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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대국의 면모, 꺽이지 않는 자존심의 이란 (1)
테헤란 입국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줄을 서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제는 아예 줄을 서지도 않고 주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모든 사람들이 비자 수속을 마치고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 족히 2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비자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한두 명뿐인 공무원들은 매우 성실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고 나니, 마음의 여유만 가지면 참을 만하다. 

이란 제재 덕분에 한국의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계 기업은 이란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유럽 기업은 대부분 철수했기 때문에 시장에 남아서 물건을 팔고 있는 한국 기업은 어찌 보면 감사한 존재일 수도 있다. 물론, 중국, 인도, 러시아 등과 교류를 하고 있지만, 최소한 전자제품 분야에서는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이란의 사업 규모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란 제재와 이란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법률적인 이슈가 많다. 그래서 소송이나 분쟁이 없는 시장임에도 방문 횟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물품대금 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방법으로 이슬람법리상 근저당을 허용할 것인가, 소유권 유보부 매매구조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금의 해외 반출을 막으려는 정부의 절박한 의지를 존중하면서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채권의 투자금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생산지 전략을 구사한다면 수익의 역외 송금은 허용될 것인가, 출구전략은 존재하는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이제 사업 내용을 이해하고 현지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나니, 어떻게 하면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겠다. 
이란 내부에서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우리로서는 이슬람 신정국가 체제의 정부정책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달리 정부기관의 힘이 막강하므로 결정된 사안에 대한 설득이나 협상이 쉽지도 않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므로 장사꾼과 거간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사이에 법리공방을 하는 율사도 존재하는 것이리라. 

내가 바라본 테헤란은,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도시이지만, 노후한 정유시설로 인해 대기오염으로 매년 수십~수백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곳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의 경직된 관계 및 핵개발을 이유로 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이란 사람들은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란 제재라는 올무가 목을 죄어오고 있으며 이제는 서민들이 인내하기 어려운 정도에까지 온 것 같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으로 인한 연 20%가 넘는 인플레이션에 서민 경제도 매우 피폐해져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시내 중앙시장(그랜드 바자르)의 상인들은 역동적으로 자신의 생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테헤란 사람들의 끈기와 처절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1979년 미대사관 인질 사건 이전 이란과 한국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물론, 지금도 이란의 최대교역국 중의 하나가 한국이고 <주몽>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의 선전으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지만,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야만 하는 한국의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국 정부도 이란 제재에 동참해야 했을 것이고, 서먹한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 테헤란로가 있는 것과 같이 테헤란에도 서울로라는 길이 있다. 하지만 테헤란의 서울로는 한국의 테헤란로와는 너무 많이 다르다.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같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을 하고 다른 국가 방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겠지만, 각 국가의 영토, 인구, 자원,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지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란은 모든 측면에서 강한 나라이고 주변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국과 중동지역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 8,000만 명의 인구와 막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대국이고 중동의 제조업, 농업 강국으로 모든 자원 및 식량 등을 자체 조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한 국가 내에 모든 기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풍부한 자연자원과 아름다운 환경도 가지고 있다. 
서방 언론은 이란을 적성국가 중의 하나로 떠들고 있지만, 내가 보는 이란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힘있는 나라이다. 그럴 만하다. 그들은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아리아인의 후예라는 의미로 이란이라는 국호를 정했을 것이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고대시대부터 제국을 건설해 온 민족이다. 아리아인은 BC 2500년에 이란 고원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BC 6세기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하여 위세를 떨쳤다. 7세기 무렵에 이슬람화되면서, 사파비 왕조에서 시아파를 국교로 지정한 이후 자타가 인정하는 시아파의 맹주 역할을 해 왔고, 지금도 이슬람 시아파 세력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최고 종교지도자에게 모든 힘을 집중시켜 정교일치의 사회를 실현시키는 전형적인 그리고 강한 이슬람 신정국가이다. 최고 종교지도자를 비롯해서 입법, 행정, 사법의 주요 인사들의 많은 수가 이슬람 법학자 출신으로 임명된다는 것은 이슬람 신정국가의 특징을 가장 강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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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의 이란은 온건 개혁 노선의 왕정 국가였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20세기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것은 이란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영국의 분할 통치 및 영국 보호령 기간 동안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이란 원유 독점체제를 구축했고, 1963년 국왕이 백색혁명을 통해 사회 개혁을 시도했으나 지나친 친미 성향 및 부패로 팔레비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미국의 보호에서 부패한 정권에 대한 시위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어져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을 신봉하는 신정통치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시 미국의 이라크 지원, 핵/인권/테러 지원 문제로 인한 서방과의 극심한 대립은 신정통치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 국민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져 가고 서방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가지만 정교일치 사회의 최고 지도자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은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삶은 정부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검열하는 이란이지만, 이 큰 나라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란 사람들도 집에서는 매우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성인 대부분이 술을 마신다고 한다. 법적으로 술이 금지된 국가이다 보니 주류 암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암시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란 여성들은 파티나 오락을 위한 비싼 제품에 돈을 쓰고, 특히 고가의 속옷이 매우 잘 팔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여성인권 운동에 대한 탄압에 대해 언론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고, 사회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법안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배구경기에 여성 관객이 입장할 수 없는데 입장을 강행했다가 경찰에 연행된다거나,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고 다니는 여성에게 저질러진 염산 테러에 대한 사회적 반향, 여성인권 운동가에 대한 정부와 운동가들 사이의 신경전 등이 사회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국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조금씩 더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전체 실업률은 12.2%이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27%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여기에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기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 나갔고, 다른 국적을 취득해서 살고 있다. ‘이란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정부에서는 ‘저항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관련 정책을 쏟아 내지만, 서방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저항력 있는 경제’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반 국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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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2. 
김현종 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연수원 3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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