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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새해 첫날 집어든 책은 『채근담(菜根譚)』이었다. TV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던 중이었다. 산중에서 홀로 나물을 캐먹던 자연인의 먹방을 바라보다가, 지난해 구매해 책장에 꽂아둔 책이 생각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본 책이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건 최근이다. 제목을 해석하면 “풀뿌리를 씹는 이야기”이고, 이것이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니 쉽게 좌절하지 말라는 응원이라는 걸 안 것도 얼마 전이다. 거센 세파(世波)에 시달린 뒤에도 의연히 나물에 밥을 비벼 먹는 자연인의 마음으로, 나는 한밤중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명나라 선비 홍자성이 자신의 체험에 기반해 남긴 청언(淸言)으로 『채근담』은 이뤄져 있다. 내가 읽은 책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평역해 지난해 출간한 최신판이다. 363개의 짧은 잠언에 번역과 쉬운 해설을 곁들인 것이다. 잠언의 특성상 분량이 길지 않아 한번 훑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개의 문장 위에서 나는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다. 오래 곱씹었다. 각자의 자연에서 새해의 몸가짐을 추스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장을 몇 쪽 접어 옮긴다.


이익을 좇는 자보다 명성을 좇는 자가 더 해롭다.

 그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채근담』은 달리 경고한다. “이익은 도덕과 의로움을 대놓고 벗어나 추구하므로 누가 봐도 그 해독을 알아차려 피할 수 있다. 반면에 이름나기를 좋아하는 자는 겉으로 도덕과 의로움을 행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니 해독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피해는 몹시 크다.” 한마디로, 장사꾼보다 위선자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짧은 인생을 되돌아봐도, 정의로운 말을 달고 사는 자들일수록 구취가 심했다. 잊지 말자.


지조를 지키되 결기를 드러내지 말라.

 이 책은 결국 처세에 대한 조언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부조리하며 비정하다는 현실 인식에서 이 책은 출발하기 때문이다. “담박하여 물욕이 적은 사람은 반드시 욕심 많고 세련된 자에게 의심을 사고, 자신을 잘 단속하는 사람은 대개 방종한 자가 꺼리게 마련이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빌런은 나타난다. 어째야 하나. 홍자성은 “나를 지키되 저들을 자극하지는 말라”고 써놨다. “저들과 다투면 대개는 군자가 패한다.” 똥은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곧장 반격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 하수구로 내려갈 것이다.


덕이 없는 재능은 쇠락한다.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대개 인성에 문제가 있다. 모든 걸 다 주지는 않는 자연의 섭리라 볼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까지 있겠는가. 출중하지 않은 나조차도 가끔 주제를 망각하고 까불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숙연해지곤 한다. “덕망은 재능의 주인이고, 재능은 덕망의 종이다. 재능이 있으나 덕망이 없는 것은 집안에 주인은 없고 종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꼴이다. 어찌 도깨비가 제멋대로 날뛰지 않겠는가?” 나대지 말자.


쉬고 싶으면 지금 당장 쉬어라.

 연말마다 병원에서 검진받으며 다짐하다가도, 새해부터 몰아치는 업무와 함께 까먹는 게 건강이다. 잘 쉬어야 잘 산다는 걸 알면서도 휴식은 어렵다. 시간이 안 나니까. 그러나 우리의 홍 선생은 일갈한다. “일을 내려놓고 쉬고자 하면 당장 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이 끝날 때를 기다린들 일이 끝날 때는 없으리라.” 송나라 고승 운봉열 선사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는 한평생 한 번도 쉬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길었던 역병의 시기도 조금씩 끝이 보인다. 멀리 가도 되는 것이다. 계묘년, 모쪼록 잘 쉬고 잘 먹고 잘 사는 한 해 되시길.

정상혁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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