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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잡아먹는 나라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티탄(titan) 크로노스는 어머니인 가이아로부터, 자신이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좌를 장악했듯이, 크로노스의 자식 역시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신들의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언(혹은 저주)을 받고 불안해했다.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한 입에 삼켜버렸다. 결국 남편이 자식을 집어삼키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아내 레아는 여섯째 아들 제우스를 크레타 섬에 숨긴 뒤 돌을 강보에 감싸 자식이라고 크로노스에게 속였고, 속아서 돌덩이를 삼킨 크로노스는 훗날 장성한 아들 제우스에 의해 폐위되었다.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 ~ 1828)의 말기작 중 하나인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Saturno devorandoa su hijo)”는 그리스 신화에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에서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로마 신화상 명칭)는 자식들의 반란에 의해 왕위를 잃으리라는 예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광기에 휩싸여 눈을 부릅뜬 괴물로 묘사된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씹지 않고 삼켜버리지만, 고야는 크로노스를 희생양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의 검은색 배경과 대조되는 붉은색의 피, 이미 머리와 왼쪽 팔이 먹힌 아이의 시신, 그리고 광기로 가득 찬 크로노스의 두 눈은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준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말년의 고야가 그린 일련의 검은 그림들(pinturas negras)과 마찬가지로 노쇠해져 가는 그의 절망적이고 어두운 심리를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당시 그의 조국 스페인이 겪었던 수많은 혼란과 참상 역시 반영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침략과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전쟁, 1812년에 개혁파들이 제정한 자유주의적인 카디스 헌법의 실패와 국왕 페르난도 7세의 폭정, 그리고 폭정에 반대하는 개혁파의 봉기 속에서 수많은 스페인인들이 죽어갔다. 고야 본인도 조국의 혼란을 피해 프랑스 보르도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크로노스와 마찬가지로, 고야의 모국 스페인은 끊이지 않는 전쟁과 혁명 속에서 자기자식들을 집어삼켰다.

 이태원에서 수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은 지 2주 정도 지난 후에 현장을 들렀다. 여전히 경찰버스들은 해밀턴 호텔 앞으로 장벽을 이루고 있었고, 이태원역 앞은 너무 일찍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국화들과 소주잔들로 가득했다. 희생자들이 압사당한 해밀턴 호텔과 세계음식거리 사이의 좁은 길은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경비하고 있었다. 경찰관 너머로 어수선하게 쓰레기들이 널브러진 좁은 길이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어떤 방역 제한도 없었던 할로윈 축제였다. 그날 밤, 유쾌하거나 멋진 분장을 하고 길거리를 활보한 사람들 가운데, 오늘이 자기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참사가 터진 직후에, 수많은 변명들이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예견할 수 없었다고, 경찰관을 더 배치했더라도 압사 사고는 예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최자가 없는 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매뉴얼이 없었다고. 과연 그랬을까. 경찰과 용산구 모두 3년 만의 할로윈 축제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고, 대규모 인파로 인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참사 2주 전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에는 약 1백만 명이 운집했지만, 경찰과 구청 그리고 현지 상인회로 조직된 안전요원 360명이 현장을 통제했기 때문에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축제가 끝날 수 있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매뉴얼이 없었더라도, 당일 저녁 6시부터 이태원에 몰린 사람들은 인명피해 가능성울 우려하고 경찰에 11차례 신고를 했다. 뒤늦게라도 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지하철이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하게 했다면, 마약 및 성범죄 단속을 위해 투입된 경찰관들을 인파 통제에 투입했다면, 아니, 차라리 저녁 6시 43분에 울렸던 첫 신고부터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만약 그랬다면.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재한 언론인 라파엘 라시드는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에 게재한 기사에서, 한 대학원생을 인터뷰했다.

“ 화가 나요, 우린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가고 열심히 사려고 하는데, 그날 밤 이태원에 가서 놀려고 했던 게 잘못인가요. 나도 이 나라 국민인데,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아요.”

 아마도 참사 직후 수많은 청년들이 느꼈을 슬픔과 분노, 죄의식과 절망감을 함축해서 보여준 인터뷰가 아니었을까. 사망자들 대다수는 20대였고, 약 2/3는 여성이었다. 나라는 청년들을 무한의 입시경쟁과 취업 경쟁으로 몰아넣고, 꿈을 꿀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마저도 빼앗은 뒤, 좁은 골목에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8년 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비극과 마찬가지로 이번 참사가 가슴 아린 이유는, 전 세대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희망으로 가득 찬 다음 세대가 치렀기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었고, 대한민국에서는 기성세대의 과오가 젊은이들을 집어삼켰다.

 일찍이 홉스는 무정부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혼돈이 계속되므로, 인간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와 (성경 욥기에서 묘사된 무시무시한 괴물에 빗대어 그가 ‘리바이어던’이라고 표현한) 군주를 선출한다고 했다. 참사 이후 좌절한 청년들은 묻는다. 우리는 어른들과 나라가 요구한 대로 교육과 근로, 국방을 포함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국가는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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