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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엔 휠체어 몇 대가 들어올 수 있을까요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 317호 법정은 오전 재판부터 분주했습니다. 네 명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통로를 비우고, 방청석을 제한해보고….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해보려는 고민이 경위들 사이 오갔습니다.

 “박경석 씨 올라와 주세요.” 피고인이 오른쪽 문을 거쳐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한 해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숱한 기사에 오르내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였습니다. 활동지원인이 피고인석으로 향하는 짧은 경사로 위로 박 대표의 휠체어를 밀어 올렸습니다.

 반대편 문으로는 전동휠체어를 탄 한 방청인이 법정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나머지 방청인의 휠체어는 공간이 없어 문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때 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일어나주십시오.” 평소처럼 재판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들렸습니다. 방청석 대다수가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박 대표는 앉은 채 재판장을 바라봤습니다.

 그는 2021년 4월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위를 한 일로 이날 법정에 섰습니다. 그는 탑승을 거부당한 160번 버스를 막아섰습니다. 쇠사슬로 문에 자신의 몸을 묶고 목에는 피켓을 걸었습니다. 휠체어도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100% 도입해달란 내용이었습니다.

 버스 운행을 23분간 방해하고 미신고 집회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대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가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언급하며 “시민에게 공감을 얻는 집회 방식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음에도, 반성하는 모습이 없다는 점도 양형에 고려됐습니다.

 선고가 끝나고 기자들은 입장을 물으려 박 대표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1층 출입구 앞에 나타나기까지 다른 피고인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법정에서부터 최소 3개의 경사로를 지나왔을 그가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우리가 헌법에 명시된 비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장애인이 당했던 기본권 침해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 토씨 하나 빠트릴라, 열심히 받아치다 잠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장애인이 당한 기본권 침해’라는 말에 법정 문밖 덩그러니 멈춰 서버린 휠체어가, 으레 이뤄지는 재판 시작 절차에 홀로 앉아있던 박 대표가 떠올랐습니다. 찰나의 장면이 방청석을 빽빽하게 메운 변호인과 방청객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하는 익숙한 법정 모습과 교차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이란 구호는 수도 없이 봐왔는데 언론에서 다루는 그들의 전장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겠구나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1년 넘게 법원을 출입하며 수십 번 오갔을 장소에 경사로가 있다는 것도, 부피가 큰 휠체어는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도 법정에 방청인으로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법에 정의를 바란 건 헛된 기대였다”는 박 대표의 말이 이해도 됐습니다. 휠체어 탑승 설비를 마련하지 않은 버스는 차별이라며 한 장애인이 낸 소송에선 대법원이 ‘소송 당사자가 주로 이용하는 노선 위주로 설비를 설치하라’고 한 일도 있었습니다. 장애인도 여러 노선을 타고 어디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따라붙었습니다. 어딜 가도 마치 전장 같은 현실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집회’를 고민하라는 법대 위 말은 박 대표 표현처럼 “훈계”로 느껴질 법도 합니다.

 한 부장판사님은 이런 판결에 대해 다양한 시민을 아울러 봐야 할 법원은 누군가의 편을 들기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박 대표에 대한 형집행유예는 재판부로선 최선이었을 것이라고도요.  법과 사회의 안정성을 고려하면 활동가의 주장만 받아들일 순 없고, 사회의 복잡한 매듭을 사법의 영역에서 싹둑 끊어내는 일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하신 말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한 판결문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사법은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할 때 존재 의의가 있다.…법원은 우리 사회 소수자가 갖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안에선 더욱 이러한 책무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한 판례를 11년 만에 변경하면서였습니다.

 “제가 아니라, 차별 버스가 불법”이라던 박 대표는 선고 다음 날 40번째 출근길 지하철을 탔습니다. 가끔 이들의 시위와 출근 시간이 맞물려 제때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법정에 앉아있던 박 대표를 떠올려봅니다. ‘최후 보루’라는 사법의 역할도 곱씹어봅니다. 이동권 시위로 빚어진 갈등 끝에 겨우 다다른 법정에서조차 걸림돌을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싸움은 어디까지 펼쳐져야 하는 걸까요.

김희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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