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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탐방] 진모영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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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정리 : 김종규 본보 편집위원


김종규 변호사(이하 김) 
진모영 감독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진 감독님께서 이번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로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쓰셨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우 이전에 최고관람기록이 <워낭소리>가 갖고 있던 290만 명이었는데, 이번에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여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축하드리면서 이 영화를 처음 계획할 때 이런 기록에 대한 예상을 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모영 감독(이하 진)
제가 이 영화를 계획하면서 좋은 영화이니 많은 관객이 봐 주시길 바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큐 영화의 특성상 1~2만 명만 봐 주어서 제작비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저 역시 이 정도의 기록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영화를 봐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런 기록이 다큐 영화의 제작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희망입니다. 저의 기록을 보고 다큐 촬영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나올 것이고, 또 투자자들도 계속적으로 투자를 해 주게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보람이 있습니다. 저의 이런 기록이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주게 되었기 때문에 다행스럽습니다.

김 
사실 진 감독님과 만나기 전에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한 것을 봤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관련해서는 워낙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 진 감독님 개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진 감독님이 저희들에게는 생소한 분입니다. 본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에 대한 개인적인 부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가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영화는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당신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도 제 소개를 해 달라고 하시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해남에서 나서 중학교를 다니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는 전남대 법대를 나왔습니다. 오늘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사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생운동을 하였고, 사법시험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시절 한 학년에 3, 4명의 사법시험 합격생이 나왔는데, 저는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기자가 되고 싶었던 꿈이 있어 미디어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방송사에 취업한 적은 없고 계속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연출 활동을 했고, 이후에는 외주업체로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를 창작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주업체는 모든 저작권을 방송국에 넘겨주고 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외주업체가 아닌 스스로 저작권을 갖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 지극히 사적인 장면, 예를 들어 자식들끼리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놓고 싸우는 장면도 있고, 특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염하는 장면도 촬영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허락을 받는 등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진 
처음 영화 촬영에 대한 계획을 하고 촬영에 동의를 받으면서 모든 소소한 부분까지 사전에 계약으로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큐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변수들이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새롭게 이해를 시키고 설득을 하려면 촬영이 불가능합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고 촬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은 촬영에 있어 큰 변수였습니다. 사전에 이런 부분까지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새로운 상황에서 촬영에 대한 허락 등이 복잡한 문제가 되었겠지만 저는 처음 촬영을 하면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들 모두에게 초상권은 물론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촬영까지 허락을 받고 계약을 하였습니다.
가족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기록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적이고 상세히 촬영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었습니다. 

김 
저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떻게 처음 이 영화를 촬영할 계획을 하셨는지요. 이 영화와 유사한 내용이 TV에서 방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만들게 되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TV에서 먼저 방영된 것이 맞습니다. 저 역시 <인간극장>을 보고 노부부의 사랑을 테마로 다큐를 촬영하고 싶었습니다. TV의 경우 특히 아침드라마의 경우는 영상보다 소리가 중요합니다. 분주한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또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영상은 보지 못하고 나fp이터의 소리만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노부부의 사랑이 그냥 분주한 아침에 소리로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분의 사랑을 영상으로 남겨 보고 싶었습니다. 
찰나적으로 지나가 버리기에는 두 분이 갖고 있는 사랑의 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분의 사랑은 수준 높은 사랑, 사랑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것을 모두에게 영상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예상 밖에 젊은 층, 20~30세대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감독으로서 그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처음 40~50대를 대상으로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20~30대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젊은이들이 두 분의 사랑을 단순한 노인들의 사랑이 아닌 내 사랑의 샘플 또는 롤모델로 단번에 받아 안은 것 같아요. 그리고 20~30대가 경제능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자신들이 보고 부모님들께 다시 영화티켓을 선물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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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이야기보다 현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계속 촬영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각박하고 불안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있습니다. 해고, 불안정한 일자리 등 노동시장의 문제도 그 중 하나이지요.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역동적으로 일어서서 싸워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동시대의 한국의 모습이 현세대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보편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탈북하여 남한에서의 생계를 위해 잠수사 일을 하는 머구리 잠수부 노동자의 삶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탈북으로 겪는 이방인의 삶에서 보편적인 현대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 
이번에 성공을 통해서 상업영화계에서 접촉할 것 같은데, 상업영화를 할 계획은 없는지요?

실제 자주 연락이 옵니다. 그러나 저는 다큐멘터리스트일 뿐입니다. 다큐를 찍어서 영화관에 걸어서 영화감독이 된 것일 뿐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스트로 살고자 합니다. 제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김 
끝으로 변호사인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비록 제 영화가 아름다운 로맨스나 거대한 스펙터클이 없으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둘의 사랑은 “연민”입니다. 저는 모든 관계에서 사랑은 존재하며, 사랑은 연민이라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세계를 잘 모르지만,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경우, 그 나름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것일 겁니다. 그들에게 “연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민”을 갖고 일을 하면 결과적으로 변호사로서도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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