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기 교수님이 2022년 2월 나찌 집권기의 법률을 모아 『나찌의 법률(부제: 악마는 가만히 온다1)』이라는 편역서를 내셨습니다. 저자의 이전 번역서 『가난한 사람의 민법(안톤 멩어)』을 인상 깊게 보았기에 서점에서 바로 구매하였습니다.

 충격이 큽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입니다. 이 책은 78개에 이르는 히틀러 시대의 법률 원문을 번역하여 각주를 붙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전 질환을 가진 신생아 출생의 방지를 위한 법률’이라는 법률의 제명을 보게 되니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 법률은 18개의 조문이고, 제1조에서 조현증, 맹아, 농아, 심한 알코올중독자의 질환이 있는 사람은 외과수술로 불임 시술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제2조(본인, 법정대리인), 제3조(의사나 요양기관의 장)에서 신청권자를 정하고 제5조에서 유전보건법원의 관할임을 정하고, 제9조, 제10조에서 이의절차를 정하고, 제11조에서 시술 방법, 제15조에서 비밀 준수 의무 등을 정하고 있습니다. 조문을 영혼 없이 읽으니 무언가 그럴듯하게 법률이 구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법률에 의해 35만 명에서 40만 명이 강제 불임 시술을 당했다고 합니다.

 제목은 그럴싸하나 내용을 살펴보면 섬뜩한 법률도 보입니다. ‘법평화를 위한 법률’은 법관, 정치경찰(게슈타포), 친위대 소속원에 대한 살인 예비음모를 가중처벌하고, 국내로 인쇄물을 반입하면 처벌 하는 게 그 내용입니다.

 헌법 강의나 세계사 강의에서 간접적으로 그 내용을 전해 들었던 법률도 직접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히틀러에게 전권을 합법적으로 부여한 ‘인민과 제국의 위난 제거를 위한 법률(이른바 수권법)’, 그리고 유대인과 독일혈통 사람 간의 사랑을 가로막는 ‘독일혈통과 독일명예의 수호에 관한 법률(이른바 혈통수호법률)’, 특정인을 사형에 하기 위한 목적의 ‘교수형과 사형의 집행에 관한 법률(이른바 van der Lubbe 법률)’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혈통수호법률 제1조는 유대인과 독일혈통의 혼인을 금지하고, 제2조는 유대인과 독일혈통의 혼인 외 성관계를 금지하며, 제5조는 위반 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의사당에 불을 지른 공산주의자 청년 van der Lubbe에게 적용할 법률에 사형 규정이 없자, 나찌는 뒤늦게 van der Lubbe 법률을 제정하여 방화죄를 사형으로 처하는 대통령 ‘명령’이 1933년 1월 31일부터 2월 28일까지의 기간에 행하여진 행위에도 소급 적용되게 조치하였습니다.

 이 책은 법률의 번역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1895년 뤼거 박사(변호사)의 빈시장 취임 연설, 나찌 시대 정치범에게 2,600건 이상의 사형을 선고한 ‘피의 법관’ 롤란트 프라이슬러에 관한 약전(略傳) 또한 수록하고 있어서 나찌 시대의 광기에 영향을 주거나 그 시대에 직접 활약한 ‘일부’ 법률가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법률실무를 하는 제게 이 책은, 독일에서 유래했다는 과잉금지 원칙이 왜 까다롭게 4단계 심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헌법재판 실무에서 목적의 정당성 심사나, 수단의 적절성 심사는 간략하게 넘어가고, 실제로 중요하게 판단되는 부분은 최소침해성 부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목적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법률이 유럽 선진국에서 존재하였구나...나찌의 법률들 원문을 읽다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목적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법은 더 살필 필요 없이 위헌이 되어야 합니다.

 저자는 법률 원문을 번역한 이 책에 이어서, 후속 작업으로 ‘나찌의 명령과 나찌 법령 해설’을 저술한다고 합니다. 법률보다 실무적인 명령 단계로 가면 더 노골적이고 두려운 내용의 당시 상황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우리나라는 그와 같은 위헌적인 법령이 제정되는 일이 없기를, 법률가들이 그러한 일에 협력하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아, 빠뜨릴 뻔했군요. 이 책에는 ‘변호사허가에 관한 법률’도 있습니다. 제1조 제1항에서 ‘아리아 혈통이 아닌 변호사’는 1933년 9월 30일까지 변호사등록이 취소될 수 있고, 제5조에서는 변호사허가의 취소는 변호사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유로 본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박병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