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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깊어진 가을에 맞게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 그것도 와인에 관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하면 와인이고, 프랑스에서도 와인하면 바로 부르고뉴 지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르고뉴 지역이 어디일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들 수 있다. 이번 영화의 제목에도 나오는 부르고뉴 지방을 잠시 먼저 소개한다. 이번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에 나오는 지역적 배경은 황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부르고뉴 꼬뜨 도르(Cote d'Or)’ 중 ‘꼬뜨 드 본(Cote de Beaune)’ 지역이 그 장소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이 소유한 포도밭 이름이 몇 개 나오는데, 그 밭들이 위치한 곳은 ‘뫼르소 (Meursault)’라는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작은 산골 마을에 속하는 곳이다. 한편 ‘꼬뜨 도르(Cote d'Or)’나 ‘꼬뜨 드 본(Cote de Beaune)’은 고유명사이지만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황금같이 비싼 밭이나 언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만큼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 와이너리는 황금처럼 귀한 취급을 받아왔음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도 언덕에 위치한 포도밭들이 잘 보이는데 언덕 사면에 위치한 포도밭이 평지보다 더 좋은 밭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언덕 면에 위치한 포도밭은 다른 곳보다 배수가 잘되며 햇빛을 오래 받을 수 있는 떼루아(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따위의 조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밭은 구역을 나눠 프리미에크뤼, 그랑크뤼로 구분되어 있는데, 지형상 ① 적당한 상대적으로 높은 경사지에 존재하는 밭이 그랑크뤼(Grand Cru), ② 그 아래 위로 프리미에크뤼(Premiers Cru), ③ 평지 마을 부근이 꼬뮈날(Communales = 빌라쥐 Villages), ④ 가장 아래 평지에 부르고뉴 레지오날(Bour gogne Regionales)로 일반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특히, 부르고뉴의 서쪽은 언덕(산)이고, 동쪽은 쏜(Saone) 강이 위치하고 있는데, 영화상에서 삼남매가 와인을 언제 수확할지를 고민하는 장면 중 비가 올지 안 올지 예상하는 대목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수확기에 비가 오면 포도나무가 물을 많이 흡수하여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한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로, 이번 영화는 가정 불화로 고향을 떠나 멀리 호주에 떨어져 살고 있던 맏아들 장의 귀향으로 시작한다. 장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홀로 세계 여행을 하며 방랑하다 호주 출신 알라시아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귀여운 아들까지 태어나게 된다. 둘은 호주에 정착해 은행에서 대출을 얻어 와이너리를 사서 경영해 오지만 경영상의 어려움 등으로 또다시 불화를 겪던 중 아버지의 위독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귀국길 중 장은 아내인 알리시아가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게 된다. 다만 표면적 사유는 고향 부르고뉴의 늙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동생들의 소식을 듣고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프랑스 부르고뉴 뫼르소 지방 한 와이너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모두 담긴 1년이라는 시간을 자연 풍경이라는 공간의 변화와 포도 재배, 와인 제조의 과정을 담으며, 각자 사연이 있는 주인공 삼남매의 인생 스토리가 전개된다. 부르고뉴 시골 마을에는 맏이 장 대신 아버지와 함께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던 의젓한 여동생 줄리엣(아나 지라르도)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새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남동생 제레미(프랑수아 시빌)가 있다. 이들은 아버지의 유산인 와이너리의 공동상속자로서, 앞으로 와이너리를 어떻게 운영할지, 각자 삶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세 남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각자의 인생을 찾게 되는, 어찌 보면 다소 뻔한 스토리이기도 하다. 뻔한 스토리이지만 몰입을 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이 영화가 프랑스 정통 와인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름다운 와이너리와 함께 하나의 프랑스 지역 고유 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이 영화를 만든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프랑스 전통 와인 관련 영화를 만들기 위해 7년의 세월을 들였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영화 속 와이너리는 마르셀 역으로 출연한 조연배우 장 마크 룰로가 실제 소유한 와이너리로, 감독은 그곳의 계절의 흐름을 수년간 관찰한 후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전했다. 