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검색

1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직업군은 바로 법조인이다. 셰익스피어가 법률가에 대해 했던 언급들 중, 가장 유명하고 도발적인 묘사는 다음과 같다.

 케이드: 그러니 모두들 용감하게 나아가라. 너희들의 용맹스러운 대장은 개혁을 선언한다. 앞으로는 이 나라에서 한 푼에 하나 짜리 빵을 세 개 이상 살 수 있게 되고, 서 말들이 술동이가 열 말들이 술동이가 될 것이다. 약한 맥주 따위나 마시는 자는 중죄로 다스리며, 온 나라의 토지는 공유지로 하고, 치프사이드 장터에서는 내 말이 풀을 뜯어 먹게 하겠다. 내가 왕이 된다면, 물론 왕이 되지마는...

  모두: 국왕 전하 만세!

케이드: 착한 백성들아, 고맙다. 앞으로 돈 같은 건 필요 없으며, 누가 먹든 마시든 계산은 모두 내가 하겠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똑같은 제복을 입힐 테니, 여러분 모두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며, 날 국왕으로 존경하게 될 거다.

 딕: 우리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것입니다.

 케이드: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놈들은 죄 없는 어린 양의 가죽으로 양피지를 만들고, 거기에다가 무엇인가 끼적거리면 사람이 죽거든. 어찌 이게 슬픈 일이 아니겠나. 글쎄 벌에는 독침이 있다고 하는데, 독이 있는 것은 벌이 아니라 벌의 밀랍이라는 거지. 왜냐고? 그 밀랍에 도장만 누르면 나는 다시는 나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야. 뭔가? 저기 오는 건 누군가?

『헨리 6세 2부』, 제4막 제2장

 이 대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희곡의 전반적인 맥락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헨리 6세 2부』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 전쟁에서 영국의 패배, 그리고 패전 이후의 혼란이 왕위 계승권을 두고 벌어진 장미전쟁(War of the Roses)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사극인데, 극중 요크 가문의 리처드공은 무능한 군주인 헨리 6세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잭 케이드(Jack Cade)를 뒤에서 교사하며 반란을 일으킨다(이는 실제로 1450년 학정과 패전에 반발하여 일어난 잭 케이드의 민중봉기를 극화한 것이기도 하다).

 극중 케이드는 대중영합적인 수사를 구사하며 백성들의 반란을 부추기고, 케이드의 수하인 ‘도살자 딕’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제일 먼저 법률가들(lawyers)부터 죽이자고 제안한다(딕은 익살스러운 말투로 계속 케이드를 비아냥거리는데, 이 대사 역시 약간의 익살이 포함되었다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반역자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법률가들 목부터 따겠다고 벼르는 걸 보면, 법률가는 체제를 변혁하려는 반란자들 입장에서는 기존 사회의 질서유지 및 안정에 기여하는 직업군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대사 직후 케이드는 기존 사회의 질서를 대표하는 채텀 마을의 서기를 살해함으로써, ‘법률가들부터 죽이자’는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만 여기서 법률가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진다. 하나는 기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지위, 또 하나는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의 모순과 병폐를 유지하는 지위. 잭 케이드 일당의 모골송연한 공약이 극중 대중들을 현혹시킨 이유는 민중들이 후자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2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번에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법률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 보자.

 햄릿: 또 하나 나왔구나, 저것이 법률가의 해골바가지가 아니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능숙한 궤변과 변설은 지금 어디 갔는가? 그 소송과 소유권은, 또 계략은 다 어디 갔는가? 이 미친 녀석에게 더러운 삽으로 얻어맞고도 왜 가만히 있는가? 왜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해골바가지를 집어 들고) 흠! 이자는 살아 있을 때 많은 토지를 사들인 놈인지도 모르겠군, 담보 증서니 소유권 변경소송이니, 이중 증인이니 토지 양도소송이니, 온갖 수단을 끌어들여서 말이야. 그런데 그 소유권 변경소송과 토지 양도소송의 결과가 이 훌륭한 머릿속에 이 훌륭한 흙을 가득 채우는 일이란 말인가? 그 증인들은, 심지어 그 이중 증인들조차도 무엇을 증언하겠는가? 두 통을 만들어서 나눠가진 매매 계약서의 크기만도 못한 매매밖에 더 증언하겠는가? 그런데 이 통에야 어디 (해골바가지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 토지 양도 증서인들 다 들어가겠나. 더구나 토지 소유자인 본인은 이 골통 하나밖에 가진 것이 없단 말이야. 응?
『햄릿』, 제5막 제1장

