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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금지 조항 유감… 이대로 괜찮나

 몇 해 전 서초동 법조 기자 중 다수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발단은 과거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한 교수가 자신을 공익신고자로 인정하지 않은 국가권익위원회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 관련 보도였다.

 다수 매체 기자들은 교수 이름은 익명으로 하되, 대학명과 소속 학과 등을 특정했는데 이 점이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부패방지권익위법’)의 ‘신고자 비밀보장’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권익위 측의 지적이었다. 권익위가 공익신고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안이었지만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신고 사실 자체를 보도한 것만으로 위법하다는 설명이었다.

 법조 영역을 짧지 않은 시간 취재했지만, 부패방지권익위법을 평소 접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해당 법률조항을 확인한 후, 일단 권익위 측의 요구가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해 처벌이 비교적 강했다.

 처벌 조항을 본 후 위축된 상황에서 권익위관계자는 법률 조항을 근거로 기사 삭제나 수정을 요구했고, 거기에 더해 취재 루트, 즉 취재원을 특정해 줄 것도 함께 요청했다.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권익위 측에 알렸지만 당시 위법 행위를 했다는 압박 속에서 취재원 공개를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기자들 중 공익신고자 보호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조항이 ‘공익신고자를 보호한다’는 법률 취지와 무관하게 힘 있는 사람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취재원을 밝히라는 권익위 요구는 언론의 자유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과연 적법한 요구인지 곱씹어볼 일이다.

 부패방지권익위법 외에도 보도금지 조항은 다른 법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다. 이 법의 제35조 제2항은 아동학대 사건 보도 시 특정하면 안 되는 대상을 적시하고 있는데, 여기엔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포함돼 있다.

 가령 유명인사가 아동학대 범죄를 저지른경우, 그 유명인사의 이름을 기사에 특정했다면 언론사의 발행인과 해당 기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실제 한 방송사는 유명 피겨스케이팅 코치가 아동학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는데, 이 가해자가 방송사 발행인과 해당 기자를 고소해 이들은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해당 기자는 정식재판 청구 후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당시 “해당 조항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 출판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고, 피해아동 보호라는 입법 목적을 넘어 가해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27일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이를 기각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피해아동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겠다는 입법 목적에 부합하며 자극적 보도를 금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건 개요만 보도하더라도 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만큼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피해아동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라는 입법 목적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2차 피해 가능성을 차단한 경우라도 가해자 신상에 대한 보도만으로 언론인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한 법률 조항이 문제없다는 이 같은 헌재 결정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언론의 보도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점점 더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0 ~ 30년 전 기사를 찾아보면 소위 말하는 ‘잡범’ 사건에서도 가해자의 이름, 나이, 주소는 물론 피해자의 그것들도 함께 적을 정도로 개인정보 보호와 피해자 보호 인식이 희미했다.

 이제 더 이상의 그런 식의 보도는 불가능하다. 피의자나 피고인 신분을 기사에 함부로 특정한 경우 기자들도 민사소송 대상이 되고, 실제 이로 인해 패소한 경우도 다수다. 특정 사건의 보도로 인한 형사처벌은 민사 책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이 공익신고자와 아동학대 피해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법의 시행 목적을 지키는 선에서 제도의 개선을 하는 건 어떨까. 가령 가짜 신고자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아동학대 사건 보도금지의 고소권자를 피해아동으로 제한하는 방법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떤 방식이든 가해자들이 법을 악용해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은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한광범 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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