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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

 기원전 61년 중국 전한(前漢). 효선황제(孝宣皇帝) 유순(劉詢)은 강족(羌族)의 한 종족인 선령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는다. 유순은 광록대부(光祿大夫) 의거안국(義渠安國)에게 군대를 이끌고 선령강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의거안국은 군대를 풀어 선령강 호족 30여 명과 선령강 1,000여 명을 참하였다. 이에 분노한 선령강은 강족을 규합하여 한나라를 공격하였다. 의거안국은 기병 3,000기를 동원하여 강족을 제압하려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유순은 어사대부(御史大夫 : 현재로 따지면 검찰총장이라 한다)인 병길(丙吉)에게 강족을 토벌할 장수를 추천할 것을 지시하였다. 병길은 거기장군(車騎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강족을 제압할 적절한 장수가 있는지를 물었다. 조충국은 자신이 적임자라고 답하였다. 조충국은 젊은 시절 흉노를 토벌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장수였다. 유순은 조충국이 명장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충국은 이미 나이가 70세가 넘었고, 유순은 조충국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였다.

 유순은 조충국에게 물었다. “그대는 강족의 상황이 어떠하고, 강족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군사가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조충국은 유순에게 대답하였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오.”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옵니다. 현재 전쟁이 발생한 곳은 먼 곳이라 짐작하여 판단하기 어려우니, 신이 당장 말을 타고 금성(金城)으로 달려가 지형을 그리고 방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유순은 조충국에게 “그리하라”라고 답하였다. 조충국은 말을 타고 달려가 지형과 적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이후 조충국은 둔전책이라는 계책을 마련하여 강족을 격퇴하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하여 싸우는 장수이고, 재판은 전쟁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의뢰인 말을 유심히 듣고 사실관계를 잘 파악하여야 한다. 의뢰인의 주장 중 법리적으로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잘 가려서 서면을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법관을 잘 설득하여야 한다. 법관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변론기일과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재판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검사나 상대방의 태도와 주장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마치 장수가 말을 타고 가서 전장의 지형과 상대방의 전력과 전략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법관은 원칙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며 심증을 드러내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법관은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쟁점을 정리할 수밖에 없고, 이에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송당사자들에게 질문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법관의 질문을 듣다 보면, 힌트를 얻기도 하고, 현재 재판부의 심증이 어떤지를 대략 추측할 수 있다. 법관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송당사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짜증을 낼 수 있다.

 변론기일이나 공판기일에 갔는데, 전세가 우리 측에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변호사는 즉시 전략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법리(계책)를 마련하거나 의뢰인에게 새로운 증거(무기)를 달라고 요청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끝까지 상대방을 괴롭혀서라도 조정을 이끌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경우에 따라 소 취하라는 삼십육계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 변호사가 소송에 이기려면 전장(변론기일, 공판기일)에 꼭 나가야 한다. 그런데 변호사법 제31조의2 제1항에 의하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는 6개월 동안 실무수습을 마치지아니하면 담당변호사로 지정될 수 없다. 이에 6개월 실무수습을 마치지 못한 변호사는 사무실에서 서면작성만 하고, 변론기일이나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못한다. 이는 장수로 하여금 전장에 나가지 말고 아주 먼 곳에서 칼이나 화살촉을 갈며 후방지원만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법무법인이나 변호사들은 실무수습 변호사를 법정에 데리고 가서 재판을 방청하게 하기도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서면만 쓰는 것보다 재판을 방청하는 것이 낫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담당변호사로서 원 · 피고석 내지 변호인석에 앉는 것과 선배변호사에 의해 끌려가 방청석에 앉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담당변호사로서 소송을 수행한다면 사건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책임감, 부담감을 더 느낄 것이고 사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원실무제요, 민사소송법을 100번 읽고, 선배변호사가 실무수습 변호사에게 100번 소송절차를 설명해주는 것보다 실무수습 변호사가 직접 담당변호사로서 변론기일과 공판기일을 진행해보는 것이 재판의 절차나 방법을 이해하는 데 수월할 것이다.

 현재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에게 실무수습 의무를 부여한 것 자체가 타당한지 여부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실무수습 제도의 필요성이나 그로 인한 부작용을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변호사법 제31조의2 제1항을 개정하여 실무수습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무수습 변호사가 단독으로 소송수행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인다면, 6개월 실무수습 기간을 마친 선배변호사와 같이 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 할 것이다.

배상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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