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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

 최근 법원에서 청각장애인인 재판 당사자를 위해 짧은 문장, 삽화 등을 활용하여 쉽게 쓴 판결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판결문이 특별한 이유는, 발달 장애인 등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짧은 문장, 쉬운 어휘, 서술어, 삽화 등을 사용하는 이른바 ‘Easy-Read(쉬운 정보)’ 방식을 최초로 사용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풀어 쓴 판결문에 관한 법원의 오랜 고민은 아마도 그것이 소위 ‘사법 불신’과도 무관하지는 않기 때문이겠지요. 변호사와 검사 같은 법조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나오는 시기입니다. 법조인과 그들이 하는 일, 사법 시스템에 관한 국민적인 관심은 높아졌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만연체와 전문 용어의 장벽에 막혀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저 역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판결문을 읽었을 때는 한 문장이 한 문단을 이루는 걸 보고 기함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도록 작가를 꿈꿔왔고, 대학 시절에도 국어국문학을 복수전공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연스레 많이 읽는 글을 모방해서 글을 쓰게 마련인데, 3년 동안 판결문 같은 글만 읽었다가는 나도 그런 글밖에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변명하자면, 판결문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문학적인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저는 3년 동안 법학의 매력에 빠져 판결문 원문까지 꼼꼼히 읽게 되었고, 로스쿨을 졸업할 무렵에는 논리적인 글을 쓰는 법조인이야말로 내 천직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했던 생각이나, 3년 후에 했던 생각이나 다소 편협하고 이분법적이었습니다. 문학적 글쓰기와 법조인의 글쓰기를 무 자르듯 분리해놓고 모 아니면 도라고만 여겼던 것이죠. 물론 두 가지 글쓰기는 다른 점이 꽤 많지만, 이를 사실과 허구 간 비율의 차이라고 본다면 별개의 영역에 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다릅니다. 어떤 문장이 사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대로 진실을 드러내지는 않지요. 오히려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법률 서면을 쓸 때 먼저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로부터 법적인 쟁점을 뽑아내고, 법률적으로 어떤 주장을 해야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생각하고, 이를 위해서 의뢰인의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법률 서면의 독자, 즉 서면을 통해 설득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도록 이야기의 순서와 배치를 고민하기도 하죠. 이 과정은 마냥 논리적일 것 같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작업입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시적 정의』에서 재판관에게도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법관은 사건을 균형 있게 파악하기 위하여 ‘분별 있는 관찰자’의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서면 너머 재판 당사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판결문을 쉽게 쓰려는 시도도 결국 사람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대학 시절, 직접 창작한 소설을 과제로 내야 하는 과목들을 찾아 수강하면서 대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습작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정신없던 수습변호사 시절을 지나 다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려와는 달리 예전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면서,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실과 허구의 균형에 관하여 민감해졌고, 허구를 통해서도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사실에 좀 더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잘 모르는 것에 관한 글을 쓰는 데에도 단단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법조인의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는 맞닿아 있습니다. 법조인 역시 작가와 마찬가지로 사실과 허구를 직조해 진실을 말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사람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고, 서면 뒤에 존재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글로써 사람을 설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배한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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