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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담당 기자는 법정만 취재를 한다고요?

 처음 법조를 담당하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서가 공판을 좌지우지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세기의 재판’이라 할 수 있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 이후 법정 취재는 법조 취재의 핵심이 됐습니다.

 법원을 담당하는 기자들의 중요 취재 포인트를 꼽으라면 단연 법정입니다. 재판부는 물론 검찰과 피고인(민사의 경우 원 · 피고), 증인, 변호사 등의 말과 행동은 기사화가 됩니다. 많은 이들은 법정에서만 취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정 바깥에서도 치열합니다. 법정은 제한적 공간인데다가 기자들이 ‘질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에 반해 법정 바깥은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이 있는 날이면 기자들은 포토라인에 몰려듭니다.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때로는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열정 넘치는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종종 포토라인은 동료들에게 양보하고 영장법정 앞으로 가곤 합니다.

 영장법정 앞에서 피의자들의 표정을 여유롭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구속’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긴장이 이어집니다. 표정만으로 유무죄나 영장발부 여부를 예단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감’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성범죄 혐의를 받는 연예인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는 날입니다. 이날도 법정 앞에서 피의자를 기다렸습니다. 공범들은 굳은 표정으로 복도 벤치에 앉아있는데 이 연예인은 소풍 온 것 마냥 신이 나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어이가 없었죠. 사실 적지 않은 법원 출입 경력에서 영장 법정 앞에서 환한 표정을 짓는 피의자는 이 연예인이 유일했습니다.

 나중에 동료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에는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죠. 화장실 들어가고 나올 때 표정이 다르다더니 포토라인이 화장실 같았을까요.

 환한 표정 뒤로 구속영장은 발부됐고, 대법원에서도 징역형의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그는 수차례 반성문을 재판부에 보냈습니다만 저로서는 그 반성문에 진정성이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검찰청 조사실 앞에서 조사가 끝날 때까지 밤새워 버티고 있거나, 영장법정 입구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라도 들리는지 ‘귀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잉취재 지적과 함께 다른 사건의 수사 · 재판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됐죠. 여러 논의 끝에 지금처럼 취재 마지노선은 포토라인이 됐습니다. 다만, 재판이 끝나면 법정 문에서 또 취재가 반복됩니다. 엘리베이터도 예외가 아닙니다.

 수년 전 한 재벌가 여성이 형사사건 결심에서 최후진술을 하며 오열했습니다. 법정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면 방청석은 숙연해집니다. 눈물이 진실이건 아니건 간에 그 감정을 짧게나마 공유하려는 정적이 흐릅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사건은 이제부터. 법정을 나선 이 여성은 엘리베이터를 탄 뒤 자신의 변호인에게 ‘변호사님 제 연기가 어땠어요’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아뿔싸, 같은 엘리베이터에 있던 한 기자가 이 말을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재판부를 속이려고 ‘연기’를 했을 수 있고, 자신의 모습이 민망해 내뱉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입이 방정이었을까요. 이 기사가 화제가 되고 1심은 물론 대법원에서까지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한동안 기자들 사이에서 피고인과 같은 승강기를 타려고 몰리는 일이 유행처럼 이어졌습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나온 말과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기자들은 법정 밖에서 벌어진 내용도 취재해야 합니다. 판결서의 위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진실이 법정과 판결서 외에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오승완 내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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