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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광장 장성원 변호사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84년에 졸업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음, 86년에 사법연수원을 15기로 수료하고 군법무관을 거쳐서 89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23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습니다. 2012년 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관직을 마친 후, 현재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유) 광장의 변호사로 입사했습니다. 입사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나 금년으로 11년 차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법원은 10년에 한 번씩 재임용하니 저도 이제 벌써 로펌 변호사로서 한 번 재임용을 한 셈입니다(웃음).


Q. 서울지방법원이 민사와 형사로 나뉘던 시절,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을 배치하는 기준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합친 임용성적이라고 하는 게 있었습니다. 임용성적으로 서울부터 지방까지 순서대로 배치가 되던 시절입니다. 제가 초임이던 당시 임용성적 1등부터 7등까지가 서울에 배치되었는데, 민사와 형사는 따로 구분 없이 2등과 6등이 형사법원에 가거나 하는 식으로 적당히 섞여 배치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요.


Q. 군법무관을 마치고 1989년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셨습니다. 법원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의사셨습니다. 사정상 고3 때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하고 의대에 진학하셨는데 원래 법대에 가고 싶어 하셨어요. 가지 못했던 길을 아들에게 대신 가게 하고 싶은 희망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너는 법대에 가서 판사가 되어야 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알게 모르게 세뇌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 대형 로펌들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서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제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편은 아니지만, 사안을 분석해서 논리적으로 법리를 구성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선 법관직을 수행하는 게 맞지않나 판단했습니다.


Q. 법원 내에서 우신고 80학번 천재 4인방으로 유명하셨습니다.

 우신고가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평준화 정책의 예외가 되어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습니다. 저희가 졸업한 4회 때 서울대에 170명이 입학해 전국 1위가 되자, 시책에 역행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5회부터는 평준화 정책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웃음). 고등학교 동기 중 법대 동기만 10명이고, 1 ~ 2년 사이에 모두가 사법시험에 붙었습니다. 예닐곱 명이 법원에 판사로 들어왔는데, 그중 4명이 동기였던 거죠. 법원에서 보낸 해외 연수에 저희 동기 4명이 한꺼번에 선발됐습니다. 당시 행정처에서 한 고등학교 출신을 너무 많이 뽑은 것 아닌지 고민했다고 하는데, 객관적인 평정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Q. 법원 생활은 잘 맞으셨나요?

 전반적으로 만족했던 23년 간의 법관 생활이었습니다. 우선, 직무의 성격과 내용이 법관을 선택할 때 제 장점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제가 판사로 근무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에 비해 업무량이 과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제가 배석 판사 시절 때 모셨던 부장님이나 제가 부장이 됐을 때 같이 근무했던 배석 판사, 사무관, 실무관, 비서분들까지 모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행복하고, 그렇게 힘들지 않게 법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을 하셨습니다. 이공현 재판관님(당시 사법정책연구실장)을 모시고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법정책연구실에서 이공현 실장님을 모시고 4명이 근무했습니다. 저는 주로 법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일을 맡아 짧은 호흡으로 매우 많은 수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당시 의정부,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행정처 차원의 대응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법원 내부적으로는 흔들리는 조직을 다잡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사법부의 잘못을 반성하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등 다양한 측면을 신경 써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공현 실장님의 제안으로 국민 편의 도모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다 신문의 독자 투고란을 살펴보니, 전입신고를 할 때 확정일자를 동시에 받으면 편리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입신고는 동사무소, 확정일자는 등기소에서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법령 개정이 필요한지 검토했는데 별도의 개정 없이 개선 가능한 문제라 판단되어, 바로 당시 행정자치부의 담당 국장님을 만나 설명 후 협의하고,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전격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Q. 2012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시다가 광장에 합류하셨습니다. 법복을 벗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법원을 나오기 3 ~ 4년 전부터 퇴직을 고민해 왔습니다. 집사람이 큰 병을 앓았는데 재정적 부담도 있었고, 지방 근무를 해야 하니 배우자로서 도움을 주기가 어려워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23년 동안 법관 일을 하다 보니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법관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저 스스로에게나 재판을 받는 사람을 위해서 최선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법원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Q. 약 23년의 법원 생활을 자평하면 어떤 법관이셨습니까?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법 논리에 충실하면서 재판진행이나 결론 도출에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Q. 나와보니 변호사 생활은 잘 맞으셨나요?

 처음 2 ~ 3년 동안은 상당히 부담도 되고 여러모로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만, 3 ~ 4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진작 나와서 더 젊었을 때부터 변호사를 했으면 훨씬 많은 사건을 수행해서 잘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일종의 요령 내지 적응 방식을 좀 늦게 깨달은 것 같기도 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는지요?

 소송 사건에는 항상 승패가 있습니다. 90% 이상 승소할 수 있고, 승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건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경우 그로 인한 당혹감과 좌절감, 낭패감 같은 것들이 굉장히 오래 가더라고요.

