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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변호사'로 일하기

 변호사시험 합격 후 법무법인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견서와 서면을 쓰고 법원도 오가면서 여느 변호사들처럼 일하다 3년 차가 되던 해의 연말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법무법인에서 일할 때부터 IP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동료 변호사님들에게 이직 인사를 하면 “양 변호사님, 드디어 성덕(성공한 덕후)되셨네요”라는 축하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끼 없는 내가 끼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변호사로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했었다.

 이직 후 엔터 변호사로 일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엔터 회사에서 일한다고 없었던 ‘끼’가 생기진 않았지만 ‘끼’ 있는 동료들 덕분에 즐거웠던 경험, 엔터 회사에서 할 수 있었던 경험과 고충을 적어보려 한다. 콘텐츠 덕후인 엔터 변호사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혹시라도 참고가 되길 바라며.

 입사 후 대다수가 그렇듯, 팀장님은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 왜 나를 뽑으셨는지가 궁금했다. 경력기술서에 열심히 적어 넣은 경력 때문이었을까?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팀장님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나의 합격 이유는 매우 ‘엔터 회사’다웠다. 이유는 ‘삼국지’였다(물론 경력이나 전문성도 충족하였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는 굳게 믿고 있다).

 지원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을 고민하다가 글을 가볍게 시작하고 싶어 어렸을 적 읽은 삼국지를 말머리 소재로 쓰면서 ‘삼국지 덕후’임을 밝혔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스무 번 넘게 읽었고 삼국지 게임도 장르별로 모두 섭렵하였다 ··· 삼국지처럼 오랫동안 사랑 받고 다양하게 활용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적었는데, 팀장님 본인도 삼국지 콘텐츠의 덕후라 그 부분이 기억에 남으셨던 모양이다. 진짜(덕후)는 진짜(덕후)를 알아보는 법. 삼국지 덕분에 나는 면접 기회를 얻었고 엔터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읽은 삼국지가 내 변호사 커리어에 도움이 될 줄이야.

 일하다 가끔씩 팀장님이 “이 커피가 식기 전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마치 장판파의 조자룡 같은 검토 의견이네요”, “이번 건은 우리 예상대로 되지 않았지만,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거죠” 등등 삼국지 덕후스러운 농담을 날리실 때가 있는데, 웬만한 아재 개그에는 잘 웃지 않는 나도 삼국지 농담은 들을 때마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일하곤 한다. 팀장님 외에도 영화 대사나 웹툰의 상황 등을 재치 있게 인용, 패러디한 찰진 비유로 웃음을 주는 동료들이 다른 업계의 회사보다 많다는 것도 엔터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작품의 창작자인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엔터 변호사로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다. 물론 작가가 법무팀의 변호사를 직접 만나는 일은 드문 편이고, 혹시 만나게 되었다면 무언가 변호사가 해결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지만, 생생한 창작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엔터 변호사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만화와 소설에서만 접했던 작가를 현실에서 직접 보고, 나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법적인 해결 방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변호사로서도 뿌듯한 일이다.

 엔터 회사의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느끼게 되는 고충도 있다. 법률 검토를 하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업무는 주로 ‘신기술과 관련된 법률 검토 건’이다. 작년에는 ‘메타버스’, ‘NFT’가, 올해는 ‘챗GPT’가 IT업계의 화두인데, 엔터업계에서도 신기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게 업의 본질인 엔터업 특성상 IP에 신기술을 접목시켰을 때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엔터업계에서도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법률 검토는 참고할 만한 선례도 드물 뿐만 아니라, 신기술로 구현되는 사업 내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사업수행을 위한 회사의 권리는 어디까지 확보할 것인지까지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아 법률 검토를 할 때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이 엔터 변호사에게 주는 고충이다.

 지금까지 엔터 변호사의 희로애락을 짧게 정리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 즐거움을 주는 게 일인 엔터 회사라고 해서 항상 즐거운 일만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콘텐츠를 좋아하는 변호사라면, 그리고 콘텐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해 보고 싶은 변호사라면 엔터 회사에서 일해보는 것도 변호사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성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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