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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서울 자가에 사는,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진급 누락 없이 오른 대기업 부장 직위, 자가로 마련한 서울의 아파트, 헌신적인 아내, 똑똑한 자식을 둔 김 부장의 일상을 담은 웹 소설이다. 김부장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채 꼰대가 되어버렸고, 늘 남과 비교하며 불행을 찾는 일상을 반복한다. 현대인의 우습고 슬픈 자화상을 그려낸 위 소설은 블로그에 처음 게재된 후 여러 단톡방에서 공유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장류진의 소설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도 현대인에 대한 셀프 카메라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책 제목이자 책에 실린 단편인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 안나는 ‘우동마켓’이라는 중고판매 어플을 개발한 스타트업의 막내이다. 안나가 근무하는 회사는 스타트업의 외양을 어설프게 갖추려고 하는 회사다. 임직원 모두 직위를 빼고 영어 이름만을 쓰도록 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일방향으로(대표나 이사에게) 존댓말을 구사하고, 대표는 개발 프로세스에서 스크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만을 따와 프로젝트 관리라는 명목하에 아침마다 30분 이상씩 조회를 한다. 포털사에서 거금을 주고 데려왔다는 개발자 케빈은 안나의 뒷자리에 앉아 코드와 씨름하느라 늘 날이 곤두서있고 이따금 안나와 사소한 언쟁을 벌인다.

 사건은 우동마켓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유저로부터 시작된다. 우동마켓에는 매일 중고 게시글을 100개 이상 올리는 ‘거북이알’이라는 유저가 있다. 거북이알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을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씩 낮은 가격에 판다. 거북이알 등장 이후 페이지 수, 사용자 수 등의 지표가 상승했음에도, 대표는 거북이알을 어플을 도배하는 어뷰저로 간주하고 안나에게 그를 만나 경고 조치를 할 것을 지시한다. 대표가 준 5만 원짜리를 들고서 안나는 거북이알과 직거래를 시도한다. 안나는 현금을 받고 쿨하게 떠나려는 거북이알을 붙잡고 ‘그 물건들은 다 어디서 나시는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거북이알은 원래 카드사 공연기획팀 소속으로 회장님이 특진을 내건 유명 피아니스트의 섭외 미션에 성공한다. 그러나 거북이알은 공연을 개최한다는 공지를 회장님의 인스타그램보다 카드사의 공식 홈페이지에 먼저 띄운 탓에, 즉 회장님의 SNS 감성을 헤아리지 못한 탓에, 특진이 취소되고 혜택기획팀으로 발령된다. 혜택기획팀에서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두 배로 적립해주는 카드 상품을 기획한다. 거북이알의 발표를 들은 회장이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묻자 거북이알은 “네 좋아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렇게 월급 대신 들어온 7자리의 숫자 포인트 앞에서 거북이알은 15년의 직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거북이알은 이내 포인트로 점심도 사 먹고, 장도 보고, 물품을 구매하고 이를 다시 우동마켓에 판매함으로써 다시 생활인으로 돌아온다.

 안나는 사비를 들여 거북이알에게서 레고도 추가로 구입하고 레고동호회 총무를 했다는 개발자 케빈에게 레고를 선물한다. 안나는 레고를 받고 벙쪄있는 케빈에게 코드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어떻겠냐고, 코드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건넨다. 이후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을 정시에 예매하기 위하여 자리에 남아있던 안나를 본 대표는 안나가 야근하는 줄 알고 감명한다. 클래식 공연을 예매하기 전 안나는 미리 예매해둔 다른 외국 공연을 위하여 홍콩행 왕복 비행기표를 산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다(p. 63).

 작가는 다른 단편에서도 현대인의 자아를 켜켜이 쌓아놓거나 너르게 펼쳐놓는다. 이 책에서 케빈, 안나, 지훈 등으로 묘사된 캐릭터들은 어쩐지 나를 닮아 있다. 청첩장을 주면서 얻어먹은 밥값만큼만 돌려주는 인간관계, 일찍 다니는 직원이라는 인상을 얻기 위해 버스 대신 흔쾌히 택시를 타는 정규직 직원의 첫 출근길 등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의 일상은 우리네 일상과 멀지 않다. 때로는 일상 속에서 거리를 두려 했던 우리의 모습은 소심함, 쪼잔함, 허세가 곁들어진 소설 속 주변인들에게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저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현대인의 자아들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의 안나처럼 케빈과 화해하기도 하고,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의 지훈처럼 생각지도 못한 거절을 당하기도 하며, 「템페레 공항」의 주인공처럼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와 다시 닿기도 한다.

 작가가 이야기 속 쌓아두거나 펼쳐 놓은 현대인의 자화상은 더도 덜도 없이 아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려졌기에,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이야기 속에 침잠(沈潛)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소설 속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파고들거나, 또는 작가가 숨겨놓은 미지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책 속의 일상과 우리네 일상은 정확히 구분되지 않아서,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현대인의 삶 속으로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현대인들의 수많은 자화상과 함께, 이 책에서 케빈, 안나, 지훈 등으로 묘사된 자아의 다른 모습들과 함께 부유하며 살아가게 될 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던 것처럼, 함께 부유하는 다른 이들에게서 현대인의 기쁨, 슬픔, 또는 그 모두를 때때로 발견하면서 말이다.

유승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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