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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전 대법관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0년부터 22년간 법관으로 재직한 후, 2012년에 여성으로서는 4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고, 2018년에 대법관으로서의 6년 임기를 마친 뒤 퇴임하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말 변호사로 등록하여 현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송무 업무 외에도 법률문화연구소 소장과 재단법인 나은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Q. 1990년에 판사로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으셨습니다. 특별히 법관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부친께서 20년 이상을 검사로 지내셨는데요, 검사로 지내시는 동안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아니라 왜 판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판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Q. 바람직한 판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법관은 대부분이 사실심 법관인데요, 사실심 법관의 주된 업무가 구체적 사실을 세심히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 사실에 따라 과거 선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례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연히 구체적 사실이 동일하다면 동일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도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법관은 기본적으로 구체적 사실을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당사자의 주장을 열심히 경청하고 모든 자료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지요. 만약 선례의 법리가 적용될 수 없는 사안이라면 다른 법리를 찾아보거나 새로운 법리를 구상해야 할 텐데, 이때 법리에 조예가 깊을 필요도 있겠지만 형식적인 법논리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당사자 간의 균형점을 찾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Q. 판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많이 알려진 사건이긴 한데요, 대법관으로 지내던 시절에 전자정보 압수수색 참여권 보장에 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대법원 2015. 7. 16. 2011모1839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의 개요는 검사가 적법하게 압수한 정보저장매체 이미징 사본에서 다시 임의로 개인의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전부 복제한 후 검사의 사무실에서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복제한 파일을 탐색하고, 처음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무관한 여죄를 발견한 후 이를 다른 검사에게 제보하여 그 여죄에 관하여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게 한 사례였습니다.

 당시 첫 번째 영장에 의한 압수나 두 번째 영장에 의한 압수가 모두 실무에 영향을 미치는 쟁점이어서 확실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였는데요, 첫 번째 영장에 의한 압수 부분에서는 혐의사실과 무관한 증거까지 재복제하고 출력한 부분이 위법한 압수처분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였지만, 혐의사실과 관련한 증거에 대해서까지 압수절차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사가 처음에 의도한 혐의사실을 입증하지 못함에도 변두리 혐의로 망라적 기소를 하는 잘못된 수사관행에 비추어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 외에는 압수처분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중시하여 결국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경우에는 압수절차 전체를 위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전원합의체로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Q. 20여 년간의 판사 생활을 접으시고 2020년에 변호사로 활동하시기 시작하였는데, 법원을 나오게 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당시 어떤 느낌이셨을까요?

 대법관은 임기가 6년이고, 연임할 수 있지만 대부분 연임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법원 업무가 격무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저도 대법관으로 임기 6년을 마치고 법원을 떠났는데요, 당시에 중책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컸습니다. 특히 저는 법원행정처장과 선임대법관 재임 시 법원행정처와 판사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 논란 등이 있어서 마음고생이 많았기 때문에 더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Q. 법조인으로서의 지난 삶을 회고하신다면 어떠신지요?

 많은 분께서 제게 여성 최초 심의관, 지원장, 법원행정처장 등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최초라 불린 것은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응하거나 지원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부분이 큽니다.

 제가 판사가 처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대전지법같은 큰 법원에도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 안에 칸막이로만 분리되어 있는 등 환경이 열악했고, 여성법관이 야간당직을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여성법관이 한 사람의 법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있어서도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어느 여성이든지 여성 최초로 해당 보직을 맡아 수행하기만 하면 그 후에는 여성법관이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심의관, 총괄심의관 등 행정업무도 마다하지 않으며 지원장이나 전속부장연구관에도 여성으로서 최초로 지원을 하게 된 것이었고요. 보직을 맡은 뒤에는 누구보다 잘 해내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부장판사로 지방에 내려가야 할 때가 있었는데 인사희망원에 1지망부터 5지망까지 모두 부장판사가 지원장이 되는 지원을 기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여성 법관에게 지원장을 맡겨도 되는지에 대하여 고심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제가 공주지원장을 한 이후에는 실제로 많은 여성 법관들이 지원장에 보임되었고, 맡은 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 가정의 주부이자 엄마로서 법관으로서의 일과 가정을 양립하여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긴 했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히 매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법조인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덕목이나 명제가 있으신지요?

 제가 3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끊임없이 공부하여 발전하려는 노력, 이 세 가지입니다. 저도 이 세 가지 덕목에 부합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춘다면 법조인으로서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가는 것은 물론 훌륭한 법조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전직 대법관을 역임하셨는데,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법원의 근본 역할이자 가장 큰 사명은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법체계 또한 이 두 가지 사명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재의 법원은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판사들의 격무도 해결해야 할 문제긴 하지만, 무엇보다 판사들이 재판부 이동과 전보인사로 인하여 구술심리의 훼손과 재판의 지연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변호사를 하면서도 1년마다 재판장 혹은 배석판사가 변경되고, 그로 인하여 변경 전에 열심히 재판부를 설득해 놓은 변론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당사자들의 한탄을 많이 접하였습니다. 실제로 선진국의 경우 재판부가 1~2년마다 변경되는 경우가 없거든요. 이제 우리 사법부도 판사가 오랜기간 동안 동일한 재판부를 담당하는 구조로 변경될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법조인이 아닌 ‘인간 김소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실 제가 무언가 경계를 긋고 규정짓는 것을 꺼리는 편이긴 한데요, 한 인간을 어떻게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굳이 표현하라고 한다면 저는 무문관(無門關) 조주 무자 화두에 나오는 “무(無)”라고 하고 싶습니다.


Q.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도 법조인이 되실 것인가요?

 판사라는 직업은 일의 수준이 높고 보람도 큰 직책이어서, 저에게는 늘 천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도 다시 태어나면 그때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것 같지만, 현재와 조건과 상황이 동일한 경우라면 법조인을 또다시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만약 지금 젊은 시절의 능력이 있다면 사물의 본성을 성찰하는 철학이나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Q. 후배변호사들에게 특히 하시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법조시장의 상황이 법조인 수의 급격한 팽창으로 포화상태에 가까워 많은 후배변호사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통감하고 있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꿈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바라는 공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후배님들과 같은 법조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배님들이 제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덕목을 갖추고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노력하신다면 더 나은 삶으로의 기회는 열려있을 것입니다.


Q. 끝으로 향후 변호사님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저는 현재 김앤장법률문화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지라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공익적 가치가 있는 법률문화 관련 연구 주제를 선정하여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재단법인 나은과 함께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법률 분야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재단법인 나은과 법조 공익단체들의 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도 이러한 공익활동을 지속할 계획이고, 이를 통해 선진적인 법률문화를 조성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향상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 인터뷰/정리 : 이윤우 본보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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