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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흥국 인터뷰

Q.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솔직히 지난 5년의 세월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연예인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낍니다.
 호랑나비 한 곡으로 30여 년간 사랑을 받았습니다. 연예계에 많은 선배님들 후배님들도 계신데,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줄 몰랐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최초로 예능인으로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팬들한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 사랑받다가 5대 대한가수협회장도 했었죠. 일생 처음으로 단체 회장직을 맡아 적극적으로 협회 홍보도 했고 정말 의욕적으로 열심히 하였는데, 여러모로 미흡한 부분도 많았고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민원도 많이 받았고,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생기는 착오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조사도 받고, 의도치 않게 법적으로 대응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Q. 그동안 가수, DJ, 예능인으로 종횡무진 활동을 해주셨습니다. 국민 중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연예계 데뷔 후 걸어온 길을 짧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종로 낙원상가에서 무일푼 밴드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룹사운드 출신으로 80년대 솔로로 가수 데뷔했고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명 가수 때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시대’에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에피소드 ‘정아의 겨울일기’ 가 있었는데, 그 소녀의 아버지와 제가 친분이 있어서, 처음 TV 출연을 했습니다. 선배님의 따님을 격려하고 돕기 위해서 출연했던 그 방송을 보신 분들이 지금도 잊지 못하고 저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 뒤 호랑나비라는 곡이 나와서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호랑나비의 등장은 무명의 설움을 단번에 해결할 결정타였습니다. 1989년도를 휩쓴 호랑나비의 인기는 저에게 10대 가수라는 타이틀을 안겨주기도 했으니까요. 너무나 고마운 노래죠. 노래 하나로 가요 톱 10에서 골든컵도 수상해보고, 지금까지도 예능이나 여러 방송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수지만 라디오를 너무 사랑했고, 좋아했고,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예능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라디오뿐만 아니라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드는데요. 노래, 드라마, 영화, 코미디, 예능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Q. 예능방송도 정말 많이 하셨는데 예능은 어떠셨나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서부터 시작되었죠. 여자가수로는 노사연 씨랑 호흡을 많이 맞췄어요. 옛날에는 가수나 연예인들이 보통 한 우물만 팠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노래만 해서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연예인 예능 1호일 것 같아요. 유행어도 많이 남겼고요. 시청자분들께서 ‘흥궈신’, ‘예능치트키’, ‘히트제조기’, ‘시청률제조기’라는 다양한 별명도 붙여주셨죠. 예능감각이 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예능프로에서 국민MC 유재석 씨, 신동엽 씨, 김구라 씨 등 후배분들이 저를 보면 놀랄 정도였습니다. 친화력, 재치, 순발력이 뛰어나고 누구와도 호흡이 잘 맞고, 어느 프로그램에서든지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니까요. 어떤 게스트와 방송을 해도 게스트를 살려줄 자신이 있었거든요. 예능 경험이 없는 게스트나 대선배님들과의 방송을 어려워하는 후배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걸고 리액션을 충분히 해주어 분량을 뽑았습니다. 쉽게 말해 분위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띄워줄 자신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아마 다른 가수나 연예인들이 많이 부러워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이 방송에서 너만 쓰냐고 할 정도로 그 당시 섭외율 0순위였어요. 라디오나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이 생기면 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였으니까요. 엄청난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Q. 여러 의혹으로 활동도 중단하시고 한동안 방송에서 뵙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법적 절차에서 힘든 부분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심정이 어떠신가요?

 시간이 지나 재판으로 혐의가 없다고 인정되면 몹시 홀가분합니다. 그런데 무혐의로 되더라도 이미 망가진 평판과 손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으니까, 때로는 착잡한 마음도 듭니다. 저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과거의 시간이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설령 법적 절차에서 무혐의로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훼손된 명예는 회복이 불가능하고,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줄 언론도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할 방법이 마땅히 없으니, 참 힘들었죠.


Q. 그동안 방송이랑 뉴스기사를 보고 악플에 많이 시달리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힘든 생각과 감정들이 들 때, 어떻게 털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악플보다 선플을 좋아하는데요(웃음). 악플은 일절 보지도 않고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합니다. 인기가 많고 관심대상이 되니까 악플도 생기고 욕도 먹을 수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굳이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Q. 평소 취미활동이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해병대 정신으로 이겨내죠. 특히 축구가 없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아침에 조기축구를 하고 점심에 절에 가서 참선을 하는 게 제 일과입니다. 눈감고 명상을 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더 크게 되려고 이런 시련도 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변호사도 사건이 없으면 못 먹고 살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텨왔습니다.


