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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바른 박기태 변호사 인터뷰

Q. 회보 인기 코너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대 법과대학 및 미국 Columbia Law School(LL. M.)을 졸업하였고,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양 과에 모두 합격하였으며, 현재 법무법인(유) 바른의 대표변호사로서 M&A, SOC 및 부동산개발프로젝트, 관세 및 통상 사건 등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Q.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시고, 2년 후인 1982년 연이어 사법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공부 과정에서 노하우나 에피소드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함께 다닌 오랜 친구인 한위수 변호사[법무법인(유) 태평양, 연 12기]를 비롯해 제가 넘볼 수 없는 공부의 신 같은 특출난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어서 특별히 공부에 대한 노하우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친구들은 머리도 비상했을 뿐만 아니라 노력도 아주 남달랐거든요. 제가 게을러지고 공부하기 싫어질 때는 그런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는 동안 그 친구들은 훨씬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 자극을 받고 스스로를 통제하며 집중력과 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법학 전공자로서 행시에 먼저 도전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무원이셨던 선친의 영향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도시계획부터 시작해서 행정부에 관한 여러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법과대학에 다녔지만, 행정고시도 법 과목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 합격했지요.


Q. 군법무관을 마치시고 1988년 법무법인 김신&유(이하 ‘김신유’)에서 본격적인 법조 커리어를 시작하셨습니다. 선행 인터뷰에서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로펌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해외 유학 기회 등 국제감각을 키울 기회가 많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로펌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제가 그 당시에 결혼을 일찍 했어요. 그러다 운명처럼 김신유라는 곳을 알게 되었는데, 해외 관련 업무를 많이 하고, 유학도 보내준다고 하며, 급여도 괜찮아서 지원을 해서 합격했습니다.


Q. 법원이나 검찰, 다른 커리어에 대한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역시 선친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행정부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행시 합격 후 일정 기간 연수원 입소 유예가 가능해서 김신유 입사 후 대표님께 말씀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변호사를 열심히 해라’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계속 로펌에 있습니다(웃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행시가 되어서 더욱 그럴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행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변호사를 하면서도 여러 가지 덕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대관 업무를 많이 경험할 수 있었지요.


Q. 김신유는 섭외 사건으로 유명한 1세대 로펌입니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한마디로 일이 넘쳐났습니다. 이 일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이 쏟아졌습니다. 사건 수가 많기도 했고,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아침부터 내부 회의를 시작하고, 이후에 협상을 합니다. 협상을 하면서 점심에 잠시 쉬고 오후에 또 협상을 합니다. 그러고 저녁 때 돌아와서 그날 일한 것을 정리하고 검토한 후에, 계약서 수정안을 준비합니다. 코멘트도 달고 하다 보면 새벽이 되지요. 그리고 다음 날 또 오전 9시에 회의가 이어지는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사람들이 오니까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 가려고 했지요. 호텔에서 계속 일하면서, 잠은 몇 시간 못 잤죠. 다 같이 팀 단위로 일하다 보니 나중에는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Q. 당시에는 로펌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신유에 국내외 변호사가 20명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였지요. 당시 다른 로펌들도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후 경영자의 선택이나 구성원들의 역량 등에 따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요.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규모를 키워 확장하는 길과, 적절한 규모를 유지하면서 알차게 운영하는 길이 있는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구성원들이 결정해야 하고,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Q. 김신유에서 약 17년 동안 재직하시다가 2005년 법무법인(유) 바른(이하 ‘바른’)에 합류하셨습니다. 어떤 인연 혹은 계기였나요?

 당시 송무분야의 강자로 자리잡은 바른이 자문역량 강화를 추진하던 중이었는데, 바른의 창업멤버이고 연수원 동기인 강훈 변호사님과의 인연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Q. 바른은 어떤 회사인가요?

 작명을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바른 변호사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겸손하고 예의가 바른 분들이셨습니다. 바른이라는 이름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고객에게 명함을 드리거나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바른’ 두 글자를 항상 접하는데, 회사가 좋은 명성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Q. 변호사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군대와 결혼을 제외하고, 2017년도에 변호사회 회무를 경험한 일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이전까지는 로펌 변호사라는 좁은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로펌 변호사는 회사에 기여를 해야 하고, 밤낮 없이 일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뢰인과 나를 위한 일입니다. 회무는 나를 위한 업무는 아니지만 우리 변호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지대한 공적인 업무입니다.

 사실 일반 변호사들이 변협이나 지방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선거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저도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고요. 그런데 들어가서 회무를 해보니 시간을 내고 싶지 않아도 부득이 시간을 낼 수밖에 없고, 또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요한 업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단순히 보람을 느꼈다고만 하기에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변호사로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박기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역지사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 사실 법조인 박기태와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상대를 배려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변호사 일이라는 것도 결국 대립과 분열 상황을 바꾸어 분쟁을 해결하고 화해하며 통합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Q. 평소 하시는 운동이 있으신가요?

 산책을 많이 합니다. 험한 산은 아니지만 산행을 좋아합니다.


Q. 변호사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김신유의 김진억 대표님이십니다. 변호사로서 기본자세를 가르쳐 주셨어요. 연수원 시보에게도 ‘시보 영감’이라고 불러주던 특권 의식 가득하던 시절에 변호사업은 결국 서비스업이라는 점을 알려주셨어요. 변호사업은 고객이 원하는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또, 변호사로서의 용기를 주셨습니다. 투자업무를 하다 보면 처음 보는 특별법 검토를 해야 합니다. 해석이 쉽지가 않을 때가 많지요. 그럴 때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 ‘변호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법률문제는 없다. 네가 다 할 수 있다. 일본 판례건, 뭐든 다 찾아서 해결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제가 평생의 스승이라 생각하는 분입니다.


Q.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니, 그 고마움을 어떻게 환원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Q. 변호사님께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미국에서 골프를 처음 배웠는데, 그 사부에게 ‘오늘 골프 잘 치셨습니까?’라고 여쭤보면, 스코어와 관계 없이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쳤더니 그대로 딱 되었다. 그래서 기분 좋은 날이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성취감이라는 것이 다른 큰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하려고 준비하고, 노력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큰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소송도, 협상도 같습니다. 중간중간 임기응변과 수정도 필요하겠지만, 큰 그림은 초반에 전부 그려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증거를 언제 낼지, 주장을 언제 할지 계획을 전부 세워 두었는데, 예상대로 진행되어 승소하였을 때의 성취감이 변호사로서 가장 큰 성취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법조인의 업무는 법률이나 판례 등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그것에 단지 얽매이기보다는 여러 사회적 현상 등을 감안하여 보다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매우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시간 터널을 발견해서 3년 차 박기태 법무관을 딱 5분 동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요?

 군 생활을 잘 활용해서 어학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영어든 불어든, 그냥 읽고 쓰는 정도가 아니라, 대화를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상대방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외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Q.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23년의 후배변호사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후배님들이 로스쿨에 들어가서 변시에 합격하는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라는 것입니다. 일부 본인이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은 굉장히 넓으니 변호사로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어떤 일이건 부딪쳐서 해결하고 헤쳐 나가면 좋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긴 호흡으로 승부를 보면 노력의 대가를 반드시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황귀빈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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