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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인문학두드림] 소감, 어떤 이들의 진솔한 고백
어떤 이의 신춘문예 수상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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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년은 참으로 쓸쓸한 세월이었다. 그 염염(炎炎)한 불면의 밤들, 수없이 비워지던 잔, 삼십 분마다의 절망…… 재작년에야 겨우 「매일신문」에 가작을 냈지만 여전히 빈곤(貧困)과 무명(無名)은 나의 오래인 벗이었다. 이제 그들은 떠나려는가.
무겁던 서른의 나이가 오히려 가볍다. 감사하다. 살아있는 모든 이들, 존재하는 모든 것이여.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아 있으리. 우리의 출발은 그것을 위해 있었으리.

그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고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홀로 월북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궁핍에 시달리고 멸시를 당하며 전국을 돌았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이 매번 좌절되자 결국 대학교를 중퇴해 버린다. 3여 년간의 군생활 동안 욕설과 구타 그리고 부조리를 몸에 때처럼 묻히고 나온다. 다시 불을 지핀 작가의 꿈은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서야 조금씩 커진다. 
위 글은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서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이문열 작가의 소감(所感)이다. 그가 나이 서른둘을 맞아 작가로 걸음을 떼면서, 그간의 빈한한 삶을 회고한 면면이 가슴깊이 남는다. 
불타는 불면의 밤들, 쌓여 가던 소주병, 죽음과 삶이 가까이 있던 쪽방. 작가 이문열의 내면을 두터이 옹이지게 한 혹독한 시련들이었을 게다. 참 격조있는 글이며 담담한 소회다. 


다음은 어떤 이의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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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저한테도 이런 좋은 상이 오는군요.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탭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제가 한 거는 이 여자(트로피 상을 가리킴) 보면, 여기 발꼬락 몇 개만 떼어가면 제 꺼 같아요. 스탭들한테 그리고 감독님한테 너무너무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항상 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를 설레게 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할 수 있게 해 준 전도연 씨한테 너무너무 감사드린다고...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텐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가족들과 그 다음에 사랑하는 동생과 조카와 지금 지방에서 열심히 공연하고 있는, 제 운명인 집사람한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몸뚱이만 번듯한 무명배우는 뭐든지 했다. 30대 후반이 되도록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등 ‘연기(演技)’가 통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본 셈이다. 꿈꾸던 영화판에서는 단역과 조연을 주로 맡았다. 특히 그는 선량한 사람들을 패는 악역(?役)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꼬박 18년을 쏟아붓고 나서야 주연배우로서 자리를 잡았다. 다행이었다. 같이 연극판에서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못한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너는 내 운명>에서 분(扮)한 농촌총각은 우리 누군가의 표상이었고 에이즈 감염여성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 ‘촌놈 역(役)’은 그에게 첫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시상식에서 그는 배우의 비중에 대해 겸허하게 토로한다. 스스로를 ‘배우 나부랭이’라고 말이다. 배우 황정민은 준비도 없고 대본도 없이 수상소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진솔하게 전달되었다. TV 속에서는 드문 장면이었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감사한 소감이었다.

누구에게나 기쁜 일은 기다리고 있다. 또 세상일에는 슬픈 일만큼이나 기쁜 일도 똑같이 있다고 믿고 싶다. 특히 삶의 굴곡이 무척 깊었던 사람이었다면 반등(反騰)의 정상에서 체감하는 ‘기쁨의 가치’가 남다를 테다. 그들의 소회는 그동안의 울음 응어리를 삼켜낼 수 있는 뜨거운 무언가다. 

역경을 이겨내고 눈물을 말려 왔던 ‘어떤 이’들의 소감은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라는 어려운 명제에 쉽게 답을 해 준다. 자신의 속내, 그동안의 속앓이를 아름답게 적어낸다는 것은 단지 글의 기교에 있지 않았던 바다. 

요즘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연말이면 고시잡지에 여러 법조 선배들의 ‘합격수기’가 실리곤 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14전 15기’, ‘고시와 삶’ 같은 합격수기를 남기셨던 수많은 법조 선배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계실까.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당대(當代)에 그분들이 남기셨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수기(手記)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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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변호사
사법시험 제45회(연수원 35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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