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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변호인이잖아요”

 형사전문 변호사, 의뢰인들의 억울함을 밝혀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지만 범죄사실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의뢰인들을 위해 피해자와의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특히 성범죄 영역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양형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라는 점은 이론이 없을 듯하다.

 자백 사건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사선변호사 또는 국선변호사(이하 ‘피해자 변호사’라고만 한다)가 선정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 기준이긴 하나, 검찰의 경우 이를 잘 알려주는 편이고, 법원의 경우 공소장에 피해자 국선이나 사선변호인 선정서가 첨부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열람·복사를 통해 그 정보를 확인한다. 그런데 경찰의 경우 그 처리방식이 각 경찰서마다 다른 것 같다. 정확히는, 수사관이나 그 팀의 분위기에 따라 갈리는 것 같다.

 피의자에 대한 조사 이전에도, 구두로 자백할 사건이니 피해자 변호사를 알려 달라고 할 경우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경찰 조사 때 자백한 경우에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최악은 경찰 조사 이후 자백하고서도 알려주지 않는 경우이다. 경찰이 피해자 변호사를 알려 주지 않는 경우가 여럿 있을 것으로 추측되나, 내 경험상으로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 등 내부적인 성과를 위해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와 합의하여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보였다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굳이 법원이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성은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경찰의 관행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상당히 제한하는 것으로서 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형사법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결국 피해자 변호사의 본질도 ‘대리(代理)’에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피해자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제27조 제1항), 그 변호사는 형사절차에서 피해자 등의 대리가 허용될 수 있는 모든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제27조 제5항).

 즉, 피해자 변호사는 대리인이므로, 수사기관인 경찰은 피해자 변호사가 누구인지 변호인에게 알려 줘도 피해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는 ‘가명’으로 특정되어 있고(동법 제23조),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에 대하여 누설하는 경우 등 처벌 규정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동법 제24조). 피의자의 변호인은 ‘대리인’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지, ‘본인’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최근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피해자 사선변호인인데, 내가 연락받기를 기다렸다고 수사기관으로부터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명을 수사기관이 알려준 것으로 들었는데 왜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안 주셨냐고 반문했다. 분명히 담당 수사관에게 피해자 변호사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다가 의뢰인이 구속되고 나니 피의자 변호인이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달한 것이다. 피해자 변호사의 오해는 풀었지만, 경찰의 그러한 악행은 매우 유감이다. 연달아 두 명의 의뢰인이 피해자와는 합의 시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속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누구나 예상 가능하겠지만) 수사기관이 피해자 변호사의 연락처를 변호인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구속’이라는 실적을 위한 것임이 밝혀진 셈이다.

 그래서 한마디 하고 싶다. “그래도, 변호인이잖아요.” 

 이제는, 구두로 알려 주지 않으면 정보공개청구라도 해야겠다.

안갑철 변호사
●법무법인 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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