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회원의 상념
[회원의 상념] 10년 전 그 일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저녁 늦게 퇴근한 나를 조심스레 부르시면서 우편물 하나를 보여 주셨다. 확정된 지급명령 정본이었다.

10년 전 월급만으로 우리 두 남매를 키우기 쉽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투자 권유에 넘어가 큰돈을 날리셨다. 그 투자라는 것은 애초부터 지어낸 이야기였고, 동네에 그 아주머니로부터 그렇게 사기당한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형사고소와 민사소송, 몇 번에 걸친 합의 시도와 결렬, 강제집행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채무만 여럿 부담하고 있던 그 아주머니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은 막막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가슴 아팠던 것은 어머니께서 후회와 자책으로 잠 못 이루시다가 10년은 늙어 버리신 것이었다. 야위어 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장녀로서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꼈고, 한편으로 어머니처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적절한 법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10년이 흐르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재판연구원으로 일하였는데, 세상살이가 어려워서인지 사기 사건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동료들이나 판사님들이 어떻게 이렇게 대책 없이 사기를 당할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하였지만, 차츰 그 일은 내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재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정부법무공단 변호사가 되어 정신없이 일하던 중, 어머니께서 예전의 그 사기 사건으로 민사판결을 받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면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게 좋을지 조심스레 의논하셨다.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어도 나름 화목하게 잘 살고 있는데, 10년이 지나 이제는 잊혀 가는 일을 새삼 들추어내는 것이 과연 맞을지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소멸시효가 완성되도록 놔두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결국 지급명령을 신청하였고, 채무자가 이의하지 않아 확정된 지급명령 정본이 송달되어 온 것이다.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것이 잘한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10년 전 그 일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던 초심을 되새길 수 있었다.


수정됨_사진(김현영).jpg
김현영 변호사
변호사시험 제1회
정부법무공단

김현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