Q. 탁월한 예능감으로 각종 TV프로그램에서 흥을 돋우시는데, 그 원천이 어디서 나온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나요?

 이름도 흥할 흥에 나라 국자입니다. ‘나라를 흥하게 만들어라’인데요.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제가 어릴 적에 밥상을 차려주면 밥도 안 먹고 젓가락, 숟가락으로 식탁을 리듬감있게 내리쳤다고 해요. 그래서 저놈이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나 하고 걱정도 많으셨다고(웃음).

 저는 진짜 흥이 많습니다. 어디 내어 놓아도 분위기 살리는 데에는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습니다. 월드컵 때마다 응원단을 조직해서 자비로 원정 응원을 해왔습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교민분들 숫자가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다른 응원단들이랑 싸워서 저희가 밀린 적이 없어요. 4명이 앞장섰는데 제가 꽹과리 잡고, 북 치는 사람, 장구 치는 사람, 징치는 사람들이랑 거리로 돌아다니면 전 세계 각국의 많은 분들이 다 따라오고 그랬습니다.

 집에는 많이 미안하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니까 집사람이 많이 피곤합니다. 제가 국가대표 응원단도 아닌데 방송도 다 제쳐두고 응원하러 가니까요. 언제까지 이럴 힘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상 없습니다.


Q. 축구 사랑이 남다르신데, 여전히 축구 좋아하시죠? 흥켈메라는 별명을 들어보았습니다.

 제가 축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릅니다. 축구는 제 인생인데요. 11살에 시작해 학창 시절 내내 학교 축구부로 운동했고, 현재까지도 계속 연예인 축구단 및 지역 조기축구회 소속으로 수십 년간 축구를 하고있습니다.

 나이도 있고 몸이 무겁지만, 아직도 축구를 합니다. 축구는 시야가 넓어야 해요. 어떻게 패스를 할지 미리 계산해야 합니다. 패스를 받는 사람이 오십 대냐, 사십 대냐, 삼십 대냐 이런 것도 생각을 해야합니다. 좋은 패스를 해도 받는 선수가 받을 능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냥 패스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동작구에서 축구를 하는데 같이 하시는 분들 연령대가 육십 대 칠십 대입니다. 제가 막내고 게임메이커에요. 패스라는게 그냥 대충 주는 게 아니라 정말 섬세하게 그 순간에 머리를 잘 써서, 받는 사람이 차기 쉽게, 골 넣기 쉽게 갖다 줘야 됩니다.

 많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해있는데, 저는 특히 손흥민 선수가 나오면 밤을 샙니다. 그리고 다음 날 조기축구에서 손흥민 선수의 기술을 써먹어 보기도 하죠.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축구 이야기하면 밤새야 해요.


Q. 2022 카타르 월드컵 직관하러 가실 예정이신가요? 한국팀 응원도 기대해 볼만 하겠지요?

 4년마다 열리는데 저는 한 번도 월드컵 때 안 간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엔 11월에 열리는데 가야죠. 월드컵 무대에는 잘하는 팀들이 올라 오기 때문에 약한 팀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그날 컨디션이 안 좋으면 결과가 좋지 못하죠.


Q. 재단도 만드셔서 사회에 봉사도 많이 하시고 기부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한 20년 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도 못 낼 정도로 집이 많이 어려웠어요. 사비와 후원금을 모아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원로 가수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인데 언론에 알려지니까 주변에서 너도 먹고살기 힘들고 돈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일 한다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급적 노출이 되지 않게 조용하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Q. 구독자인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변호사님들을 많이 상대해 봤습니다. 비용이 비싼 분도 계시고, 분쟁해결을 잘하시는 분도 계시고 못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돈이 급하니까 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솔직히 사건에 전문성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아시다시피 일반인들은 잘못을 안 했더라도 경찰, 검찰조사라고 하면 많이 겁먹습니다. 그걸 잘 핸들링 할 수 있는 변호사가 옆에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저보다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유명한 사람이 피의자이기 때문에 맡는다거나, 김흥국 때문에 뜨고 싶다고 말하는 변호사분들도 있었습니다.

 변호사분들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어려운 일에 처해있는 피의자와 그 가족들에게 평생 못 잊을 정도로 고마운 변호사님들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일은 변호사 없이 진행할 수가 없고, 또 속 시원하게 해결되면 그동안 들인 비용이 전혀 아깝지가 않죠.

 서울지방변호사 회보 인터뷰를 통해 참 좋은 인연이 되었는데, 살다 보면 별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희 같은 연예인은 늘 공격의 대상인데 오늘 인터뷰 이후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김흥국 담당 변호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자진해서 지원 좀 많이 부탁드립니다(웃음). 의리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기대해 봅니다.

 

● 인터뷰/정리 : 우지훈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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