 약속일 뿐이다. 곰이 자신의 구역을 표시하면서 다른 곰이 그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는 하지만, 곤충과 새가 그 곳에서 사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인간은 자신의 구역 안에 다른 동물이 들어오는 것을 엄격하게 차단한다. 인간은 지구의 전 영역에서 다른 생명종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그래서 인간의 개인 소유지는 사람들 사이의 배타적 구획 설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동물의 생존을 근원적으로 제한하는 장벽이 되기도 하다. 개인 소유지를 만들고 경작을 시작하면 어느 곳이든 예외 없이 여타 동물의 서식지가 제한되고 파편화되며 생명종의 다양성이 붕괴된다.
생존을 위한 생활 터전의 확보는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권리지만, 다른 생명종을 절멸시킬 권리는 인간에게도 없다. 왜 그런가? 인류가 누리는 대부분의 혜택은 지구생명의 모든 구성원이 생명의 전 역사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생명체계는 30억 년이 넘는 장구한 기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현재의 지구는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조성비인 21%의 산소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대기권 상층부에 오존층을 형성하여 육지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석탄과 석유 등의 화석연료는 고생대 생명체의 잔해를 열과 압력을 가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생명 전체가 수십억 년 동안 가꾸면서 형성한 것이 현재의 지구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생명종에 불과한 인간에게 이 소중한 지구환경을 파괴할 권리가 주어질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인정해야 한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구 환경을 대규모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생명사 전체와 견주어 볼 때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인류는 다른 생명종이 살 수 없는 지구 환경을 만들면서 생물다양성의 감소와 대량멸종을 촉발시키고 말았다. 지금의 생활방식을 고집한다면 농경생활을 했던 만년이란 기간보다 더 짧은 기간 안에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지구생명 모두는 38억 년을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라는 점을 자각하고, 우리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전체 생명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양형진 교수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