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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며칠이 필요할까? 지구가 둥근 구의 모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를 궁금해했을 것이다. 지구는 얼마나 큰가, 그리고 내가 오늘 당장 길을 떠나 지구를 한 바퀴 돈다면 얼마나 걸릴 것인가? 세계 일주를 계획하는 개인은 한 사람의 생활반경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지구의 크기를 실감하며, 동시에 스스로는 미약할지라도 그 큰 지구를 직접 한 바퀴 돌아내고야 말겠다는 포부를 품는다.

 상상하다 보면 구체적으로 따지게 된다. 서울에서부터 북동쪽을 향해 출발하여 육상 및 해상 교통수단으로 이동한다면, 북미와 유럽, 중앙아시아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북미와 서유럽의 유명 도시를 여행 가능한 이 방법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북반구의 대륙만을 통하는 반쪽짜리 경로이다. 존재감을 내뿜는 남반구 대륙들을 애써 모른 체해야 하므로 지구를 한 바퀴 제대로 돌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대척점에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녀오는 경로는 어떠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과 남아시아가 있다. 만일 여행 자체보다 일반적인 여행 수단으로 얼마나 빨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둔다면, 육해상 운송 수단보다는 여객 항공편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인천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직항편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짧은 여행에서 체류지가 늘어 즐겁다는 긍정적 태도를 견지하기로 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9세기 유럽인의 관점에서 ‘지구 한 바퀴’를 소재로 일간지에 연재한 소설이다. 시간적 배경은 연재 시점과 동일한 1872년으로, 작중 여행 경로인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지 3년이 경과한 해다. 영국 런던에서 집과 사교 클럽만을 오가며 조용히 생활하던 필리어스 포그는 어느 날 자신이 80일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지를 두고 클럽 회원들과 2만 파운드(2022년 기준 약 250만 파운드, 한화 40억 원 정도)의 거액을 건 내기를 한다. 클럽 회원들과 약속한 도착 시간보다 1분이라도 늦는다면 그는 내기에서 잃은 돈과 여행 비용으로 인해 파산할 것이다.

 필리어스 포그는 런던에서 출발하여 80일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거쳐 인도의 뭄바이와 콜카타,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요코하마로 이동하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거친 뒤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는 정해진 계획에 철저한 사람으로서, 이 여행의 목적을 오로지 80일간 계획된 일정 완수에 두어 여행지의 풍경에 무관심하다.  포그를 대신해서 다채로운 여행지 모습에 매료되고 흥미진진한 사건을 겪어내며 생동감을 살리는 것은 포그의 쾌활한 하인 파스파르투이다. 그러나 계획에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포그도 여행이 이어지며 점차 적극적인 인물로 변모한다. 인도에서는 예정에 없던 모험을 감행하여 죽은 남편과 함께 산 채로 화장당할 위기에 처한 아우다 부인을 구출하고, 여행 막바지에는 직접 배를 지휘하여 대서양을 횡단한다.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 줄 알았던 여행은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드라마틱한 성공에 이르고, 은둔자였던 포그는 80일간의 여정 끝에 대담한 모험가가 되어 아우다 부인과 결혼하면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포그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는 독자는 이들이 다양한 위기를 만날 때마다 긴장하면서, 포그의 침착함과 파스파르투의 흥분에 번갈아 자신을 맡긴다. 하지만 여독이 쌓일 듯 다사다난한 이야기 끝에는 세계를 일주하고 집으로 돌아온 독자를 반기는 안락한 해피엔딩이 있다. 독자는 방금 소파에 앉아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마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년간 유지되었던 해외여행 제한이 풀리고 있는 지금, 이 책을 통해 콧대 높은 19세기 유럽인들과 세계를 일주하며 본격적인 여행의 시동을 걸어 보기를 권한다.

 참고로, 현 시점에서 찾은 인천 - 부에노스아이레스 - 인천의 최단시간 여객 항공편은 다음과 같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행 최단시간 항공편은 대개 미국 애틀랜타나 뉴욕을 경유하는데, 환승시간을 포함하여 26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인천에 돌아오는 최단시간 항공편은 브라질 상파울루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차례로 경유하는 30시간짜리 경로가 있다. 이 코스를 따라 한국의 여행자가 2022년 11월 1일 저녁 6시 30분에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면, 애틀랜타를 경유하여 2일 오전 9시(현지 시각)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가 같은 날 오후 9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와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여 4일 오후 3시 45분에 인천에 도착할 수 있다. 인천 출발부터 인천 도착까지 70시간 남짓 걸리므로, 일반적인 여행자도 이제는 ‘80시간의 세계 일주’가 가능한 것이다.

손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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