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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 불안

 가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차마 의심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바쁘게 살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난 무엇에 쫓겨 뭘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었나 싶을 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한 번 가볍게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알랭 드 보통은 ‘지위로 인한 불안’을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해 존엄을 잃고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라고 정의하면서 나름의 원인(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과 해법(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을 몇 가지로 제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법 흥미로운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권력이나 돈, 명성 등에 집착하는 속물 캐릭터는 사람을 물질적인 조건으로만 보지 않는 주인공과 대비되어 주인공을 남과 다른 고결하고 숭고한 존재로 묘사하는 도구로 이용되고는 한다. 하지만, 정말 ‘속물근성’이 그렇게나 잘못된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사실 본질적인 자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안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와 ‘사랑 결핍’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개인은 여러 사회적 조건의 총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조건과 분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바라봐줄 사랑이나 우정을 꿈꾸며 이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에 추호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응원하는 주인공이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과연 개인에게서 완벽하게 분리하는 게 가능한지조차 의심되는 본질적인 자아를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안도하고 약간이나마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현대사회에서 과거보다 더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 사이에 더 많이 ‘기대’하게 된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 불안해졌다고 말한다. 또한, 청빈한 삶의 가치를 더 우위에 두던 중세 종교사회와 신분제 사회에서는 실패를 외부의 요인으로 책임을 돌리거나 미화할 수 있었으나, ‘능력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오히려 모든 실패의 책임을 사회나 신의 뜻으로부터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하게 되어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부자는 단지 더 부유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에 비하여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누군가는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되고 나는 부동산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되었다는 슬픈 자조의 기저에는 나도 할 수 있었다는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나는 하지 못했다는 불안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매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최신 제품은 우리를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고, 친구의 SNS 속 화려한 삶은 이제 부러움의 대상을 넘어내 뼈아픈 실패의 증거가 되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열심히 경제적 성취를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슬픈 소식이지만 여기에 더해 통제할 수 없는 재능이나 운, 고용의 불안전성 등을 더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더 불안해야만 하는 운명처럼 보인다.

 이에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이 있는 인생,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사랑이 있는 기독교 정신, 집착하지 않는 보헤미안 정신 등을 ‘불안’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해결책에 완벽하게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제시한 색다른 시각에 더하여 내 나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여러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친구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행복한 건 그냥 그때 운이 좋은 거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큰 깨달음 보다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는 내 나름의 경험에서 한말이었다.

 과거 한때는 독실한 신자로 살았던 때도 있었다. 절대자가 항상 내 뒤를 받쳐준다는 믿음은 그때의 나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고 덜 불안하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가까운 누군가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사는 게 참 덧없고 별게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지만 곧 다시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이들을 곁에 두고 대화를 하는 게 불안을 조금이나마 더는 길이었다.

 결국, 더 나은 지위에 대한 욕구는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우리 모두는 불안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조언에 따라 내적 성숙을 통해 불안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으나, 자기 발전의 욕망이 클수록 그 과정에서 불안한 마음이 끼어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고 떨쳐낼 수 없는 것이라면, 어쩌면 불안은 오늘의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조금 무거운 훈장 정도로 여겨도 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불안하다면, 정상이다. 우리 모두 그렇다.

김승현 변호사
● 법무법인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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