다큐를 보는 것과 같은 사실적인 장면들은 EBS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을 보는 듯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향토적이고도 아름다운 전경을 소개하고 있다. 포도가 익은 정도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수확의 시기를 정하고, 수확을 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장면들은 물론이고 포도가 거대한 통 안에서 익어가고 그 숙성된 와인을 맛보는 장면들까지, 영화는 ‘와이너리’의 처음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삼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의해 여러 가지 와인 맛과 향 등의 감각 훈련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와인을 최상급으로 만들고 그 전통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장인 정신이 담긴 모습과 장면으로 프랑스인들의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영화 속에서 맏이 장은 호주에서 순탄하지 않은 가정을 꾸리며 힘들게 살고 있고, 아직 미혼인 줄리엣은 아버지를 도와 와인을 계속 만들어 왔고, 막내 제레미는 장인과 장모에게 소위 말하는 처가살이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구나 겪고 있을 법한 각자의 인생사 고민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다 큰 어른들의 이야기다. 장남 장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10년 만에 고향으로 와서 당초 한 달만 머물다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포도밭에 가을이 흠뻑 들어설 때까지 머물고 이로 인해 아내와의 불화는 오히려 심해진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삼남매는 몰려오는 구름을 쳐다보며 포도 수확 시기를 놓고 고민하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확한 포도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방식으로 숙성시켜 나가기로 한다. 가족 간의 상처를 안고 집을 떠나갔던 장은 그 옛날의 우애로웠던 어린시절 및 호주에 홀로 두고 온 아내와의 사랑스런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에도 숙성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은밀히 느낀다. 영화 속엔 부르고뉴 정통 포도주 맛을 위해 삼남매가 포도를 따 그 맛을 음미하는 장면이나 숙성한 와인 맛을 음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이들 삼남매가 저마다 지난 어린 시절 서로의 우애를 기억하고 음미하며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처럼 다가온다. 주제도 결말도 뻔한 영화인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 두고두고 내 마음에 오래 남는 까닭은 내가 평소 동경하던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시골 포도밭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해진 성인이 된 삼남매의 아름다운 우정과 영화를 받쳐주고 있는 와인의 달콤함과 부드러운 힘 때문인 듯하다. 이제 한국 사회도 명절이나 고향이나 친지 방문이 어린 시절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듯하다. 프랑스의 전통 와이너리도 그렇고, 한국의 전통 명절문화도 그렇게 과거의 전통은 하나둘씩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영화는 성인이 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및 그 형제자매들 간의 소중함도 새삼 다시 일깨워 주는 역작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아 고향을 떠나야 했던 맏이 장은 가족과 왕래하지 않았던 지난 10년 동안의 오해를 풀고, 아내와의 불편했던 관계도 풀며 인생 중반에 꼬였던 실타래를 모두 풀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른이 된 세 남매는 와인을 함께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신들의 길을 찾아간다.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고향 부르고뉴 와이너리 안에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그들은 품고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각자의 인생과 미래를 향해 다시 힘차게 걸어가면서 영화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한다. 이 영화에서 와인은 우리들 인생의 은유이기도 하다. 그저 포도로 만든 술인데도 와인마다 향과 맛이 제각각이다. 숙성이 오랠수록 와인 향이 진해지듯 우리들의 인생도 진한 숙성과정을 거쳐 보다 성숙하게 된다. 주인공 장의 혼잣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와인처럼 사랑도 시간이 필요하더라. 시간이 흐른다고 상하는 건 아니었어.” 비슷하게 우리말에도 ‘삭다’와 ‘썩다’가 있다. 두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와인은 오랜 시간 두어도 썩지 않고 삭아 달콤한 향과 맛을 만든다. 인간관계도 썩지 않고 삭아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려면 발효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발효가 일어나려면 긍정적인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이 좋은 가을 깊은 밤 와인에서 배운 사랑이고 인생이 아닐까?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한 깊은 철학이 녹아 있는, 인생과 가족을 위하는 따스한 시선과 위로의 손길이 담겨 있는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다.

성중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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