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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이 음원에 승리하는 세상을 꿈꾸며

음원 시장에 밀려 음반 구입이 힘들어진 서글픈 현실

 원래 소리나 음악을 녹음한 매체를 뜻하는 ‘음원’은, 요즘 다운로드 받거나 실시간 스트리밍하여 재생할 수 있는 디지털 음악 데이터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에 와서 대증음악 시장의 주류 매체가 된 디지털 음원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음반’은 한 마디로 실체가 있는 물체로, LP와 CD 등을 지칭하며 넓게는 카세트테이프도 포함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기 이전까지 음악시장을 독점한 매체였던 음반이 음원 때문에 점점 밀려나기 시작한 나머지, 요즘에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하면 음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형태를 상정하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디지털 음원 시장이 음악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필자와 같은 클래식 마니아들은 좋은 클래식 음반을 사기가 너무 힘들어진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명반을 구입해 처음 들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자

 인류가 만들어낸 오페라 중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카르멘의 작곡가 비제는 카르멘 조곡과 함께 또 하나의 걸작을 만들었는데, 이 아를르의 여인 조곡은 대개 카르멘 조곡과 함께 커플링되어 연주 또는 발매되곤 했다. 위 두 곡의 연주에 있어서는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도 많이 듣지만, 역사상 최고의 명연은 클뤼탕스가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EMI 음반이다. 당연히 이 음반은 베스트셀러였으나 더 이상 출반이 되지 않으니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중고 시장에서 우연히 이 음반을 구입하여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은 형언할 수 없었고, 나중에 클뤼탕스 전집도 구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너무나 알려진 명연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 예를 들어, 작고한 피아니스트 리히터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커플링한 그라모폰 음반도 있기는 하다. 위 연주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카라얀과 함께 녹음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음반만큼이나 사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 명연이지만, 위 음반들을 구입하기 쉽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음반 시장이 열악해진 것은 사실이다.

 명반 하나를 어렵게 구입하여 처음 들을 때의 그 흥분을 겪어 보지 않은 분들은 지금과 같이 음반 구입이 어려운 현실의 비참함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정말 좋은 마니아들은 인터넷에서 명곡 음원을 다운받아 듣는 것에 만족하기 어렵다. 한 장의 음반에는 그 음반이 나오기까지 작곡가와 연주자의 인생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듣는 사람은 디지털 음원이 줄 수 없는 교감과 감흥을 맛보게 된다. 감미롭게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크지만, 아끼는 명반들이 서재에 빼곡히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을 보는 뿌듯함도 적지 않다. 최소한 클래식을 듣는다면 이 정도의 명반은 소장하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리스트를 주변에 추천하게 되기도 한다.

 한 여배우를 사랑했다가 실의에 빠진 베를리오즈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곡했다는 환상교향곡은 음악사적으로는 표제음악 형식을 취한 첫 교향곡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지휘자가 이 명곡을 연주했지만 의외로 귀에 시원하게 들어오지는 않는 난곡이기도 한데, 이 난곡을 누구보다 멋지게 해석하여 20세기 최고의 명반을 만들어 낸 지휘자가 샤를르 뮌시이다. 필자는 이 환상교향곡은 물론이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의 경우도 뮌시의 연주를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편인데, 평론가들이 함께 추천하는 칼 뵘의 연주와 또 다른 느낌의 시원한 연주라 할 수 있다.

 위 음반들이 유명해진 이유는 연주 자체도 워낙 좋았기 때문이지만, 음반을 소개하고 알린 평론가들의 공도 적지 않다. 특히 오이스트라흐나 셰링처럼 이제는 개별 음반을 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올드한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위 음반들을 소개하고 알린 평론가들과 가이드북을 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 샤를르 뮌시의 두 음반도 안동림 교수가 이 한 장의 명반 시리즈로 소개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측면이 크다. 그리고 가이드북이나 고수 마니아의 추천 없이 알라딘이나 예스24 사이트 등에 접속한 초심자도 명반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팁이 있다.

명반에 관하여 잘 모를 때에도 명반임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들
 인터넷 온라인으로 검색되는 음반 가이드북으로 유명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클래식 음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이 책들을 다 읽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 가이드북들에 언급되는 음반들은 음악사적 가치가 높고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온 연주라 보아도 무방하다. 국내 문헌으로 『이 한 장의 명반(현암사)』이 대표적이고, 국외 문헌으로는 『죽기 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번역본 존재)』, 『러프가이드』, 『펭귄가이드』, 『 NPR가이드』 등을 들 수 있다.

