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절적 시간은 겨울을 지나고 있고, 정치적 시간은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따뜻한 바닥에 온몸을 의지한 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선거 구호와 세력 간의 비방이 언론과 인터넷에 넘쳐나면서 생기는 정치에 대한 혐오로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겠다는 감정이 생겨나기 쉬운 시절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때때로 게으름을 만끽하면서 냉소적 고립의 삶에 대한 강한 유혹을 자주 느끼고는 합니다.

 그런 와중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일약 ‘칼럼계의 아이돌’로 등극한 김영민 교수의 새로운 책인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을 읽었습니다. 신문 칼럼 정도의 길이의 글들을 모은 책(실제 신문에 실었던 칼럼들도 상당수 있습니다)으로 관련성은 있지만 독립적인 글들이어서 한 번에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길지 않은 각 편의 글에서도 독특한 저자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상적인 칼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신만의 형식을 추구하고, 하나의 글이 꽉 짜인 극본처럼 기승전결을 이루고 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저자의 유머와 위트가 담긴 비유들입니다(예를 들어,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 /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 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 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등).

 글의 독특한 스타일과 참신한 비유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이 책의 주제인 ‘정치’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에서는 주로 총론적 논의를, 후반으로 갈수록 각론으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주제에 대한 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정치의 필요성, 정치의 수단, 정치의 동력 등에 관해서 저자의 생각을 펼치고, 정치의 구체적인 행위들(선거, 투표, 연설, 외교 관계 등)에 대해서 바람직한 방향과 경계해야 할 지점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후반에서는 구체적인 문제들과 현상들(다민족 사회, 동성애, 팬데믹 시대, 강남 아파트 등)에 대해서 해부하여 펼쳐놓고, 영화나 예술작품과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시대의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후반부의 칼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한 말발을 가지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 가는 저자의 역량 때문에 읽는 순간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많았지만, 가끔은 장황하고 고차원적인 서술로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고, 다시 생각해 보면 동의하기 어려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논의들도 있었습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에서는 오랜만에 세상과 저에 대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게으름과 고립의 유혹이 과도하다고 느껴져 작은 변화를 고려하실 때 읽어 보면 좋은 책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전용원 변호사 ● 법무법인 트리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