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큰 아픔을 안겨준 사건이다. 현재까지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 제1차 세계대전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및 그 후 종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다시 발생한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 및 전후 20세기 유럽 사회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일이다.

 로버트 거워스의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국이었던 중부 유럽 국가들의 상황에 주목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파시즘의 등장, 독일에서의 나치즘 득세,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안정과 평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오히려 새로운 폭력의 논리가 유럽을 지배했다고 서술한다.

 패전국 중 독일의 경우 막대한 전쟁 배상금, 영토의 상실 등이 야기한 독일 국민들의 절망감과 상실감을 배경으로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하게 된다. 히틀러의 체코 수데텐란트 지역 병합,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린 단치히 침략은 독일인 거주 지역이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된 제1차 세계대전의 산물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로마노프 왕정이 무너지게 되고 볼셰비키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백군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볼셰비키 정권은 백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되지만 이러한 승리는 유럽에 또다른 비극을 불러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유대인 포그롬(유대인에 대한 조직적 약탈과 학살을 의미하는 러시아어)이다.

 볼셰비즘의 주요 추진자이자 수혜자가 유대인이라는 관념은 공산주의 확산에 불안감에 떨고 있던 유럽 각국에서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가 다시금 작동하게 하였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 1인의 광기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이탈리아와 일본이 어째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과 전쟁을 벌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저자는 그 원인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과정에서 찾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음에도 승전국으로서 얻은 과실에 대하여 불만을 가졌고, 이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발생의 씨앗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유고슬라비아 및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금까지 계속하여 분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20세기 유럽을 승전국의 역사가 아니라, 패전국 또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중부 유럽 국가들(헝가리,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의 역사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그 이해의 폭을 더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중동 분쟁, 유고 분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20세기 유럽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규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