1) 『이 한 장의 명반』
 본인 스스로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애호가에 불과하다며 겸손하셨던 안동림 교수가 1988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한 장의 명반』 시리즈는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 책에 언급된 명반들만 따로 발매되거나 수집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시리즈에 언급된 연주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올드한 1980년대 이전에 녹음된 것들이지만,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나 파이야르가 연주한 파헬벨의 캐논처럼 음악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가치도 높은 중요한 명반들이라 할 수 있다.

2) 『죽기 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가 음악평론가와 함께 저술한 이 책에 관해서는 첫 번째 기고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전술한 『이 한 장의 명반』 시리즈와 비교하자면, 1990년대 이후의 보다 최근의 연주들이 명반으로 많이 선정된 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비운의 천재 데니스 브레인이 연주한 모짜르트 호른협주곡처럼 예전의 녹음도 이 책이 선정한 유명한 명반이지만, 슈베르트의 불멸의 명곡인 즉흥곡에 관한 예전의 많은 녹음에 비추어 새로운 해석이라할 수 있는 피레스의 연주를 즉흥곡의 최고 명반으로 선정하는 것이 이 가이드북의 경향이라 보면 된다.

3) 『러프가이드』와 『펭귄가이드』, 『NPR가이드』
 원래 영국의 여행가이드북에서 시작된 러프가이드가 전 세계 국가 및 지역의 음악에 대한 350개 이상의 녹음된 선집을 발행하였는데, 여기서 거명된 클래식 음반들이 명반으로 추천되기도 한다. 또한 2년마다 발행되는 펭귄가이드는 2년 사이에 출반된 음반 위주로 가이드북을 구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래된 명반은 잘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고 또 하나의 유명한 가이드북인 그라모폰가이드에 비해 가격 대 성능비를 중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음악학자 테드 리비가 저술한 NPR가이드는 클래식 필수 레퍼토리 350곡을 해설하면서 해당 곡의 말미에 추천 음반을 소개한 책으로, 상업적인 위 가이드북들에 비해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교육용 가이드북이다.

 그리고 유명한 연주의 경우 위 가이드북 어느 하나에서만 명반으로 선정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여러 개의 가이드북에서 공통적으로 명반이라 선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 브레인의 모짜르트 호른협주곡 음반은 그라모폰가이드, 펭귄가이드, NPR가이드에 모두 선정된 명반이며, 피레스의 슈베르트 즉흥곡 음반도 죽기 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은 물론 그라모폰가이드에도 선정된 명반이다. 따라서 알라딘이나 예스24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개되는 음반에 위 가이드북 선정의 안내가 많이 기재되어 있을수록, 그 음반은 널리 추천되는 명반이라 보면 된다.
 

역사적 명연을 음원으로 들을 수는 없지 않을까

 디지털 음원 시장이 발달하다 보니, 대중음악 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경우에도 온라인을 통해 역사적 명연을 다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오래전의 모든 명연까지 음원으로 나오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명반을 어렵게 구입하기보다는 편하게 음원을 다운받아 듣는 경우가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만한 역사적 명연을 다운받은 오디오 파일로만 감상하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예를 들어, 리히터가 연주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 2번 음반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초심자가 다운받은 파일만 듣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슈베르트가 생의 마지막에서 온 힘을 바쳐 작곡한 죽음과 소녀 현악 4중주곡을 오디오 파일로 들어서야 부쉬 4중주단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클래식 연주자들은 그 수도 많고 수준 또한 세계 정상급이지만, 일반인들은 클래식 연주회에 돈을 주고 가는 경우가 드물다. 연주가가 공연을 알리며 초대권을 주어야 공연장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최고 수준의 음악가들이 연주를 통해 돈과 명성을 쌓기도 힘든 현실이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중학교 시절 몇천 원씩 모아 산 LP나 카세트테이프로 느꼈던 그때의 설렘과 감동을 아직도 가슴에 안고 있는 필자로서는, 디지털 음원 시장이 번성할 것을 알면서도 ‘순진하게시리’ 명연을 담은 음반이 음원에 승리하는 미래를 꿈꾼다.

허중혁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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