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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변호사의 일상

 2022년 2월, 18년 동안 근무했던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변호사로서의 생활은 우당탕탕, 좌충우돌할 만큼 요란스러운 건 아니지만, 익숙했던 법원을 떠나 겪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어리둥절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실제로는 아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의 연속들이었습니다.

 제일 낯설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직면할 때였습니다. 의외로 아주 사소한 경험에서 깨달았다는 것도 약간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요. 역시 사람은 큰 변화보다 일상의 작은 불편에 더 민감한가 봅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법원에서 근무할 때는 법원 청사에 보안상 공용 와이파이 사용이 금지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보니, 형사를 제외한 대부분 소송이 전자소송이므로, 법정 복도 대기 시나 법정 내 변론할 때 개인용 노트북으로 전자소송 사이트에 접속하여 기록 열람하는 것이 늘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법원 청사에는 공용 와이파이가 없어 전자소송 사이트 접속은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변호사 업무상 가장 필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전자소송 사이트 접속이 어렵다는 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만도 않은 큰 불편입니다.

 변호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겪는 일상의 작은 불편에서 법원 내에서는 당연하지만, 재야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도 과연 맞는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순간도 자주 찾아왔습니다. 판사로 일할 때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던 사실조회, 문서제출명령 등등 각종 신청에 대해 어떨 때는 깊게 고민할 여유도 없이 바로 결재하곤 하였습니다. 너무 많다 보니 보고 고민할 시간도 짧고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변호사가 되고 보니 증거신청 하나 제출할 때마다, 기일변경신청 한 번 제출할 때마다 과연 제출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담당 재판부가 허가할지 하지 않을지 등등 여러 가능성과 변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세 장을 넘지 않는 신청서를 쓰면서도 고심에 또 고심을 하는 게 변호사 일이라니, 법원에 있을 때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판사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경험적으로 믿어왔던 것이, 이제 변호사가 되니 담당 재판부마다 다르구나, 사건마다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법관으로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법관은 기록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 이외의 잣대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쟁점을 판단한다면, 그러한 판사가 오히려 법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법관이 바라보는 세상, 기록을 담고 있는 프레임과 그 틀 안의 세상은 변호사가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보니, 실제 세상은 더 크고 더 복잡하고 더 얽히고설킨 관계들의 집합체입니다. 변호사는 총체적인 갈등 중 법원에서 판단해 줄 부분만을 추리고 추려서 기록이라는 프레임 속에 잘 구성해서 넣어 그 기록을 법원에 제출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당사자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사건의 쟁점이나 법원의 판단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정들은 기록에 포함시키지 않고 쳐내는 것이 변호사의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다 안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실제로는 누군가가 만들어 준 프레임 안에 갇혀서 사고하고 이해했던 건 아닌가 새삼 뒤돌아봅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기록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변호사는 사실관계에 맞추어서 가끔은 법원이 큰 거대 담론을 고민할 수 있도록 넓은 프레임으로, 가끔은 법원이 구체적인 쟁점만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좁은 프레임으로 잘 구상하고 설정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명화가 그냥 그림만 덜렁 벽에 걸려 있지 않고 가장 잘 어울리는 액자(프레임)에 담겨 있는 것처럼 훌륭한 판결 역시 좋은 변론에 기초해서 나올 것입니다.

 법원에서 주어진 기록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세상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세상을 변호사로 나와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어리둥절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도 법정을 가고, 의뢰인을 만나며, 서면을 씁니다.

이은정 변호사
● 법무법인(유)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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