 햄릿 왕자가 아버지 햄릿 왕의 때 이른 죽음을 복수하려는 염세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법률가에 대한 햄릿 왕자의 조소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 중 아마도 가장 냉소적인 대사다. 여기서 법률가는 자신의 모든 법적 지식(‘능숙한 궤변과 변설’, ‘계략’)을 활용하여 탐욕스럽게 재산을 불리고 타인을 속여 가며 부를 쌓는 사회적 기생충으로 묘사된다. 햄릿 왕자의 말을 듣다 보면 법률가를 이 정도로 싸잡아서 매도해도 되는지 따지고 싶을 정도로 신랄한 조롱이지만, 법에 대한 지식을 악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고착화시키는 법조인들이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는 법과 정의를 다룬 작품들이 제법 많고, 특히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상인 안토니오와 체결한 ‘살 1파운드’ 계약은 아마 전 세계의 법학도들이 한 번쯤 수업 시간에 접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실정법과 자연법 사이의 긴장, 성문법과 사회의 변화 사이의 긴장, 그리고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법과 현실에서 감정과 도덕을 가진 사람에 의해 집행되는 법 사이의 긴장이 가장 잘 드러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1604년에 초연한 『말은 말로, 되는 되로(Measure for Measure)』(‘자에는 자로’, ‘잣대엔 잣대로’란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비엔나의 통치자 빈센티오 공작은, 폴란드에 외교 사절로 가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비우며 2인자인 안젤로 경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비엔나를 떠난다. 그러나 사실 공작은 폴란드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가톨릭 수사(修士)로 변장하고 안젤로가 비엔나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몰래 관찰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작: 우리에게는 엄격한 법령들과 준엄한 법이 있소. 이것들은 고집 세고 사나운 말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재갈도 되고, 고삐도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법을 19년 동안이나 잠자게 내버려 두어서, 이제는 배불리 먹은 사자가 동굴 안에만 파묻혀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않는 꼴이 되고 말았소.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한다 하여, 자작나무로 묶어 만든 회초리를 쓰지 않고 단지 겁을 주기 위해 한쪽에 세워 두기만 하면, 그때는 그 회초리가 무섭기는커녕 우스워 보이게 되지요. 우리 법령도 집행하지 않고 오래 내버려 두면, 방종한 자들은 마치 이 법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코웃음을 치게 돼요. 그러면 어린아이가 유모를 때리는 일이 일어나고, 예의도 질서도 모두 엉망이 되고 맙니다.
『말은 말로, 되는 되로』, 제1막 제3장

 공작은 그간 비엔나를 다스리면서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대신 관대하게 덕(德)으로 통치하려 했으나, 그 결과 시민들의 준법의식이 약해지고 사회질서가 문란해진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여태껏 시민들을 느슨하게 풀어 줬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시민들에게 폭군이라고 욕을 먹을 것이 뻔하기에, 이미 추상같은 법관으로 널리 알려진 안젤로 경에게 대신 통치를 위임한 것이다.

 안젤로: 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선 안 되오. 곡식을 쪼지 못하게 새들을 겁주려고 세워 둔 허수아비도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으로 내버려 두면, 나중에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새들이 날아와 노는 횃대가 되고 말죠.
『말은 말로, 되는 되로』, 제2막 제1장

 안젤로는 공작의 예상대로 그동안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던 법규들을 실제로 집행하기 시작한다. 불법이지만 오랫동안 눈감아 주었던 매음굴을 폐쇄하고, 사문화된 법령들을 다시 적용한다. 그중에는 간음(원문 forni-cation은 법률혼이 아닌 사람들 간의 성관계를 의미한다)을 사형으로 처벌하는 형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미 약혼했지만 정식으로 혼을 치르기 전에 약혼녀 줄리엣과 동거하면서 그녀를 임신시킨 클라우디오가 간음죄로 잡힌다. 안젤로는 클라우디오를 본보기로 처형하기로 하고, 클라우디오의 여동생 이사벨라 수녀는 안젤로를 직접 찾아가 오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사벨라: 저의 오빠가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각하께 탄원하오니, 그 죄는 처벌하시되 오빠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찰관: (혼잣말로) 하늘이 그대에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주시길!
 안젤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뜻인가? 모든 죄란 저지르기 전에 이미 처벌하게 되어 있지. 그런데도 그 죄를 저지른 자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미 처벌하게 되어 있는 죄만 다시 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이사벨라: 오, 정당하지만 너무나 가혹한 법입니다! 그렇다면 오빠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겠군요. 하늘이여, 각하를 잘 지켜 주소서!
『말은 말로, 되는 되로』, 제2막 제2장

 그러나 여기에서 극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듯했던 안젤로가 이사벨라에게 정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사벨라의 눈부신 미모에 반한 안젤로는, 만약 이사벨라가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다면 클라우디오를 살려 주겠다고 제안한다. 즉, 간통을 처벌하려던 안젤로가 정욕에 눈이 멀어 간통을 저지르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이는 결국 법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권력자 안젤로가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셰익스피어는 법을 적용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서 법을 동원하고자 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사벨라는 자신의 오빠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서약한 순결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뇌에 휩싸이고, 클라우디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다. 이 모든 상황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빈센티오 공작은, 타락한 안젤로를 벌하고 이사벨라/클라우디오 남매를 구하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서 현명하게 극의 전개에 개입한다.

4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가 흔히 알다시피, 셰익스피어가 ‘모든 법률가들을 죽이자’라는 식으로 법률가들의 사회적 효용성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이 대사를 읊조리는 인물 이름이 ‘도살자 딕’인 점을 상기하자). 도리어 셰익스피어는 법률이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고, 법률가는 법률을 현현(顯現)하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법률가들이 과연 그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햄릿 왕자의 대사를 보아도 그는 매우 회의적이었던 듯하다. 그는 법률가가 사회의 질서와 번영에 기여하기보다는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악용하여 자신의 특권을 고착화하는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실정법이 사회의 변화에 뒤처질 수 있고, 이 경우 실정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것은 도리어 더 큰 부정의이며, 광기일 수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있었다.

 법률가와 고루한 실정법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냉소적 시각은 당대 법률가 집단에 대한 영국 민중의 시각, 혹은 선입견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셰익스피어 희곡의 예술성과 호소력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널리 인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법률가 집단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셰익스피어 생전의 영국에만 특유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태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