 


Q. 변호사 생활의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판사라는 직업은 장점도 많지만 1년 내내 일주일 단위로 계속 재판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돌아갑니다. 반면, 변호사 업무는 하루 단위로 허겁지겁 돌아간다고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하기에 따라 훨씬 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법원 시절에는 못 갔던 장기 여행을 갔는데,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입니다.

 규모나 중요성, 사회적 의미의 측면에서 대형 사건들을 많이 수행하게 된다는 점 또한 부담되면서도 보람이 큽니다. 법관 재직 시에는 아무리 중요한 재판부를 맡게 되더라도 사건들이 랜덤으로 배치가 되기 때문에 사건의 규모나 난이도 등이 천차만별이거든요.


Q. 변호사 수의 급격한 증가로 법률시장이 포화 상태입니다. 새로운 개척 분야, 혹은 대응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30년도 전 제가 초임 판사였던 시절에도 변호사님들께서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 하셨는데, 변호사시장은 점점 어려워져만 갑니다. 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시절에 대법원장님 지시로 적정 신규 법조인 수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외 통계를 기반으로 한 해 적정 신규 법조인 수가 6 ~ 700명 정도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했었으나 시행되지 않았지요.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송무나 자문 시장은 포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빠른 속도로 혁신과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야도 반드시 법적 이슈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법률가의 조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3년간 사법연수원 교수를 했는데, 대형 로펌에서 나와서 구로디지털단지에 들어가 법무법인을 시작한 연수원 제자가 있습니다. 그 회사가 지금은 스타트업계의 김앤장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른 연수원 제자들과 만나면 다들 그 친구가 제일 성공했다고 부러워합니다. 재개발, 재건축 쪽으로 특화시켜 상당한 매출과 순이익을 이룩한 로펌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변호사들이 가장 전직하고 싶어 하는 직장 중 하나가 업비트 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규모의 대기업도 두나무에 사내변호사들을 빼앗기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 발생한 산업 분야에 관여하는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결국 유일무이한 대응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인간 장성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지향하는 사람.


Q. 취미가 있으신지요?

 어느 하나에 푹 빠지는 타입은 아니고, 다양한 취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영화, 음악회, 미술관 가는 것들을 다 좋아하거든요. 음악도 클래식, 팝, 가요 다 좋아합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헬스클럽에 갑니다. 길게는 못 하더라도, 2 ~ 30분씩이라도 매일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개운해집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하나 꼽으신다면 어디인가요?

 아내와 둘이 갔었던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판사 2년 차 때 부장님으로 모셨던 권성 헌법재판관님이 법조인으로서의 롤모델입니다. 권 재판관님이 사건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보전처분에 대한 국내 서적이 한 권도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제51부 가처분 재판부에서 일본 책들을 찾아보면서 겨우겨우 사건을 해결했는데, 그때 권 재판관님이 하신 검토 메모가 모여 『가처분의 연구』라는 책이 되었지요. 그 책의 서문에 ‘궁리’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법 논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재판관님의 구도자에 가까운 열정과 프로페셔널리즘이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어떠한 좌우명 혹은 가치관으로 살아오셨나요?

 Look on the bright side. 젊을 때부터 친구들에게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나쁘고, 이걸 얻기 위해서는 저것을 포기해야 하지요.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기 때문에,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결과도 조금이나마 좋고, 영적 건강에도 좋을 것이며, 가족이나 함께하는 지인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독서도 굉장히 많이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인생 책을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훈의 『남한산성』


Q. 변호사님께서 앞으로 꼭 이루자 하시는 것이 있나요?

 첫째는 가족과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는 것이고, 둘째는 가급적 노쇠하지 않고(웃음) 고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Q. 변호사님께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어렵고 중요한 사건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순간과 후배나 동료에게 밥을 사는 순간입니다.


Q. 자녀분들에게 법조인을 권하셨나요?

 아들과 딸이 있는데, 본인들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첫째인 아들은 제게 없는 창의적인 면이 좀 더 뛰어나고, 둘째인 딸이 저와 비슷한 성격이라 둘째를 로스쿨에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첫째가 미국 로스쿨을 나와 국내 다른 로펌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건가요?

 그렇습니다. 법률가에게 필요한 능력은 사안을 분석해서 그에 적용될 법 논리를 짜는 것인데, 제 적성과 능력이 법조인에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법률 문장을 최대한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른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상대적으로 강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1989년 초임 판사 장성원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지 궁금합니다.

 선배법조인들을 다양하게 관찰하면서 폭넓은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93년 스탠포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판사 시절에는 접하지 않던 다양한 분들을 만나며 세상은 넓고 할 일도 참 많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사고방식도 보다 융통성 있고 유연해졌고요. 초임 판사 때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부가 아니니, 더 견문을 넓히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2년의 후배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초반 3 ~ 4년 동안은 최대한 빨리 실력을 쌓고, 잘 맞는 취미생활을 통해 여가를 선용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하시며 오랫동안 법조인 생활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 일하다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기는 힘드니 여행 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에 맞춰 일을 조절하길 권합니다(웃음).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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