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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통일기구(UNIDROIT) 연차총회 참석 출장기이탈리아 로마 UNIDROIT(유니드로와) 출장, 2019년 12월

 2019년은 여러 의미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4년여에 걸쳐 참여했던 전자증권법규 제정 작업이 그해 6월에 완료되었고, 9월에는 전자증권제도가 시행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12월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사법통일기구(UNIDROIT)의 국제회의에도 참석한 해였다.

 당시 필자의 소속기관(한국예탁결제원)은 전자증권의 발행, 유통 및 권리행사에 관한 제반 사무를 수행하는 전자등록기관으로서 정부의 전자증권법규 제정 작업 참여 및 자체적인 전자증권시스템 구축 업무 수행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6년 3월 전자증권법(정식 명칭은 ‘주식 · 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동법을 근거로 한 관련 법규 마련 및 전자증권시스템 구축이 완료되어 2019년 9월 16일에 전자증권제도가 전면 시행되게 되었다.

 2019년은 우리나라의 전자증권제도가 시행된 해였지만 UNIDROIT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수행해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해이기도 했다. 즉, 전자증권을 포함한 금융법제 프로젝트로서 자본시장에 관하여 UNIDROIT가 마련한 ‘간접보유증권에 관한 실체법 협약(UNIDROIT Convention on Substantive Rules regarding Intermediated Securities)’을 회원국 각국의 금융법제에 반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방안을 수립하고 관련 지원활동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UNIDROIT는 프랑스어인데 Institut International Pour L’Unification du Droit Prive의 약칭으로서, ‘사법 통일을 위한 국제기구(International Institute for the Unification of Private Law)’로 번역되고는 한다. 1926년 국제연맹의 부속기구로 처음 설립되었다가 이후 국제연맹의 해체에 따라 1940년 기존 참가국으로 구성된 다자간 협약에 의해 재설립되었는데 사법 분야, 특히 증권법, 상사법 분야에 국제 정합성이 있는 통일 기준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수행해왔다. UNIDROIT의 본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고 회원국은 63개국이며, 우리나라는 1981년에 가입한 바 있다.

 한편, 간접보유증권(Intermediated Securities)이란 용어는 언뜻 생소해 보이지만 사실 지금의 증권금융 업무와 법제는 간접보유증권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증권소유자가 직접 보유하는 증권을 직접보유증권이라 한다면, 간접보유증권은 금융회사, 전자등록기관, 중앙예탁결제기구(CSD)와 같은 중개기관(Intermediary)을 통해 보유하는 증권으로서 세계 각국의 증권 발행, 유통, 권리행사는 바로 이 간접보유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간접보유증권 법제 프로젝트를 결산하는 2019년 UNIDROIT 연차총회(General Assembly)에 전자증권제도 시행국으로서 외교통상부, 대법원, 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및 한국예탁결제원(전자등록기관)으로 한국대표단을 구성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어느덧 출발일이 다가와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지 12시간 반이 걸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피우미치노(Fiumicino) 공항에 도착하였고, 다시 서둘러 로마 시내를 향해 길을 떠났다. 숙소는 우리나라의 서울역에 해당하는 테르미니(Termini)역 근처로 잡았다. 도보로 UNIDROIT 본부 건물에도 닿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길을 헤매거나 택시를 탔을 때 현지 사람들에게 긴 설명 없이 테르미니역 이름만 이야기해도 간단하게 좌표를 찾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서울역과 같이 공항철도와 전국 각지로 연결된 급행열차가 집결하는 곳이니만큼 규모도 상당히 크고 구조도 복잡해서 처음에는 테르미니역 내부에서 길을 찾는데 꽤 시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숙소 주변의 지리도 익히고 UNIDROIT 본부로 가는 길도 파악할 겸 길을 나섰다. 길을 헤매지 않고 다음에도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대로변의 직선거리로 이동하려고 노력하던 중 이탈리아 중앙은행(Banca D'Italia) 건물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돌렸다. 출국 전에 지도를 확인해 보기로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건물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UNIDROIT 본부가 나오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고대 로마의 정원(Villa Aldobrandini)이 나와서 당황했고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가운데 발걸음을 떼다가 골목길의 끝자락에 겨우 UNIDROIT 본부를 발견했다.

 UNIDROIT 본부 바로 옆에는 트라야누스 시장(Mercati di Traiano Museo dei Fori Imperiali), 아우구스투스 포럼(Foro Di Augusto) 그리고 공화정 시대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위치하고 있었다. 2,500여 년을 두고 현재와 고대가 공존하는 그 모습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그때 문득 시야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한국에서 보던 통상적인 비둘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듯했다.

 UNIDROIT 연차총회가 열리던 당일은 아침부터 막 비가 올 것 같은 흐릿한 날씨였다. 어제 지리를 익혀 놓았음에도 숙소에서 UNIDROIT 본부로 가는 길은 날씨 탓인지 다시 생경한 느낌이었다. 본 회의장에 도착하니 한국대표단을 비롯한 각국의 대표단이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회의 자료를 숙독하거나 간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2개의 통역 부스가 회의장이 내려다 보이는 2층에 마련되어 한국어가 혹시 지원되는가 하였으나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의 3개 언어 간에만 통역을 지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기대감을 접었다.

 이날 연차총회에는 63개국 대부분의 회원국이 참석하였는데 특징적인 것은 미국,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발언도 활발하고 특정 주요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의 고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2019년에 마무리하는 3개년 프로젝트인 ‘간접보유증권에 관한 실체법 협약’ 관련 프로젝트에 관하여는 일본 전자증권제도 마련의 주축이었던 간다 히데키 교수(당시 도쿄대)의 기여와 공로가 컸는데, 이에 대해 의장단이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는 코너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연차총회에서는 UNIDROIT가 2020 ~ 2022년의 3개년 동안 수행할 차기 프로젝트에 대한 주제 안내가 있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Blockchain), 분산장부기술(DLT)과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관련 국제 법제 기준을 마련하고 해당 기술과 전자증권을 포함한 ‘간접보유증권에 관한 실체법 협약’과의 조화방안도 도출한다는 것이었다. 2015년에 헝가리가 이 주제를 처음제안하였고, 2016년에 체코가 다시 제안해옴에 따라 3년여의 검토 끝에 UNIDROIT가 차기 3개년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나아가 해당 프로젝트를 일본의 간다 히데키 교수가 다시 수장을 맡아 이끌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차기 의장 선출, 3개년 프로젝트 결산 및 차기 3개년 프로젝트의 안내, 그리고 UNIDROIT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연차총회가 끝난 후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두워진 날씨를 배경으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의 흐릿한 날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허겁지겁 길을 재촉하여 숙소로 복귀하였고 젖은 옷을 말리며 한숨을 돌리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비가 멈췄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가 문득 숙소 반대편에 위치한 테르미니역 옆의 산타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 위로 만들어진 무지개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출발하여 도착할 때까지 이동시간만 거의 하루를 보냈고 생소한 초행길에 묵직한 주제들로 인해 많은 고민을 안고 떠났던 UNIDROIT 출장이었지만, 각국의 석학과 대표단들을 만나 식견을 넓히고 국제적인 금융법제와 기술 발전 동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던 귀한 경험으로 아직도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지만 급작스런 비가 그치고 볼 수 있었던 산타 마리아 성당 위의 무지개처럼 다시 희망을 갖고 로마를 방문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최지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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