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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관하여

 수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아내와 소파에 앉아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SOLO〉를 시청하는 일은 나의 몇 안 남은 취미 중 하나이다. 〈나는 SOLO〉에서 가장 흥미로운 코너는 익명의 출연자들이 직접 자기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는 자기소개인데, 자기소개 과정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정보가 바로 ‘취미’이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다가도 정작 취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십상이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에는 답변할 거리가 여럿 준비되어 있다. 일종의 대외용 답변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다만, 사전적 의미의 취미(‘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를 넘어 진정으로 ‘즐기는’ 취미를 물어본다면, 솔직한 마음으로 선뜻 그 답을 내놓기 어렵다. 지금 내가 취미라고 하는 일들은 대부분 출퇴근 시간이나 휴식 중에 습관처럼 하는 킬링타임(Killing Time)에 가깝다. 소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랄까.

 나는 ‘네 인생 네가 알아서’라는 부모님의 철학 덕에 어렸을 적부터 행동의 자유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 편이었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를 둘러싼 사회는 오랜 기간 취미를 배척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내가 다니던 학교, 학원, 그곳에 속한 선생님, (아마 친구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겠지만) 친구의 어머니 등은 대부분 취미를 학업에 방해되는 대상으로서 통제해야 할 위험(Risk)으로 여겼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와 무관하게 소위 ‘표준화된 취미’를 갖도록 강제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학창시절 어떤 서류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년에 한 번씩 취미와 특기를 적어낸 적이 있었다(아마 생활기록부 기록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년기에 ‘게임’이나 ‘만화책’에 빠져있었지만, 학교에 내는 서류에는 ‘독서’, ‘운동’, ‘음악감상’과 같은 건전한 취미만을 적어내었고, 최근에 듣게 된 이야기지만, 친구는 ‘수학 문제 풀기’를 적어냈다고 했다.

 한때 TV 광고 외우기조차 즐거워할 정도로 취미 부자이었던 나지만, 취미를 통제와 배척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여 나 스스로 즐길 거리를 하나둘씩 지워나갔다. 게임이나 만화책을 즐기는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잠을 잤고, 농구를 하는 대신 지하철에서 NBA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았으며, 영화관에 가는 대신 자기 전에 누워 5분짜리 영화 요약 영상을 보았다.

 취미에 관한 고민을 처음 시작한 것은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던 로스쿨 3학년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시험만 끝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나의 취미를 마음껏 즐겨야겠다고 마음먹고, ‘즐길 일’ 리스트를 잔뜩 채워 넣은 채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시험을 마친 후, 어릴 적 그렇게 좋아했던 일들, 예를 들어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농구를 해도 어느 하나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무언가를 ‘즐기기’에 실패한 나는 마찬가지로 피로사회에 익숙해진 다른 동기들과 함께 후배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법 소개 강의를 준비하면서 원치 않게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은 놀이하는 것이라고도 말하지만, 나는 일하기 위한 스트레스 저감장치로서 취미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즐기기 위한 돈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일과 취미 모두 내가 ‘즐겨야 하는’ 극복의 대상인지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하였다. 다 차치하고, 누군가 〈나는 SOLO〉에 나오려면 취미가 맞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없도록 의무적으로 취미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배척과 통제의 대상이었던 취미 때문에 인생의 반쪽을 눈앞에서 놓쳐야 한다면, 그건 사회가 잘못된 건지, 그 사람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내가 잘못된 건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부족한 취미에도 나를 받아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조승현 변호사
● 법무법인 청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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