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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정의 기억

 2021년 연말,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2차 접종을 하려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소속 법인의 선배변호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 비영리법인과 대표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아래에서는 ‘기부금품법’으로 줄여 부릅니다)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미 항소심까지 연이어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의 소식이었는데, 저희가 상고심 사건을 맡아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심, 속된 말로 ‘빼박 지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영리조직에 대해 법률상담과 자문을 해온 짧은 경험에 의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부금품법은 미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만, ‘기부금품 1천만 원 이상 미등록 모집’이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형벌 구성요건 덕분에 그 면모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 번 걸렸다가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법을 몰랐겠지. ‘법률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 많은 법조인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대법원에서 결과를 뒤집으라니. 지는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실상을 들은 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간의 확고한 행정해석에 따라 의뢰인과 같은 방식으로 기부금품을 관리해 온 전국의 비영리법인과 단체가 전부 처벌 대상이 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소속원으로부터 받은 정기회비나 후원금은 기부금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의뢰인 단체는 전국에 수십만 명의 후원회원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의 해석에 따라 이들의 정기후원금은 모집등록을 하지 않아 왔습니다. 국내에서 모금을 통해 운영되는 대부분의 단체가 같은 방식으로 정기후원금은 모집등록을 하지 않고, 세법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관리하며 사용해왔습니다.

 반면 이 사건의 수사기관과 1·2심 법원은 기존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었습니다. 후원회비를 포함한 모든 기부금은 모집등록 대상이고, 대부분 수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야 할 뿐이며, 인건비를 포함한 그 외의 모든 비용은 기부금의 15% 이내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종사자는 공익활동을 했더라도 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육, 연구, 의료, 건설, 현장구호와 같이 사람의 활동이 필요한 공익사업은 사실상 전면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떠한 법적·도덕적 흠결 없이 운영되어온 단체라 하더라도 이 판결이 제시한 기준을 준수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 예상됐습니다. 국내의 전문 공익활동을 말살하는 ‘타노스의 핑거 스냅’이 될지 모를 사건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연말 휴가를 내놓은 참이었지만, 당장 상고이유서 제출 기한이 목전이었습니다. 다행히 심각성을 인지한 여러 변호사님께서 신속히 협의하여 변호인단을 꾸렸고, 그해 연말은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불안감에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새벽 동이 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에도 저희 변호인단은 국내외 문헌과 판례, 국내 공익법인의 기부금 관련 공시자료를 하나씩 뜯어보며 원심판결의 법률해석이 잘못된 이유와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칠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설명하려 애썼습니다. 상고이유서도, 상고이유보충서도 여러 차례 제출했고 노련한 선배변호사님들께서 풍부한 식견과 감각으로 꼼꼼히 살펴주셨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잠시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라치면,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비영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이 사건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여러 매체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후원회원 모집 광고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아무도 우리의 노력을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절대반지를 짊어진 샘과 프로도의 심정이 이랬겠거니’ 하는 시답잖은 생각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위임의 본질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체감했고, 변호사 직무가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고심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 시한이 무사히 지날 때 한 차례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후로 시간은 조용히 흘렀습니다.

 2022년 연말, 대법원은 〈나의 사건검색〉을 통해 “법리·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 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이윽고 2월에 판결 선고기일이 잡힌 것을 두고, ‘대법원이 단 1년 만에 심리를 끝냈다면 상고 기각일 가능성이 높겠지’ 생각하며 미래의 정신적 충격에 대비했습니다. 선고기일 전날 대법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주요 판결〉 페이지에도 저희 사건은 없었기 때문에, 선고기일 당일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대법정에 갔습니다. 차가운 대법정 건너편 구석을 서성이며 표정이 침울하게 굳어 있는 의뢰인에게도 별다른 위안이 되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의 형사사건 판결 선고가 줄줄이 이어지는 15분의 시간은 제가 경험한 15분 중에는 가장 길었습니다. 상고 기각 취지의 주문이 고요한 법정에 잔잔히 메아리치는 가운데, 아주 가끔씩 ‘원심…’으로 시작하는 전부/일부 파기 판결이 숨죽인 탄성과 함께 터져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각자의 갈림길로 내닫게 하는 말(言)의 무게를 다시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건번호가 불리는 순간, 심장박동이 고막을 울려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시야가 좁아지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심…’이라는첫 마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의뢰인이 제 손을 휘어잡고 격렬한 악수를 건넬 때 정신을 차렸고 황급히 종이를 꺼내 비틀거리는 글씨로 주문을 메모했습니다.


“원심판결 中 유죄 부분 파기, 환송”


판결 결과가 알려진 이후로,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축하를 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유는 분명합니다. 결국 서면에 적어 낸 글귀 중 무엇 하나 제 것인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야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갔지만, 기부금품법을 둘러싼 쟁점과 다툼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활용된 논리나 분석은 모두 지금껏 같은 문제를 고민하며 같은 불안과 외로움을 견딘 활동가들과 선배법조인들이 만들고 다듬고 정리해 둔 것입니다. 우연히 끝에 끼어들어 대법정에 가게 된 저년차 변호사가 전하는 이번 선고의 기억은, 앞서서 이 판결이 있게 한 진짜 ‘샘과 프로도’들에게 건네는 환희와 감사의 인사입니다.

 

● 이 사건은 법무법인(유) 태평양과 재단법인 동천의 변호사들이 함께프로보노로 진행한 사건입니다.

 

황인형 변호사
●재단법인 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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